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4

2014.06.30

월계관 쓰려는 자 안주하지 말라

스페인 축구팀의 몰락과 바그너

  •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tris727@naver.com

    입력2014-06-30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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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월드컵이 한창이다.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조별리그 3라운드가 진행 중이다.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에 관한 화제를 제쳐둔다면,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아무래도 ‘스페인 몰락’이 아닐까 싶다.

    유로 2008을 시작으로 2010 남아공월드컵, 유로 2012에 이르기까지 ‘메이저 대회 3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무적함대’ 위용을 뽐내던 스페인이 조별리그에서 가장 먼저 탈락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이유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왔지만, 필자는 탈락이 확정된 직후 스페인 대표팀에서 나온 뼈아픈 자성의 말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스페인 대표팀의 베테랑 미드필더 사비 알론소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동기 부여의 굶주림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 이 말을 접하는 순간, 필자 뇌리에 얼마 전 강의에서 다뤘던 작품 하나가 떠올랐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명가수)는 19세기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완숙기에 발표한 악극(오페라)이다. 바그너 성숙기의 유일한 희극이면서, 장대하기로 유명한 바그너의 작품 중에서도 상연시간이 가장 긴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중세 독일 중부의 상공업 중심지였던 바이에른 지방의 도시 뉘른베르크를 무대로 장인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곳 장인들은 생업에 종사하는 한편, 자신들의 고유한 규칙과 체계에 입각한 시작(詩作)과 가창(歌唱) 활동을 병행했다. 그들 가운데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과 자격을 갖춘 이에게 주어지는 호칭이 바로 ‘마이스터징거’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도시에 정착하려는 젊은 지방귀족 발터 폰 슈톨칭이 나타난다. 그는 금세공사의 딸 에바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결혼하려고 성 요한 축제일에 열리는 노래 경연대회에 참가하고자 한다. 하지만 ‘마이스터징거’의 규칙을 알 리 없는 슈톨칭은 예심에서 낙방하고 만다.

    채점관 베크메서를 비롯한 마이스터징거들은 체계라곤 전혀 없이 제멋대로인 것처럼 들리는 슈톨칭의 노래를 비난한다. 다만 한 사람, 도시에서 가장 명망 높은 마이스터징거인 제화장 한스 작스만은 그 자유로운 노래에서 남다른 독창성과 호소력을 발견하고 호감을 갖는다.

    작스는 고민에 빠진다. 친구 딸인 에바의 간청도 있고 해서 두 사람을 짝지어주고 싶지만, 그러자면 슈톨칭이 경연대회에서 우승해야 한다. 하지만 무척 매력적이긴 해도 질서와 세련미가 부족한 그의 노래를 어떻게 해야 하나. 그전 예심에서 떨어진 그를 어떻게 대회에 출전하게 한다는 말인가. 한편으론 자신들만의 체계를 굳건히 지켜온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의 예술에 자칫 슈톨칭의 새로운 예술이 모종의 위협이나 혼란을 가져오지는 않을까.

    작스는 심사숙고 끝에 결단을 내린다, 자신이 슈톨칭을 도와주기로. 그의 노래가 가진 독특한 매력을 최대한 존중하되 자신들의 규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보완해주려는 것이다. 아울러 그 시도가 성공을 거둔다면 다소 고리타분한 체계에 안주한 마이스터징거들에게도 긍정적인 자극과 생산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슈톨칭은 우여곡절 끝에 경연대회에 참가한다. 그리고 작스가 다듬어준 노래 실력에 즉흥적인 독창성까지 첨가해 마침내 영예의 월계관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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