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3

2014.09.01

권력 끝에 서성이는 일그러진 성욕, 왜?

검찰의 연이은 성추문은 ‘권력 도취’와 ‘권력 확인’ 일탈 행동

  •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입력2014-08-29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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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복종시킬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성욕이란 무엇인가. 성적 행위에 대한 욕망이다. 뜻이 전혀 다른 이 두 단어가 서로 교묘하게 짝을 이루면서 우리를 실망케 하고 있다. 검찰의 연이은 성적 일탈 행동 때문이다.

    두 남녀가 서로 사랑해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보통의 삶에는 성욕과 권력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연애 시절 사랑의 힘에 의한 성욕과 결혼 생활 중 자연스레 드는 성욕도 있겠지만, 성욕이란 말은 왠지 동물적이고 저속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권력 역시 실상은 가족 내에서 엄연히 존재한다. 대개 아빠 또는 남편에게 권력이 많이 편중해 있고, 간혹 엄마 또는 아내의 권력이 더 우세하기도 하다. 그러나 권력이란 말은 왠지 무섭고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일찍이 정신분석학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성욕은 인간 본능이며, 성욕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경증적 증상이 생기거나 정신적 방어기제가 형성된다고 했다.

    공격 욕구 역시 인간 본능으로 공격성을 얼마만큼 잘 억누르거나 다른 건설적인 형태로 승화시키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고 했다. 따라서 지배적이고 통제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추구한다. 누군가의 삶 또는 행동을 자기 의지대로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상당한 권력을 쟁취하고 만족을 얻는다.

    권력을 쥔 사람은 성욕 왕성?



    권력 끝에 서성이는 일그러진 성욕, 왜?

    성 접대 논란에 휘말렸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왼쪽)과 ‘음란행위’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수창 제주지방검찰청장.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성욕을 분출하는 것이 큰 문제다. 물론 모든 권력자가 성욕을 함부로 분출한다고는 볼 수 없으나 최근 연이어 터진 사건은 ‘혹시 권력을 쥔 사람들은 성욕이 왕성한 사람?’이라는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별장 성 접대 동영상 사건에 연루됐다는 논란에 휩싸였으며, 전모 전 검사는 피의자와 뇌물성 성관계를, 또 다른 전모 전 검사는 사건 피의자로 만난 연예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상태에서 그를 위해 성형외과 원장을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김수창 전 제주지방검찰청장이 공공장소에서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런 사례는 열거하기 벅찰 정도다.

    이러한 현상은 각 개인의 도덕성 혹은 병적 성향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필자의 견해는 좀 다르다. 권력 끝에 필연적으로 도사리는 뒤틀린 성욕의 결과로 보기 때문이다. 즉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2, 제3의 성 추문 사건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항상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면서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다.

    그렇다면 왜 권력 끝에는 뒤틀리고 추악한 성욕이 도사리는 것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자아도취다. 다시 말해 권력 도취라고도 할 수 있다. 권력자는 현 자리에 오르려고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이다. 중간에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을 수도 있다. 혹은 일사천리로 늘 승승장구했을 수도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쳤든 그는 현재의 성공 혹은 성취를 이뤘고, 그 결과 ‘나는 정말 대단해’ ‘나는 훌륭해’ ‘내 생각과 행동이 결국 옳아’ 등의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는 곧 자기가 항상 옳다는 잘못된 신념으로 이어지고, 다른 이에게는 독선과 아집으로 비친다. 그런 사람은 성적 유혹이 있거나 성적 욕망이 느껴질 때면 ‘이 정도면 괜찮아. 오히려 나도 한 인간으로서 본능에 잠깐 충실할 뿐인데 뭐가 문제야. 오히려 더 인간적이지. 저 사람(들)도 나를 특별하게 여기니까 오히려 영광이지 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주저함이나 불안감 없이 혹은 양심의 가책 없이 성적 일탈을 즐기게 된다.

    보통 사람은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신을 파멸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늘 두려워하거나 주저한다. 성적 일탈을 꿈꾸지 않을뿐더러, 그러한 행동을 한다손 치더라도 불안과 긴장 상태에서 정말 조심스럽게 하게 된다. 그러나 권력자는 어디 그런가. ‘누가 감히 나를!’이라는 생각을 이미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둘째, 권력 확인이다. 권력자는 법적으로 주어진 권한을 행사한다. 예컨대 검사는 사건 피의자를 기소하거나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권한을 갖는다. 한 사람의 운명과 삶의 방식을 뒤흔들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다. 검사가 구속영장만 신청하지 않아도 피의자와 그 가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테고, 심지어 고마워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검사의 속성 때문에 일반인은 그저 검사만 봐도 위축되고 조심스러워 한다.

    성욕과 권력욕의 동일한 속성

    권력 끝에 서성이는 일그러진 성욕, 왜?
    친(親)법조계 성향을 가진 사람은 아마 검사를 사회 정의 구현자라고 생각하며 존경과 신뢰의 눈길을 보낼 것이다. 그래서 검사는 궁금해진다. ‘사람들이 나를 정말 두려워할까. 아니면 존경할까.’ 그래서 검사 옷을 입은 상태가 아닌, 일상에서 권력을 행사해볼 것이다. 다른 형태의 권력이다.

