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8

2014.10.13

와인 초보자 유혹하는 강한 신맛

美 캘리포니아 ‘퓌메 블랑’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4-10-13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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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 초보자 유혹하는 강한 신맛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왼쪽)와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 내 오크 숙성실.

    소비뇽 블랑은 그 청량감 덕에 서양에서는 음식에 곁들이기 좋은 와인으로 특히 인기가 있다. 우리처럼 식탁에 국이나 김치가 없다 보니 산도 높은 와인이 마치 물김치처럼 입맛을 돋우고 목을 축이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비자는 대체로 신맛이 강한 와인을 좋아하지 않아 소비뇽 블랑을 너무 가볍고 시큼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런 소비뇽 블랑에 퓌메 블랑(Fume Blanc)이란 완전히 다른 옷을 입힌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을 대표하는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Robert Mondavi Winery) 창립자 로버트 몬다비다. 몬다비는 원래 와이너리를 운영하던 집안 출신이지만 와인에 대한 견해가 달랐고, 의견 대립 끝에 결국 1966년 가족을 떠나 독립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유럽 못지않은 고급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자신의 와이너리 설립 후 첫 번째 도전으로 당시 캘리포니아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맛의 소비뇽 블랑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1960년대 중반 미국산 소비뇽 블랑은 별다른 개성 없이 진한 풀향에 단맛만 강했기 때문에 저급 와인 취급을 받았다. 따라서 소비뇽 블랑을 첫 도전으로 삼은 것은 어쩌면 무모한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버트 몬다비는 프랑스 루아르밸리(Loire Valley)의 푸이퓌메(Pouilly-Fume) 와인처럼 만들고 싶었다. 푸이퓌메는 루아르밸리에서도 푸이쉬르루아르(Pouilly-sur-Loire)라는 지역에서 생산하는 최고급 소비뇽 블랑으로, 신선한 풀향과 그곳 테루아에서 생성된 특유의 은은한 연기 냄새가 매력적인 와인이다.

    와인 초보자 유혹하는 강한 신맛

    로버트 몬다비 와인.

    로버트 몬다비는 잘 익은 소비뇽 블랑만 골라 와인을 만들고 강한 풀향을 다스리고자 와인을 오크통에 담아 숙성했다. 전통적으로 소비뇽 블랑은 상큼함으로 승부하는 와인이기에 그 특성을 죽이는 오크 숙성은 피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몬다비가 생산한 오크 숙성 소비뇽 블랑은 풋사과의 신선함과 함께 멜론 같은 열대과일향이 느껴지는 우아한 와인으로, 기존 캘리포니아 소비뇽 블랑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집은 당대 히트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 와인은 지금도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와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로버트 몬다비는 저급한 소비뇽 블랑과 차별화하고자, 그리고 푸이퓌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와인임을 나타내고자 이 와인에 퓌메 블랑이란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그 이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다른 와이너리들도 쓸 수 있게 열어둬 이후 캘리포니아 와이너리들은 로버트 몬다비 방식을 따라 오크 숙성 소비뇽 블랑을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 퓌메 블랑은 캘리포니아에서 생산하는 고급 소비뇽 블랑의 대명사가 됐다.



    퓌메 블랑은 신맛이 강해서 소비뇽 블랑을 꺼리는 와인 애호가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와인일 뿐 아니라, 초보자에게도 와인을 마시는 즐거움을 일깨워줄 수 있는 아름다운 와인이다. 음식에 곁들이기에도 까다로운 편이 아니다. 슈퍼마켓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브리, 카망베르 같은 부드러운 치즈와 잘 어울리고, 다양한 생선요리와도 궁합이 잘 맞는다. 닭튀김에 차가운 퓌메 블랑을 곁들여 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치맥(치킨+맥주)과는 또 다른,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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