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4

2014.09.15

10대들에게 닥친 혹독한 생존 게임

웨스 볼 감독의 ‘메이즈 러너’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4-09-15 0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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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들에게 닥친 혹독한 생존 게임
    ‘다이버전트’ ‘헝거게임’ ‘메이즈 러너’의 공통점은 뭘까. 첫 번째 공통점은 이들 작품 모두 청소년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이 세 편의 베스트셀러 원작이 모두 극한의 생존 게임 속에 10대들을 감금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목숨을 건 게임에 나서고, 살아남으려면 미션을 완수해야 한다. 실패 대가는 죽음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 그리고 미션을 통과하는 것이다. 왜, 어떻게 생존 게임이 만들어지고 누가 10대들을 그곳에 집어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밀폐된 공간에 한 달에 한 명씩 10대 소년을 투입한다. 소년들이 기억하는 사실은 오직 자신의 이름뿐, 아이들은 제 나름의 생존법칙을 만들어 살아간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열리는 문을 지나 미로를 탐험하는 선봉대, 그들이 바로 ‘메이즈 러너’다. 빠른 속도와 민첩한 움직임을 가진 메이즈 러너들은 일정한 시간대에 열리고 닫히는 미로에 들어가 길을 익히고 출구를 탐색한다.

    문제는 밤이다. 밤이 되면 미로에 괴물이 나타나고, 문이 닫히기 전 미로를 빠져나오지 못하면 괴물에게 죽임을 당한다. 영화는 호기심 많은 문제적 주인공 토마스가 이곳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토마스는 아이들이 정해놓은 규칙 사이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그 규칙이 족쇄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토마스는 감금 상태에서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보수적인 아이들과 대립하지만, 메이즈 러너가 돼 어떻게든 출구를 찾으려 한다. 가만히 있는 것은 결국 천천히 죽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아이들을 설득하기도 한다.

    ‘메이즈 러너’는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과 닮았다. 차별점이 있다면 고립 상태에서의 인간 본성보다 출구를 찾아나가는 모험에 힘을 더 실었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처한 혹독한 상황이나 인공적으로 건설된 잔인한 미로는 어떤 점에서 무척 당혹스럽다. 최소한의 인권도, 생명 존중도 없는 살인 무대처럼 보인다. 영화는 마지막 반전처럼 이 잔혹함의 이유를 설명한다. 제법 개연성 있게 보이지만, 그럼에도 그 당위성까지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처럼 과도한 설정의 이야기에 10대가 매혹당하는 현실이다. 이 이야기의 주 소비층인 10대는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기보다 과도한 생존경쟁에 몰린 소년들의 영화적 현실 자체에 공감을 표한다.



    10대들에게 닥친 혹독한 생존 게임
    기성세대 처지에서 보면 영화의 설정은 지나치게 잔혹하고 극단적이다. 물론 아이들은 소수의 희생을 치르고 위험에서 벗어나 탈출에 성공한다. 아이들이 결국 세상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메시지도 중요하게 언급된다.

    결국 이러한 생존 게임 서사에서 강조하는 것은 문자로 상상해야 했던 극악무도한 세계의 시각화라고 할 수 있다. ‘캄캄한 폐쇄 공간’ ‘거대한 벽돌로 둘러싸인 미로’ 같은 소설 속 묘사는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사의 어마어마한 자본력과 할리우드 기술력을 통해 위압적인 시각 이미지로 재현된다. 영화 ‘메이즈 러너’를 즐기는 방법 역시 이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체험이 먼저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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