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1

2014.08.18

품질도 와인 레이블도 갖고 싶은 명작

무통 로쉴드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4-08-18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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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질도 와인 레이블도 갖고 싶은 명작

    1973년 피카소의 그림 ‘바카날’, 1987년 필리프 드 로쉴드 남작의 얼굴, 1945년 필리프 쥘리앙의 그림이 담긴 무통 로쉴드 와인의 레이블(왼쪽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은 보르도가 20세기 최고 빈티지를 기록한 해이다. 그 특별함과 승전을 기념하려고 무통 로쉴드 소유주인 필리프 드 로쉴드 남작은 젊은 화가 필리프 쥘리앙(Philippe Jullian)에게 레이블에 들어갈 그림을 의뢰했다. 어쩌면 로쉴드 남작에게 종전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이었던 자신은 살아남았지만 가톨릭 신자였던 프랑스인 아내는 나치 수용소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쉴드 남작은 평화를 되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가족의 슬픔을 위로하는 레이블을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만들어진 1945년 레이블이 와인 애호가들로부터 대단한 인기를 끌자 이후 무통로쉴드는 매년 예술가를 섭외해 새로운 레이블을 내놓았다. 45년 이래 한 해도 쉬지 않았으니 지금까지 참여한 화가와 예술가 수가 70명에 달한다. 그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바로 작품이 떠오를 만큼 유명한 사람도 많은데 대표적으로 장 콕토, 살바도르 달리, 헨리 무어, 호안 미로, 샤갈, 칸딘스키, 앤디 워홀, 제프 쿤스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화가의 명성 못지않게 로쉴드 가족의 사연이 빛나는 두 레이블이 있다.

    1855년 보르도 샤토에 등급을 매길 때 무통 로쉴드는 2등급으로 지정되는 굴욕을 맛봤다. 그 이유가 와인 품질보다 소유주인 로쉴드 가문이 영국 출신이었기 때문이라는 뒷말도 있다. 무통 로쉴드는 자신들의 와인이 2등급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수많은 노력과 로비를 통해 1973년 드디어 1등급으로 인정받았다. 1855년 이후 거의 변한 적 없는 샤토 등급표를 120년에 걸친 노력으로 바꿨으니 그 집요함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해 피카소가 타계했다. 무통 로쉴드는 ‘피카소를 기념하며’라는 문구와 함께 무통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던 피카소의 그림 ‘바카날’(마시고 노래하는 축제)을 레이블에 실었다. 그리고 ‘나는 1등급이다. 나는 2등급이었다. 무통은 변하지 않는다’고 승급 소감도 함께 적었다. 자신들의 와인이 1등급이 됐지만 결코 자만하지 않을 것이며 원래 2등급 품질도 아니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1987년 로쉴드 남작이 세상을 떠났다. 그해 레이블은 스위스 화가 한스 에르니(Hans Erni)가 맡아 남작의 얼굴과 포도송이를 그려 장식했다. 하지만 그림보다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은 딸 필리핀이 레이블에 적어 넣은 글이 더 가슴을 울린다. 그는 ‘무통의 혁신자인 내 아버지 필립 드 로쉴드 남작께 그의 예순다섯 번째이자 마지막인 수확을 바칩니다’라고 적고, 1973년 1등급 승격 때 아버지가 레이블에 적었던 ‘무통은 변하지 않는다’를 덧붙였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 그리고 아버지의 와인 철학을 계승하겠다는 딸의 의지가 묻어나는 글귀다.



    무통 로쉴드의 와인은 그 품질이 우수하기도 하지만 매년 바뀌는 레이블 때문에 와인 애호가가 앞다퉈 소장하고 싶어 하는 와인이다. 이것을 예술과의 접목을 통한 감성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와인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함께 느껴지기에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곧 발표할 2014년 빈티지 레이블은 누가 그리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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