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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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한국형 ‘니벨룽겐의 반지’

서울시향의 바그너 ‘라인의 황금’

  •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tris727@naver.com

    입력2014-10-06 1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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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국내 클래식 공연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중대한 공연이 있었다. 바로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의 바그너 ‘라인의 황금’ 콘체르탄테(무대장치와 의상 없이 진행하는 오페라 공연)로, 그날 관객은 ‘한국형 반지’를 향한 힘차고 뜻깊은 첫걸음에 동참한 셈이다.

    ‘라인의 황금’은 독일 낭만파 작곡가인 리하르트 바그너의 기념비적 대작 ‘니벨룽겐의 반지’(‘반지’) 4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다. 전체 상연에 15~16시간(통상 네 작품을 네 번에 나눠 상연한다)이 소요되는 ‘반지’의 초석을 놓은 작품으로, 라인의 황금으로부터 가공할 마력을 지닌 반지가 탄생하는 과정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날 서울시향 단원들과 13명 가수들은 정명훈 예술감독의 지휘 아래 2시간 30분에 걸친 마라톤 공연을 원작 설정대로 중간 휴식 없이 주파했다. 무대장치와 의상이 부재한 대신 조명이 각 장면에 어울리는 색상으로 변화하며 무대를 물들여 분위기 조성에 기여했고, 미학자 전예완이 번역한 자막도 관객의 이해와 몰입을 도왔다.

    이 악극(바그너식 오페라)의 주역이라면 라인의 황금을 탈취해 반지를 만든 난쟁이 알베리히와 신들의 우두머리 보탄을 들 수 있다. 전자는 캐나다의 베이스바리톤 네이선 버그가, 후자는 영국의 바리톤 크리스토퍼 몰트먼이 맡아 열연을 펼쳤다. 특히 세계적인 리트(독일 예술가곡) 가수이자 모차르트 오페라 주역으로 유명한 몰트먼이 탁월한 가창과 연기를 선보였는데, 기존 보탄과는 사뭇 다른 감각적인 음색과 세밀한 억양, 다채로운 표현으로 모든 배역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반면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배역인 ‘불의 신’ 로게로 분한 독일 테너 다니엘 키르히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역시 리트와 모차르트 배역으로 잔뼈가 굵은 그는 유달리 부드러운 음색과 섬세한 표현으로 그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가창을 들려줬지만 다른 가수들에 비해 성량이 너무 부족했다.



    그 밖에 출중했던 배역을 꼽는다면, 먼저 보탄의 아내 프리카 역을 맡은 미국의 세계적 메조소프라노 미셸 드영이 명성에 걸맞은 존재감을 뽐냈고, 알베리히의 동생 미메 역의 독일 테너 마티아스 볼브레히트는 명확한 발성과 딕션으로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 거인 형제로 분한 유리 보로비에프와 알렉산데르 침발류크는 러시아계 베이스다운 압도적인 성량으로 거대한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정명훈의 지휘와 오케스트라 연주도 기대 이상이었다. 비록 전주곡에서 라인 강의 굽이치는 물결이 충분히 부각되지 않는 등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시종 안정된 앙상블을 유지한 지구력, 유장한 흐름 속 긴장과 이완에 적절히 대처한 집중력 등 칭찬받을 부분이 더 많았다. 다만 마지막 발할라 입성 장면에서 들려준 총주는 지나치게 파괴적이지 않았나 싶다.

    이번 공연은 연주 완성도, 청중 반응 등 여러모로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 전적으로 외국 단체에 의존했던 과거 ‘반지 초연’ 때와 달리 우리 악단의 역량으로 구현한 ‘반지’ 무대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아무쪼록 내년으로 예정된 후속 공연에선 더 큰 성과를 이루길 기대한다.

    위풍당당 한국형 ‘니벨룽겐의 반지’

    9월 26일 열린 서울시향의 ‘라인의 황금’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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