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0

2014.08.11

한국 증류주와 이탈리아 요리 궁합 딱 맞네

몽로(夢路)와 문배술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4-08-11 12:0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국 증류주와 이탈리아 요리 궁합 딱 맞네
    음식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박찬일이란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를 간단하게 ‘글 쓰는 요리사’라고 표현하지만 글 솜씨와 요리 실력이 적당히 좀 하는 정도가 아니라 최정상급이다. 그가 쓰는 수많은 음식 칼럼과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요리가 궁금해진다. 철학과 기술이 탄탄하지만 어깨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박찬일식 요리’의 핵심이다.

    레스토랑 몇 곳을 거쳐 그가 서울 합정동 문학과지성사 지하에 터를 잡았다. 이탈리아어로 선술집을 의미하는 로칸다(locanda) ‘몽로(夢路)’다. 식당을 열자마자 사람이 몰려들면서 ‘몽로’는 이름대로 꿈같은 길을 가고 있다. 선술집식 메뉴들이 적힌 A4 크기 메뉴판은 그의 꾸밈없는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음악은 1970~80년대 유행하던 가요가 기본이다.

    안주는 이탈리아 요리가 중심이지만 총각김치나 오이소박이도 나온다. 아마 총각김치를 돈 받고 파는 거의 유일한 식당이 아닐까 싶다. 무료로 제공되는 김치가 좋을 리 없다는 그의 요리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제값을 내야 좋은 재료를 사용한 제대로 된 요리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가장 인기 높은 한우등심 스테이크는 고기의 질, 숙성과 굽기 정도, 가격 등 어느 하나 비범하지 않은 것이 없다. 60일 동안 숙성한 숙성육 스테이크도 판다. 이베리코 돼지 뽈살의 탄력감과 밀도는 돼지고기에 대한 생각을 바꾼다.

    치킨도 그의 손에서 ‘박찬일식 닭튀김’으로 탄생했다. 명란 파스타로 배를 채워도 되고, 이탤리언식으로 만든 곱창과 소힘줄 찜도 맛있다. 토마토소스와 곱창, 소힘줄 등 감칠맛을 내는 재료들이 어우러져 MSG(글루탐산일나트륨)가 왕창 들어간 음식보다 더 강한 감칠맛을 만들어낸다.

    한국식 재료를 이용한 이탤리언식 선술집답게 저렴하고 간단한 요리들이지만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보통날의 와인’이란 책의 저자답게 와인 셀렉션도 가격 대비 만족도가 매우 높다. 3만~5만 원대가 주를 이루지만 버릴 와인이 없다. 요즘 유행하는 IPA(India Pale Ale) 맥주도 음식과 잘 어울린다.



    한국 증류주와 이탈리아 요리 궁합 딱 맞네

    ‘몽로’의 박찬일식 닭튀김(위)과 명란 파스타.

    박찬일 셰프는 음식잡지 편집장을 하다 회사가 문을 닫자 이탈리아로 날아가 6개월 동안만 파스타를 배워 한국에서 파스타 가게를 열려고 했다. 하지만 체류 기간이 3년으로 늘어났고,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인식과 지평이 깊고 넓어져 한국에 돌아왔다.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슬로푸드 운동에 영향을 받은 그의 음식 철학은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이탤리언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좋은 재료들이 이탤리언식으로 재해석되면서 그의 요리에 생명이 붙었다.

    ‘몽로’에서는 한국의 증류주 문화를 이끄는 화요와 문배술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미국 뉴욕에서 공부하고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문배주의 이승용 실장이 야심차게 준비한 40도 문배술과 박찬일 셰프의 요리는 찰떡궁합이다. 작은 배를 뜻하는 ‘문배’의 향이 난다고 해서 붙은 문배술은 독하지만 부드럽다. 얼음과 함께하면 얼음이 녹으면서 조와 수수가 결합해내는 독특한 문배향이 은근히 번진다. 평양 명물이던 문배술은 안동소주와 더불어 한국에서 보기 드문 증류 명주다. 이탤리언식 요리와 평양식 증류주의 만남은 우리 음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