주간동아 967

2014.12.15

식구들과 함께 밥상 행복 느끼십니까?

하루 세끼 먹기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입력2014-12-15 1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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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구들과 함께 밥상 행복 느끼십니까?

    케이블채널 tvN 예능프로그램 ‘삼시 세끼’의 한 장면(위)과 포스터.

    ‘삼시세끼’라는 케이블채널 tvN 예능프로그램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며 이목을 끌어모았다. 구성은 단순하다. 그냥 하루에 세끼를 직접 해먹는 거다. 손님이 오면 접대하고 같이 일도 하지만, 핵심은 세끼를 전부 먹는 거다. 하루에 세끼 해먹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걸 지켜보면서 즐거워하는 걸까. 혹자는 ‘삼시세끼’에 대한 관심을 요즘 유행하는 킨포크(Kinfork) 트렌드와 연결시키면서 그럴싸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문화로도 바라본다.

    일상에서 결핍된 것은 늘 새롭게 갈구되고, 이는 멋진 새로운 이미지로 포장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킨포크’ 잡지에서 나올 법한 서구적 스타일을 이미지로 소비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단지 집밥이 먹고 싶은 거고, 식구와 함께 밥을 해먹고 싶은 거다. 그동안 우리에게 없던 ‘잃어버린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갈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현대화, 도시화, 산업화를 받아들이면서 가장 먼저 버린 것 가운데 하나가 식구끼리 삼시세끼 얼굴 보며 밥 먹는 것이 아닐까. 우리 시대는 밥상에서마저 효율성을 강조하고, 집밥도 상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아울러 자급자족에 근간을 둔 농사나 텃밭 일구기 문화도 잃어버렸다. 과거엔 누구나 했지만, 대도시에 몰려 살게 되면서 우리가 버린 것일 뿐이다. 아이러니한 건 우리가 원래 하다 포기해 이제는 하지 못하는 것들을 다시 하자는 욕구가 생겨났다는 점이다. 그중 하나가 전 세계 선진국에서 열풍이고, 심지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백악관에 텃밭을 일구게 한 시티팜(city farm)이라는 도시농업이다.

    킨포크나 시티팜은 서구에서 시작된 트렌드지만 전 세계가 이를 공유하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특히 선진국을 비롯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지역에서 이런 트렌드를 더 일찍 받아들였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여유를 갖고 일상을 돌아보게 되는데, 그런 과정에서 좀 더 본질적인 행복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지위가 높은 게 행복이라고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여전히 그걸 고집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제는 진짜 행복을 일상과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면서 가족, 친구들과 어울리고 즐거워하는 게 중요한 삶의 가치임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요즘 시대엔 어려운 미션



    식구들과 함께 밥상 행복 느끼십니까?
    오늘의 작은 사치는 하루에 세끼 먹기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식구와 하루에 세끼를 먹자는 거다. 세끼 다 해먹는 건 애초에 엄두도 못 낸다. 그냥 같이 먹기라도 하자는 말이다. 매일은 어려워도 주말만이라도 세끼를 가족과 함께 한다면 어떨까. 평일엔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고, 주말에 온종일 가족과 일상을 누리면 된다.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요즘 시대에 가장 어려운 미션이 아닐까 싶다. 하루 세끼를 다 먹는 것도 이미 사치인데, 식구와 함께 밥을 꼬박 챙겨 먹기까지 한다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 호사일 거다.

