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1

2014.08.18

호흡기를 단 청춘, 그래도 사랑하라

조시 분 감독의 ‘안녕, 헤이즐’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4-08-18 16:0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호흡기를 단 청춘, 그래도 사랑하라
    영화 ‘안녕, 헤이즐’은 존 그린의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The Fault in Our Stars)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소설 원작은 인기가 대단해 ‘뉴욕타임스’,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대신하는 하이틴 로맨스물로 자리 잡았다. 영화 인기도 소설 못지않다. 같은 날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제치고 북미 흥행 수익 1억 달러를 돌파했으니 말이다.

    아이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 트위터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10대가 환호했던 소설과 영화라니, 이 영화를 보면 신세대의 다른 감수성을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의외로 영화 ‘안녕, 헤이즐’이 호소하는 감성은 새롭다기보다 구태의연하고 상투적이다. 불치병에 걸린 두 10대 남녀의 사랑을 그렸으니 말이다.

    산소 탱크를 끌고, 메고 다니는 소녀 헤이즐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말기암 환자다. 13세에 처음 발견한 갑상샘암은 잘 치료되는가 싶더니 폐로 전이된 상태로 재발견된다. 새로 나온 항암제 덕에 17세가 된 지금까지 잘 살아가고 있다. ‘잘 살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평범한 10대 소녀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10대처럼 지내보라”는 엄마의 말에 헤이즐은 이렇게 대답한다.

    “엄마, 암환자들 모임이 아니라 클럽에 가서 술 마시고 대마초 피우는 게 평범한 10대의 삶이야.”

    하지만 암환자 모임에도 로맨스가 있다. 이 평범함과 예외성이 바로 ‘안녕, 헤이즐’이 그리는 로맨스의 핵심이다. 암환자 모임에서 헤이즐은 일생일대의 만남을 갖는다. 투병기를 자기 삶으로 이야기하는 헤이즐에게 “그거 말고 진짜 네 이야기를 해봐”라고 말하는 소년,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지 않는 한 담배는 우리를 해칠 수 없어. 이건 그냥 메타포야”라고 말하는 소년, 오거스터스 말이다.



    이후 이야기는 헤이즐과 오거스터스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마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처럼 영화 ‘안녕, 헤이즐’ 속에는 사랑이 절대적 질문이 된 10대에게 바쳐진 수많은 대답이 있다. 그 대답은 “고민하지 말고 빠져라”로 요약된다. 말기암 환자도 사랑에 빠지고 골육종 환자도 사랑하는데, 사지 멀쩡한 10대여, 주저하지 말고 지금 사랑하라는 것이다.

    고작 10대지만 그들은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행성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멸망 직전의 지구인처럼 죽음을 이야기한다. 서로에게 미리 쓴 추도사를 읽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안녕, 헤이즐’ 속 죽음은 주제가 아니라 액세서리다. 헤이즐의 코에 걸린 호흡기가 그의 상징이듯, 치명적 질병은 두 사람의 아름답고도 안타까운 사랑을 보존해주는 진공포장과 같다. 죽음은 두 사람의 사랑에 놓인 치명적인 걸림돌, 사랑의 환상을 찾는 동년배에겐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 이야기로 남겨질 환상의 도구다.

    이 환상은 네덜란드 여행기에서 극대화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속 주인공이 이탈리아 나폴리와 인도, 인도네시아 발리에 가서 ‘자아’를 찾는다면, 헤이즐과 오거스터스는 네덜란드에서 ‘사랑’을 찾고 ‘확신’을 얻는다. 잘 만들어진 여행 프로그램이 서사적이듯 ‘안녕, 헤이즐’ 속 암스테르담도 여행 충동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고답적 이야기에 매료된 10대의 마음이다.

    호흡기를 단 청춘, 그래도 사랑하라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