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9

2014.08.04

맛있다면 백번 비싸도 좋다!

쌀밥 먹기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입력2014-08-01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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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다면 백번 비싸도 좋다!
    식구(食口)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밥 먹는 입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인 표현인가. 얼핏 어미 새가 새끼 새에게 먹이를 먹여주는 장면이 떠오르고, 밥상 가운데 찌개를 두고 옹기종기 앉아서 밥 먹는 모습도 떠오른다.

    식구는 한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우리에게 같이 밥 먹는다는 건 아주 중요한 의미다. 한때 한국인의 아침 인사는 “식사하셨습니까?”였다. 아침밥을 먹었다는 건 안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의미였다.

    우리에게 밥이란 쌀밥을 의미한다. 빵을 먹어도 고기를 먹어도 분명 한 끼 맛있고 배부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쌀밥을 안 먹으면 왠지 아쉽다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빵 배’ ‘고기 배’ ‘과일 배’를 각각 가진 이도 있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우리에겐 ‘밥 배’가 최고다. 늘 가까이 있고 늘 먹어와서 감사함이나 소중함을 자꾸 잊긴 하는데, 쌀밥이 흔해진 건 최근 일이다.

    쌀 자급량이 모자라던 시절에는 혼·분식 장려가 국가 시책이었고, 보리나 잡곡 없이 하얀 쌀만으로 지은 밥을 사치로 여기기도 했다. 그랬던 쌀밥을 우리는 요새 너무 만만하게 여긴다. 오히려 현미나 보리를 비롯한 각종 잡곡을 쌀과 섞어 먹는 게 더 사치스러운 일인 시대를 맞았다.

    철원 쌀 ‘밀키퀸’ 10kg 8만 원 선



    그렇게 쌀은 우리에게 귀한 존재에서 만만한 존재로, 이젠 값싼 존재로까지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쌀 소비량도 많이 줄었다. 한국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70년 136.4kg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감소 중인데, 2000년 93.6kg이던 것이 2010년에는 72.8kg, 2013년에는 67.2kg까지 떨어졌다. 쌀 소비는 앞으로 더 줄어들 기세이고, 이젠 쌀시장 전면 개방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쌀은 이대로 그냥 싸고 흔한 먹을거리로 남아야 할 것인가. 오늘의 작은 사치는 바로 쌀이다. 그냥 쌀이 아닌 좀 더 비싸도 되는 쌀에 대한 얘기다. 요즘 대형마트에 가면 1kg 단위 소포장 쌀의 값은 3000~4000원이다. 즉석밥 하나가 약 210g, 식당 공깃밥도 대개 그 정도이니 1kg 단위 쌀로도 9그릇 이상 밥을 지을 수 있는 셈이다(쌀로 밥을 지으면 무게가 최소 2배 이상 된다고 한다).

    하루에 밥을 세 그릇 먹는다고 치면, 쌀을 사서 밥을 해먹을 경우 하루에 드는 쌀값이 1000원 정도라는 계산이 나온다. 포장 단위가 커지면 가격은 더 낮아진다.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10kg 단위 쌀은 2만~3만 원대다. kg당 2000~3000원이다. 물론 이보다 더 저렴한 쌀도 있다. 그러니 따져보면 밥값이 라면값보다 엄청 싼 셈이다. 어느새 우리에게 쌀은 이런 수준이 됐다. 정말 격세지감이다. 이러니 농민 사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쌀 소비는 줄고 쌀 가격은 낮으니 말이다.

    물론 저렴한 쌀만 있는 건 아니다. 좀 비싼 식재료를 파는 SSG 푸드마켓에서 파는 쌀 가운데서도 고급으로 꼽히는 여주 자채쌀은 10kg에 4만 원대다. 더 비싼 것도 있다. 직접 찾아본 국산 쌀 가운데 가장 비싼 쌀은 철원 ‘밀키퀸’이었는데, 4kg 포장에 3만4000원이었다. 10kg 단위로 환산하면 8만 원대다.

    맛있다면 백번 비싸도 좋다!
    물론 우리 모두가 이런 쌀을 식탁에 올릴 수는 없다. 하지만 쌀에 대한 오해는 좀 버려야 한다. 그냥 한 끼 때울 게 아니라 좀 더 좋은 밥맛을 위해 좀 더 비싼 쌀을 선택하는 일상의 사치를 부릴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요즘 미식가 사이에서는 밥맛 좋은 식당이 인기다. 과거 밥은 드러나지 않는 조연에 불과했고 식당의 주인공은 요리였는데, 요새는 밥 자체가 비중 있는 조연 혹은 주연급으로 부상했다.

    밥맛은 결국 쌀이 좌우한다. 좋은 쌀을 썼느냐 혹은 밥맛이 얼마나 좋으냐 등은 초밥을 먹을 때 유독 많이 따진다. 그래서 일본의 고품질 쌀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진다. 일본의 고품질 벼 품종 중 하나인 고시히카리는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이 쌀을 재배하는 한국 농가도 늘었다.

    좋은 쌀로 지은 밥을 먹어보면 정말 맛이 있다는 걸 금세 느낀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밥맛은 초밥보다 맨밥을 먹었을 때 더 잘 느껴지지 않나. 차지고 고소한 밥만 있으면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정말 밥맛만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

    기름 자르르…반찬 없어도 꿀꺽

    우리 쌀 중에서도 고품질 쌀은 많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전국의 고품질 쌀 브랜드를 종합 평가한 뒤 12개를 최종 선정해 시상했다. 당시 금상을 받은 것이 전북 익산의 탑마루 골드라이스였고, 은상은 전남 담양의 대숲맑은쌀과 전북 군산의 철새도래지쌀, 전남 보성의 녹차미인 보성쌀 등이 받았다. 우리가 쌀 브랜드를 잘 몰라서 그렇지 고품질 쌀을 생산하려는 농민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고품질 브랜드 쌀을 평가하고 시상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로 벌써 10년이 넘었다.

    우리보다 먼저 쌀시장을 개방한 일본에서는 농민들이 고품질 쌀을 생산해 위기를 기회로 삼은 바 있다. 그게 가능했던 건 밥상 위에 좀 더 좋은 쌀밥을 올리고 싶어 하는 일본인이 많아서이기도 했다. 자기 나라에서 나는 좋고 비싼 농산물을 소비할 자국 사람이 많아야 생산도 더 원활해진다.

    양보다 질, 이건 쌀 소비에도 적용할 수 있는 얘기다. 쌀은 좀 비싸면 안 되나. 농민은 좀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면 안 되나. 농민은 부자가 되면 안 되나. 농민도 풍요를 누릴 수 있게 적어도 우리 밥상에서 우리 먹을거리로 좀 더 사치를 부려보는 건 어떨까. 고품질 쌀로 지은 좀 더 맛있는 밥을 먹으면, 우리의 밥심도 좀 더 커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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