    일상에서 검사는 다른 사람이 자기 눈치를 보거나 자기 얘기에 잘 동조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친구끼리 모여 식당을 정할 때도 검사인 자신의 의견이 주로 채택된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이성이 끼어 있는 자리에서도 자신이 검사라는 사실을 알리면 상대가 쌀쌀맞거나 경계하는 태도가 아닌, 비교적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는 마침내 자신이 손을 뻗으면 저 여인이 받아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자기 욕망을 실행에 옮긴다. 자신이 여인의 몸을 원하므로 그 여인이 몸을 바칠 것이라는 권력자적 사고방식이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시키면 상대방이 순순히 응하리라는 믿음은 다른 형태의 권력-피(被)권력 관계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사장이 고용인을 성추행하고, 교수가 학생을 성희롱하며, 상급자가 하급자를 성폭행하는 일이 흔히 벌어지는 이유다.

    거꾸로 고용인이 사장을, 혹은 하급자가 상급자를 성추행하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만일 이성의 몸을 탐해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지배했다면, 그는 더 나아가 상대 마음까지 지배하고자 하는 권력 욕구를 드러낼 것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성욕은 권력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고, 모습만 달리할 뿐 동일한 속성의 ‘무엇’이다.

    셋째, 불안 해소다. 권력자는 권력 쟁취에 만족감을 느끼면서 행복해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올라오는 불안을 느낀다. ‘내 현재 모습이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가’ ‘지금보다 더 큰 권력을 얻을 수 없나’ ‘다른 사람이 나를 밀어내면 어떻게 하지’ 같은 생각이 그를 불안하게 만든다. 심리적 불안은 신체적 긴장을 동반한다.

    권력 끝에 서성이는 일그러진 성욕, 왜?

    김수창 제주지방검찰청장의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

    신체적 긴장을 이완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것은 ‘배설’이다. 대소변을 배설한 직후 편안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감정 패턴이다. 정액을 쏟아내는 일 역시 일종의 배설이다. 배설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불안을 경감하며 나아가 권력을 확인하고 쾌락마저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성(性)’이다.

    넷째, 열등감의 발로다. 권력자는 일반인과 달리 상당한 우월감 또는 선민의식을 갖고 있다. ‘나는 우수하다’ ‘나는 특별하다’ ‘나는 머리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 다른 형태의 열등감을 지닌 경우가 많다. ‘나는 몸이 좀 약해’ ‘내 외모는 별로야’ ‘(신체적) 힘과 근력이 딸려’ ‘(성적) 정력이 부족해’ 등이다. 가장 높은 곳에 앉은 권력자가 때로는 일자무식의 근육질 남자를 쳐다보고 부러워하면서도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다.

    열등감 혹은 굴복시키려는 마음

    권력자는 마치 근육질 남자가 ‘비록 내가 사회적 권력 면에서는 한참 뒤처져 있지만 그래도 내가 신체적으로 힘이 더 세고, 너와 싸우면 충분히 이겨. 다만 그러지 못하니까 가만있는 거야’라고 얘기하며 자신을 비웃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공중목욕탕에서는 몸이 좋고 덩치가 큰 남자가 위풍당당하게 활보한다. 사회적 옷을 벗은 알몸 상태에서 커다란 성기를 가진 다른 남자를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은 권력자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약이 오른다.

    ‘그래? 성기와 몸이 크다고 너희가 여자를 함부로 탐할 수 있어? 그것은 나만 가능한 일이야.’ 큰 수컷 사자를 제치고 작은 사자가 암컷 사자들을 차지하는 현상은 인간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여하튼 몸집이 작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좀 더 성공하는 이른바 ‘작은 고추가 더 맵다’ 현상은 일종의 보상심리를 잘 설명해준다.

    ‘키가 작은 대신 더 크게 성공해 사람들을 굴복시켜야겠다’와 심리적 기전이 비슷한 것은 ‘남성성이 부족한 대신 더 성적으로 활발해져 강한 남성이라는 것을 느껴야겠다’의 무의식적 사고다. 그렇다면 성적 능력이 부족한 권력자가 오히려 더 성을 탐할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아예 그쪽 방면으로 관심을 끄고 살면 더 좋으련만.

    권력과 일그러진 성욕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권력자에 대한 분노와 실망을 넘어 측은한 감정까지 불러일으킨다. 지난 수십 년간 치열하고 경쟁적인 삶의 과정에서 승자로 우뚝 선 권력자가 한순간의 잘못된 행동으로 무너지는 현상은 우리에게 ‘인생무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권력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의미 있게, 혹은 영향력 있게 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성욕은 무엇인가. 단순히 성적 욕망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성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권력자일수록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욕을 억제해야 한다. 혹시 사랑의 감정을 느끼더라도 배우자가 아닌 사람이라면 감정마저도 억제해야 한다. 이 같은 모습을 권력자가 보여줄 때 우리는 그를 신뢰하고 따르며 존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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