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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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향…록음악…그곳에 가면 잠 못 이룬다

미국 시애틀

  • 백승선 여행칼럼니스트 100white@gmail.com

    입력2014-11-24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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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향…록음악…그곳에 가면 잠 못 이룬다

    미국 시애틀 랜드마크인 스페이스 니들은 1962년 세계박람 회 때 세워진 184m 높이의 타워다. 마치 비행물체가 착륙한 듯한 모습이 도시 경관을 더욱 멋지게 만든다.

    오래전 미국 시카고행 비행기로 갈아타려고 장장 10시간을 시애틀 공항에 머문 적이 있다. 그날…. 짙은 안개가 가득한 창밖 풍경만큼이나 공항 안을 가득 메우던 커피향. 내 마음속엔 그 10시간 동안의 커피향이 깊이 새겨졌다. ‘시애틀스 베스트 커피(Seattle’s Best Coffee)’에서 마신 아메리카노 한 잔. 그때 이미 나는 시애틀의 짙은 매력에 빠졌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커피향 가득한 언덕길을 걷고 있었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은 시애틀과 커피를 얘기할 때 절대 뺄 수 없는 곳이자 가장 유명한 곳이다. 퍼스트애비뉴와 파이커스트리트 사이 엘리엇 만(灣)을 끼고 있는 이곳은 1907년 문을 연 재래시장으로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내부는 퍼블릭 마켓 등 3개 구역으로 나뉘며 싱싱한 해산물을 비롯해 각종 채소와 꽃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다.

    커피 성지 스타벅스 1호점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이 여행자 사이에서 유명한 이유는 커피 성지라 부르는 스타벅스(STARBUCKS) 1호점이 그 안에 있는 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선가게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 도시의 진정한 모습을 보려면 재래시장을 가라는 말처럼 실제 이 도시를 찾는 여행자와 이방인은 제일 먼저 이 시장으로 달려온다. 그만큼 이곳에 가면 시애틀의 모든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안에 있는 이상한 생선가게는 일명 ‘생선을 던지며 파는 가게’다. 오랜 옛날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들 모습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점원들이 주문을 받은 후 생선을 손질하기 위해 손님 머리 위로 생선을 던지는 모습은 재미를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어머니를 따라갔던 동네시장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어떤 에너지와 즐거움이 가득했기 때문이랄까. 비린내 진동하는 단순한 ‘일터’를 ‘놀이터’로 의미를 바꾼,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생선가게는 많은 이에게 감동으로 다가간다.



    기어이 찾아간 특별한 생선가게 앞은 역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어릴 적 TV에서 봤던 그 모습대로, 주문을 받은 점원은 추임새를 넣으며 생선을 가게 안쪽으로 던졌고, 가게 안쪽에서 다른 점원이 받아 손질한 다음 가게 밖 점원에게 다시 던져주는데 던지는 솜씨가 ‘생활의 달인’ 모습을 연상케 한다. ‘날아다니는 물고기’ 덕분에 얼굴에 생선 물이 튀었지만, 손님보다 구경하는 사람이 더 많아도 즐거움이 가득한 이곳에서 나 역시 작은 ‘의미’ 하나를 발견하고 돌아섰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상징하는 빨간색 네온사인과 세워진 지 80년 된 빨간 네온사인 시계. 사람들은 이 붉은색의 강렬함에 이끌려 언덕을 내려와 이곳을 찾거나, 바닷가 골목을 빠져나와 이곳에 도착한다. 붉은 네온사인 아래 서 있는 수많은 사람은 모두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거대한 나라 미국의 서쪽 끝, 그리고 북쪽 끝에 자리 잡은 이곳 빨간색 글씨 아래 서기 위해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왔을 테니까. 떠나기 싫어서 시장 이곳저곳을 서성이던 사람들의 얼굴에 붉은빛이 가득 번지면 그제야 아쉬움을 뒤로하고 언덕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장 마당과 이어진 골목길로 하나 둘씩 사라진다.

