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3

2014.09.01

노후 설계는 ‘연금 중심’으로 간다

돈 규모보다 생활비 조달 현금 흐름이 더 중요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4-09-01 13: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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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후 설계는 ‘연금 중심’으로 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후 준비 하면, 주로 ‘돈의 크기’가 화제로 올랐다. 돈이 얼마나 있어야 노후 생활을 편안히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10억 원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그 금액은 금융회사가 내놓은 노후 공포 마케팅이라며 3억 원이면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돈 규모보다 ‘월 생활비가 얼마나 필요한가’라는 현금흐름 중심의 얘기가 오간다. 이때 빠지지 않는 것이 연금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국민연금 재정이 고갈되느냐 마느냐에 대한 논의가 많았지만, 요즘은 어떻게 하면 국민연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많다. 앞으로 연금 중심의 생활비 조달과 관련한 고민은 더 많아지고 깊어질 것이다. 왜 그럴까.

    먼저 정부 정책 때문이다. 정부가 드디어 연금을 활성화하지 않고는 국민 노후를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월 27일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내용 중 핵심 포인트를 간추리면 △퇴직연금제도의 전면 도입 △세제 혜택 확대 △퇴직연금의 연금 수령 유도 △DC(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의 주식투자 비율 확대 등을 꼽을 수 있다. 더 많은 돈을 퇴직연금 같은 사적연금에 납부하게 하고, 일시금이 아닌 연금으로 받도록 유도하며, 주식 같은 리스크 자산의 편입 한도를 늘려 수익률 제고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2022년 퇴직연금제도 의무화

    첫째, 퇴직연금제도의 의무화다. 현재는 기업이 퇴직금과 퇴직연금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2005년 말부터 도입된 퇴직연금과 퇴직금의 가장 큰 차이는 퇴직금 충당금의 적립 방식이다. 퇴직연금은 충당금을 회사 밖 연금사업자인 금융회사에 적립토록 하고 있다. 근로자의 수급권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정부는 퇴직연금제도 의무화를 더 강화해 단계별로 2016년부터 2022년까지 10인 미만 사업장까지 의무화한다는 방침이다.



    둘째, 퇴직연금 세액공제 확대와 퇴직연금의 연금 수령 유도다. 퇴직연금에 추가로 납부하는 300만 원에 대해서는 별도의 세액공제 한도를 신설한다. 기존 연금저축계좌와 퇴직연금 추가 납부액 400만 원에 더해 300만 원을 추가로 세액공제해준다는 것. 700만 원 한도까지 납부하면 매년 92만4000원을 돌려받게 된다.

    현재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기업의 근로자는 퇴직 시 연금보다 일시금 수령 형태를 선호하고 있다. 세금 등 별다른 혜택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5년 1월 1일부터 연금 수령 시 일시금 수령에 비해 세 부담을 30% 줄여준다는 계획이다. 확실하게 세금 측면에서 이점을 제공해 연금 수령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DC형의 주식투자 비율 확대다. 우리나라 사람은 퇴직연금은 안전해야 한다는 프레임(frame)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퇴직연금의 93%가 원리금 보장형에 쏠려 있을 정도로 보수적 운용 일색이다. 하지만 시중금리가 낮아짐에 따라 원리금 보장형 수익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2011년 9월 말 기준 4.91%였던 공시금리가 2014년 8월 말 현재 2.93%로 하락했다. 문제는 앞으로 상승보다 하락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이다.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매력을 상실할 것이다.

    노후 설계는 ‘연금 중심’으로 간다
    수익률을 올리려면 주식 같은 리스크 자산을 편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현재 퇴직연금의 주식 비중은 DB(확정급여)형의 경우 70%, DC형은 40%가 한도다. 앞으로는 DC형도 DB형과 같은 70% 수준까지 리스크 자산을 편입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단, 주식 직접 투자나 파생상품 투자는 앞으로도 불가능하다.

    정부 정책과 더불어 우리나라 국민이 처한 현실도 연금 중심으로 노후 자금 설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980년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저축률을 기록했던 우리나라는 소비로 경제를 지탱하는 미국(5.8%)보다 낮은 수준인 3.8%의 가계 순저축률을 기록하고 있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최하위권이다. 반면 가계부채는 계속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더욱이 소득은 늘지 않고 있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임금은 6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우리 국민이 처한 경제적 풍경은 소득은 오르지 않고, 빚은 계속 늘며, 저축할 돈은 없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노후를 준비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은퇴 자산의 핵심은 연금

    노후 설계는 ‘연금 중심’으로 간다

    8월 27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브리핑룸에서 열린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정은보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병두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 정책국장, 권영순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 정 차관보, 이호승 기획재정부 국장.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열심히 노후에 대비해 저축을 하고 있다. 바로 국민연금, 퇴직연금, 연금저축계좌를 통해서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월급에서 자동으로 납부되므로 저축한다는 의식 없이 저축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를 모두 합치면 상당한 금액이다. 실제 연봉 3000만 원, 5000만 원, 7000만 원 근로자가 연금저축계좌에 400만 원 세액공제 한도까지 넣는다고 가정할 경우, 각각 연간 920만 원, 1257만 원, 1423만 원가량을 저축하는 것이다(표 참조). 즉 연간 1000만 원 안팎을 저축하는 셈이 된다. 만일 2015년부터 퇴직연금에 300만 원을 추가 납부한다면, 연간 저축액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가계 살림살이와 연금에 들어가는 돈을 감안하면, 노후 준비를 위한 자산운용은 연금을 중심으로 세워야 하고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후 준비는 연금을 중심으로 설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연금은 논란이 많은 제도지만 아직 인류는 연금을 대체할 만한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다. 경제 수준이 일정 정도 올라온 나라에서는 연금을 중심으로 노후 설계를 하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부동산가격 상승, 고금리로 돈만 많이 벌면 노후 준비는 된다는 왜곡된 의식이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의식과 결별해야 한다. 은퇴 자산의 핵심은 연금이고, 연금 중심으로 노후 설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정언 명령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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