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3

2014.09.01

김우중法 반발 ‘김우중의 눈물’

대우그룹 ‘기획 해체’ 주장 눈에 띄는 행보와 발언에 주목

  •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l.com

    입력2014-09-01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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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중法 반발 ‘김우중의 눈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8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우특별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제 시간이 충분히 지났으니 적어도 잘못된 사실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일에 연연하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우리가 한 일과 주장한 일을 정당하게 평가받고, 과연 대우 해체가 합당했는지 명확히 밝혀지길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저는 평생 동안 항상 앞만 보며 성심을 다해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그것이 국가와 국가의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에 반하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눈물을 쏟았다. 8월 26일 대우그룹 해체와 김 회장의 회고를 담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의 저서 ‘김우중과의 대화’ 출판기념회를 겸한 대우특별포럼 자리에서였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겠노라 큰소리치던 위풍당당한 기업인의 모습은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작고 초라해진 노인의 모습이었다. 연신 코를 훌쩍이는 그를 향해 행사장에 참석한 옛 대우 직원 500여 명이 기립박수로 응원을 대신했다.

    1998년 대우자동차가 제너럴모터스(GM)에 매각될 당시 대우자동차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추영호 씨는 이 자리에서 정부와 GM에 대한 원망과 울분을 토해냈다. 그는 “국가공권력에 의해 많은 이가 감옥으로 끌려갔으며 6000여 명 직원은 뿔뿔이 흩어졌다. 헐값 매각 이후 GM은 부품업체의 세계 진출과 30% 이상의 지분율에 대한 약속을 저버리고 군산 공장까지 죽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강도 높은 비난을 이어갔다.

    “잘못된 사실 바로잡아야”

    김 전 회장과 신 교수의 주장에 대한 찬반양론도 격렬하다. 김 전 회장의 업적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 내용과 모양새가 강해지고 있다. 대우그룹 해체는 김 전 회장의 부실경영 때문이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의 압박을 견디다 못한 정부가 전시용으로 벌인 ‘기획 해체’였다는 것이다.



    저서를 통해 이러한 주장을 공론화한 신 교수는 이날 간담회 자리에서도 부채비율 200% 규제와 GM의 대우차 비밀 인수의향서, 대우와 삼성의 자동차 빅딜 종용 배경, 대우그룹의 단기차입금 19조 원 증가 원인 등에 대해 당시 경제정책 책임자였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해명해줄 것을 거듭 촉구했다.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 구도의 늪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한국 경제에 대해 신 교수가 내린 진단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당시 정부가 IMF 프로그램을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따른 탓에 세계 최초의 중진국 출신 다국적 기업이던 대우그룹의 해체는 물론 제일은행과 외환은행 등 한국의 굵직한 금융기업이 헐값에 매각됐고, 이로 인해 국부 해외 유출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그의 주장도 현 시점에서는 그 나름 설득력을 가진다.

    물론 반박도 만만치 않다. 대우그룹 해체의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할 김 전 회장이 이를 정부에 떠넘긴 채 추징금 납부를 거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이야기다. 강봉균 전 장관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15년 동안 과연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겠느냐”며 “부채비율 규제 등은 모두 국제적 스탠더드를 따라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가 정부 관료들에게 밉보인 탓에 타깃이 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당시 대우그룹이 정부 입김에 좌지우지될 만큼 작은 기업이 아니었음을 온 국민이 다 알고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김우중法 반발 ‘김우중의 눈물’

    최근 발간된 책 ‘김우중과의 대화’(왼쪽)와 이 책 저자인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덧붙여 강 전 장관은 “외환위기 원인 가운데 하나는 당시 재벌들이 정부의 금융특혜를 받아 진행한 과잉투자가 금융부실화로 이어져 국제금융시장에서 신용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대우를 제외한 어떤 재벌그룹도 구조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른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려고 자구노력을 펴는 동안 대우그룹은 금리가 비싼 회사채를 남발하는 등 다른 선택을 했고, 그 여파로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는 이야기다.

    세르히오 호샤 한국GM 사장 역시 8월 27일 ‘한국 GM의 날’ 행사에서 “리더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현실 파악”이라며 김 전 회장의 주장을 정면 비판했다. 대우차를 인수할 당시에는 8200명 직원이 차 38만 대를 생산했지만, 지금은 직원 수가 2만여 명에 달하며 생산량도 200만 대로 늘어났다는 것. 헐값 매각 때문에 국가적으로 210억 달러 손실을 입었다는 김 전 회장 측 주장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추징금 등 헌법소원 준비 중

    2006년 11월 김 전 회장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는 41조 원대의 분식회계와 이를 바탕으로 한 9조 원대의 사기대출 등과 관련해 그에게 징역 8년 6개월, 추징금 17조9253억 원을 선고한 바 있다. 2008년 1월 특별사면을 받은 김 전 회장은 추징금 강제집행을 피하고자 1000억 원대의 재산을 빼돌린 혐의로 같은 해 다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법원이 선고한 개인 추징금 가운데 그가 납부한 금액은 884억여 원. 전체 금액의 0.5%이다.

    최근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 배임 등에 대해 부과된 징역형과 추징금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로 송금한 외화는 김 회장이나 그룹 관계자가 개인적으로 착복한 것이 아니라 회사 자금으로 사용했으며, 이는 대법원에서도 인정한 내용이므로 추징금을 추가로 납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충분히 지났으니 잘못된 사실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8월 26일 발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후 행보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다만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되는 나이다. 남은 인생을 마지막 봉사 기회로 알고 청년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데 성심성의를 다하겠다”는 발언에서는 앞으로 벌어질 진실 공방의 한 축인 ‘민족주의적 기업인’으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하고픈 바람을 읽을 수 있다.

    한편 국회에 계류 중인 ‘김우중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제3자 명의의 차명재산을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법안의 골자지만, 회계상 부당처리액을 개인과 가족이 토해내는 게 과연 정당한지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 법이 통과될 경우 김 전 회장의 가족이 보유한 자산은 물론, 그의 은닉재산 중 하나로 거론돼온 롯데하이마트 재산을 환수하는 조치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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