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4

2014.09.15

근육질 같은 타닌이 숙성된 伊 명품

사그란티노 디 몬테팔코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4-09-15 10:1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근육질 같은 타닌이 숙성된 伊 명품

    사그란티노 디 몬테팔코를 생산하는 이탈리아 움브리아 주 몬테팔코 마을 전경(왼쪽). 사그란티노 와인.

    웬만한 와인은 다 경험해봤다고 자부하는 와인 애호가가 뭔가 독특한 와인을 맛보고 싶어 하면 나는 주저치 않고 이탈리아 와인을 추천한다. 로마 멸망 이후 수많은 도시국가로 나뉘었다가 1861년에야 통일된 이탈리아는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포도 품종보다 지방별 토착 품종이 잘 발달해 독특한 와인의 최고 집합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품종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재배하지 않고, 재배한다 해도 그 맛이 나지 않으니, 개성 만점 와인을 즐기고자 한다면 이탈리아는 무한 레퍼토리로 매번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움브리아(Umbria)는 우리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중부 이탈리아에 자리한 작은 주다. 반도 국가 이탈리아에서도 드물게 사방이 육지로 둘러싸인 내륙으로, 피렌체와 로마 중간에 위치해 있다. 키안티 와인으로 유명한 토스카나 지역과 기후, 지질은 비슷하지만 토스카나의 명성 탓에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이곳에서 생산하는 숨은 명품으로 세계적 이목을 끄는 와인이 바로 사그란티노 디 몬테팔코(Sagrantino di Montefalco)다.

    사그란티노는 움브리아 토착 포도 품종으로 몬테팔코라는 작은 마을에서만 생산된다. 마을 전체 포도밭이 100ha(100만m2) 정도로 생산량이 워낙 적다 보니, 이탈리아 와인으로는 최고 등급인 DOCG임에도 이탈리아 밖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사그란티노 디 몬테팔코는 다른 포도 품종을 전혀 섞지 않고 사그란티노로만 만드는데, 이 포도에는 와인 색상을 결정짓는 안토시아닌과 떫은맛을 내는 타닌 성분이 다른 포도 품종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 있다. 이 두 성분은 폴리페놀이란 항산화물질로,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동맥경화와 노인성 치매, 뇌경색, 심근경색, 당뇨, 암 등을 예방한다. 명품 와인이 항산화 기능마저 명품으로 갖춘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몸에 좋은 와인이라도 맛이 좋아야 명품이 되는 법. 강한 타닌을 다스리고 맛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최소 29개월의 숙성 기간을 거쳐야만 상품으로 출시 가능하다.



    사그란티노 디 몬테팔코의 묵직함과 탄탄함은 건장한 근육질 남성을 떠올리게 한다. 색상은 유혹적일 만큼 검붉고 와인 잔에 코를 대는 순간 피어나는 부케는 화려하면서도 우아하다. 한 모금 머금으면 긴 숙성 기간 어우러진 복잡하고도 미묘한 향이 입안 가득 차오른다. 검은 자두, 체리, 바이올렛, 검은 후추, 블랙 초콜릿, 흙 내음 등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평소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해 강한 느낌의 와인을 선호하는 한국인에게 딱 맞는 와인이다. 타닌이 강한 와인이니 쇠고기 스테이크나 구운 양고기, 돼지고기 목살구이처럼 육질이 단단한 음식 또는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린다.

    생산량이 적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사그란티노 디 몬테팔코는 종류도 많지 않고 가격대도 결코 저렴하지 않다. 하지만 좋은 사그란티노 디 몬테팔코를 발견하면 몇 병 구매해 와인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단단한 타닌 덕분에 10년 넘게 보관 가능한 몇 안 되는 와인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건강에 좋은 폴리페놀도 다량 함유하고 있으니 고마운 분에게 선물하기에도 딱 좋은 와인이 아닐까 싶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