    식구(食口)는 한자로 밥 먹는 입, 즉 같이 밥 먹는 사람이란 뜻이다. 한 집에 살아도 같이 밥을 먹지 않는다면 식구가 아닌 셈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가족은 있지만 정규적인 식구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여느 맞벌이 부부가 다 그렇겠지만, 현실이 우리가 식구 되기를 어렵게 만들지 않는가. 하루 세끼, 그것도 식구와 함께 먹는 날이 일 년에 얼마나 될까. 평일에 한 끼 같이 먹기는 월중 행사 수준이고, 주말에도 한두 끼 같이 먹기도 버겁다. 가만 생각해보면 삼시세끼를 식구와 함께 하는 때는 딱 두 경우다. 부모 집에 가거나, 다 같이 여행을 멀리 떠났을 때. 특히 부모 집에선 평생 식구라는 의미를 지켜온 부모의 룰을 따르기 위해서라도 밥상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그리고 해외여행이건 국내여행이건 식구와 여행을 가면 세끼를 함께 먹는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소문난 맛집을 빼놓지 않고 들르려는 아내 덕에 먹는 끼니 수보다 들러야 할 식당 수가 더 많다. 간간히 간식과 야식까지 곁들이면 하루 다섯 끼까지도 먹는다. 사실 여행의 즐거움은 무엇을 얼마나 보느냐보다 함께 간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수다 떨고 웃는 게 아닐까. 나는 주로 여행을 아내와만 다녔는데, 그게 식구와의 여행이었던 셈이다. 미슐랭 스리스타를 비롯해 미슐랭 스타급 레스토랑부터 여기저기서 추천받은 유명 맛집은 가급적 챙겨 가봤다. 영국 런던 버러마켓이나 미국 뉴욕 첼시마켓을 비롯해 현지 재래시장도 꼭 들른다. 목적은 오직 하나, 먹기 위해서다.

    노점상 먹거리도 빼먹지 않는다. 특히 뉴욕에 갈 때면 맨해튼의 ‘53rd · 6th’ 코너에 있는 할랄(이슬람교 의례에 따라 도살된 고기) 푸드 노점상을 꼭 들른다. 케밥 플래터를 파는 곳이다.

    군산이나 춘천, 강릉, 안동, 전주 등 미식투어를 떠났던 도시도 수십 곳은 될 듯하다. 돌이켜보면 식구와 밥을 참 많이 먹은 것처럼 느껴진다. 아내와 15년을 살았으니 결혼 후 늘 함께 밥을 먹었다면 계산기를 두드렸을 때 365×15×3=1만6425끼가 나와야겠지만, 아마 식구와 같이 먹은 건 여기서 10%도 안 될 거다. 바쁘단 핑계로 식구라는 말의 의미를 무색게 만들어버린 셈이다. 2015년엔 바쁘다는 아내를 이따금 납치(?)라도 해서 저녁이 있는 삶도 종종 누리고, 가끔씩은 삼시세끼 같이 먹는 호사도 누려야겠다. 우리에겐 식구가 있다. 부디 그 식구를 식구가 아닌 상태로 만들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삼시세끼 차려준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

    식구들과 함께 밥상 행복 느끼십니까?

    매일은 어려워도 주말만이라도 세끼를 가족과 함께 해보자.

    삼시세끼 하면 ‘엄마’도 떠오른다. 아침 먹으면 점심 걱정, 점심 먹으면 저녁 걱정, 그리고 저녁 먹으면 다음 날 아침 걱정을 하던 엄마들이 꽤 있다. 식구들 배곯지 않고 매끼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왕이면 좀 더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이겠다는 욕구가 큰 게 엄마들이다. 내 어머니는 여전히 삼시세끼 직접 요리를 만들어주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콩가루를 밀가루와 섞어 만든 엄마표 칼국수의 맛도 여전히 기억나고, 얼큰하고 시원한 쇠고깃국은 언제 받아도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된다. 물론 어머니 시절엔 MSG(글루탐산일나트륨)를 넣는 게 가족을 위해 좀 더 맛있는 요리를 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농담 삼아 MSG를 ‘마더 시크릿 가루’의 약자라고 하기도 했다.

    이렇게 자식에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준 어머니의 노력에 대해 우리도 각자의 방식으로 애정을 담아 고마움을 표현하는 건 어떨까. 아침은 매생이굴국으로 시원하게, 점심은 담백한 와규 스테이크를 구워서, 저녁은 로브스터(바닷가재)나 대게를 쪄서 상큼한 샐러드와 곁들여 식사를 대접하는 거다. 사실 이런 요리는 식재료만 좋아도 맛이 웬만큼 보장된다. 그 덕에 할 때마다 실패가 없던 요리이기도 하다. 각자 어떤 요리든 어머니를 위한 삼시세끼를 준비해보면 어떨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방식으로 일상을 호사스럽게 만드는 게 가족에게 줄 수 있는 최고 행복이자 진짜 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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