    커피향…록음악…그곳에 가면 잠 못 이룬다
    거리마다 유명 커피숍 가득

    ‘1912 pike place, Seattle.’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 1호점 주소다. 파이크 플레이스 1912번지. 스타벅스의 첫 번째 매장이 시장통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1971년 제럴드 볼드윈과 고든 보커, 제브 시글 등 세 사람이 시애틀에 설립한 커피 재료 판매회사다. 스타벅스라는 이름은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Moby Dick)’에 나오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Starbuck)에서 따온 것으로, 소설 속 스타벅은 커피를 무척 좋아하는 캐릭터다.

    1971년 걸출한 사업가 하워드 슐츠가 커피 사업에 동참하면서 만들어진 스타벅스 로고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 요정‘세이렌(Seiren)’이 새겨져 있다. 신화 속에서 세이렌은 아름답고 달콤한 노랫소리로 지나가는 배의 선원들을 유혹해 죽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존재다. 초록색 바탕의 현재 로고 안에도 이 세이렌 이미지가 들어가 있는데, 처음 만들 당시 바탕색은 초록색이 아닌 갈색이었다고 한다.

    슐츠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미국식 에스프레소의 힌트를 얻었다. 이탈리아인들이 두 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저녁식사 후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일어나는 것에서 착안해,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커다란 머그잔에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넣고 그 위에 거품을 얹은 뒤 계핏가루를 뿌려 달콤한 맛의 미국식 에스프레소를 개발했다. 미국식 에스프레소는 이후 새벽에 바다로 나가 일을 마치고 피곤에 쩔어 돌아온 어부들 입맛을 사로잡아 나갔다.

    스타벅스 1호점은 얼마 후 시애틀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 전문점이 됐고, 이후 40년 만에 전 세계 1만7000여 개에 달하는 대형 커피숍 체인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도 1999년 7월 이화여대 앞에 첫 번째 스타벅스가 개점한 후 ‘별다방’이란 애칭으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사람들을 홀려 스타벅스에 자주 발걸음을 하게 만들겠다는 뜻으로 만든 요정 로고 덕분인지 스타벅스는 아직도 전 세계인의 입맛을 홀리고 있는 것이다.

    시애틀은 커피 도시다. 스타벅스 1호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거리에 카페가 즐비하다. 특히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근처엔 ‘시애틀스 베스트 커피’‘툴리스’‘피츠 커피’ 같은 유명 커피숍이 가득하다. 그리고 바리스타 손마다 다른 맛을 내는 작고 예쁜 카페들이 여행자를 기다린다. 여행자들이 유명 커피숍을 찾아 헤매는 동안, 현지들은 정작 ‘빅트롤라’나 ‘비바체’ 같은 지역 카페에서 파는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약속이라도 한 듯 저마다 익숙한 카페를 찾아드는 시애틀 사람들….

    시애틀을 커피 도시라 부르는 진정한 이유는 지역 곳곳에 자리 잡고 독특한 맛과 향을 내는 이런 개인 카페들 때문이다. 이 카페들은 유명 커피 산지 농장에서 원두를 직접 구매해 블렌딩한 후 손님에게 내놓는다. 시애틀에서 이런 개인 카페가 모여 있는 중심지가 바로 ‘캐피톨힐’이다. 캐피톨힐의 카페에 가면 다양한 맛의 커피뿐 아니라 다채로운 펑크록 뮤지션의 공연도 볼 수 있다. 세계적 유명 밴드 ‘펄잼’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각종 공연이 열리는 카페는 제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장소로 공연과 함께 커피를 즐기려는 여행자들이 늘 서성인다. 커피 도시, 시애틀의 특별한 커피 문화다.

    환상의 ‘스페이스 니들’ 전망대

    커피향…록음악…그곳에 가면 잠 못 이룬다

    기타 500여 개로 만든 3층 높이의 ‘루츠 앤드 브렌 치스’라는 이름의 거대한 기타 탑(위). 껌벽을 볼 수 있는 조금은 ‘더러운’ 골목은 역설적으로 여러 가지 과일 향기가 가득하다. 바로 과일향 풍선껌 때문이다. 껌벽 주변에는 풍선껌 자판기까지 설치돼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껌을 씹고 또 벽에 붙인다.

    커피 도시 시애틀에는 세계적인 여행정보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관광지 2위’에 선정된 곳이 있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근처에서 만날 수 있는 ‘껌벽(Gum Wall)’이 바로 그곳이다. 1993년 마켓 시어터 안에 있는 극장에서 쇼를 보기 위해 기다리던 대학생들이 심심풀이로 씹던 껌을 벽에 붙이면서 만들어진 곳이다. 극장 관계자들은 처음에는 껌을 떼어내기 바빴지만, 늘어나는 껌의 양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포기하면서 지금의 벽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98년에는 껌벽을 볼거리로 인정하고 유지하기로 결정했고, 지금도 날마다 누군가가 붙이는 껌으로 벽이 조금씩 더 두꺼워지고 있다. 사람들이 씹다 붙인 형형색색 껌이 이 건물을 도배한 듯 붙어 있다.

    시애틀의 상징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바로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이다. 높이 184m의 이 타워는 마치 기다란 바늘 위에 외계 비행물체가 착륙한 듯한 독특한 모습 때문에 ‘우주바늘’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도시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어 이정표 구실을 하며, 세계박람회가 열린 1962년 4월 21일 시민에게 개방됐다. 이 타워는 바람이 심한 날은 좌우로 흔들리는 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속 200마일(약 90m)의 바람과 진도 9.1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안전하게 만들어졌다.

    초스피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 150m에 위치한 원반 모양 전망대에 오르면 해발 4392m 레이니어 산봉우리를 비롯한 대자연과 시애틀 도시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호수와 강, 바다에 반사돼 비치는 멋진 야경과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도 볼 수 있다. 스페이스 니들은 시애틀 문화의 중심지인 시애틀센터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에는 전망대 외에도 오페라하우스와 2개의 극장, 그리고 음악·과학·어린이 박물관과 아이맥스영화관 등이 있어 시민의 사랑을 받는다. 특히 이곳 야경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포스터에도 실릴 만큼 아름답다. 스페이스 니들 그 자체가 뿜어내는 풍경도, 스페이스 니들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모두 한 폭의 그림이다.

    시애틀은 ‘기타 신’이라 불리는 지미 헨드릭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오늘 내 무대는 최고였고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며 자신의 기타를 부수기도 했던 그는 1942년 이곳 시애틀에서 태어나 흑인에 대한 편견과 가난이라는 현실과 싸우며 최고 자리에 섰다. 2000년 개관한 록음악 박물관 익스피리언스 뮤직 프로젝트(Experience Music Project·EMP)는 위에서 보면 부서진 기타 형상을 하고 있으며, 1층에 500여 개의 진짜 기타로 만든 3층 높이의 ‘루츠 앤드 브렌치스’라는 거대한 기타 탑이 세워져 있다. 지미 헨드릭스가 공연 중 부순 기타와 우드스턱 공연 때 사용했던 하얀색 펜더 기타 앞에는 여전히 많은 음악 애호가가 발길을 멈추고 서 있는 모습이 관찰된다.

    이곳에는 지미 헨드릭스 말고도 시애틀 출신의 아티스트를 비롯해 대중음악 역사상 중요한 인물과 공연, 사건들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시애틀 사람들은 음악과 관련한 모든 것을 세심하게 기록하고 정리했다. 일회성 음악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문화적 자산으로 변모시킨 미국인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커피향…록음악…그곳에 가면 잠 못 이룬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미국 시애틀의 멋진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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