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3

2014.04.14

동백꽃 후드득 져도 청보리밭 있어 좋아라

고창 선운사 야영장 주변은 봄꽃 경연장…고인돌과 고창읍성도 꼭 챙겨볼 만

  •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naver.com

    입력2014-04-14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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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꽃 후드득 져도 청보리밭 있어 좋아라

    선운사 대웅전 뒤편 동백나무숲을 붉게 물들인 동백꽃.

    농익은 봄날에 전북 고창 땅을 여행하는 것은 더없는 행운이다. 이맘때쯤의 봄날이 자아내는 풍경과 정취를 죄다 만날 수 있다. 천년고찰 선운사 주변에는 불꽃같은 정념을 품은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온통 보리밭으로 뒤덮인 학원농장의 황토 언덕은 가없는 초록빛 바다를 이룬다. 그리고 고창읍성에 늘어선 벚나무는 가녀린 봄바람에 함박눈 같은 꽃비를 우수수 흩뿌린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슴 설레는 곳은 동백꽃 만발한 선운사다. 그곳을 찾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콧노래를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꽃 말이에요….’

    1970년대를 풍미한 통기타 가수 송창식의 노래 ‘선운사’다. 이 노래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동백꽃 피는 선운사를 언젠가는 꼭 한 번쯤 찾게 마련이다. 고창 질마재마을 출신인 미당 서정주 시인의 ‘선운사 동구’라는 시(아래 상자 안)도 송창식의 노래 못지않게 사람 마음을 달뜨게 한다.

    천연기념물 제184호 명성

    이처럼 여러 사람이 앞다퉈 예찬한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숲은 이미 1967년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명품 숲이다. 전체 넓이는 4만5092㎡(약 1만3000평)쯤 된다. 이 숲은 절 입구 오른쪽 산비탈부터 절 뒤쪽까지 폭 30여m의 긴 띠 모양으로 형성돼 있다. 동백나무 3000여 그루 가운데는 수령 500년 이상 된 아름드리 고목도 적지 않다. 이곳 동백꽃은 대체로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 사이 절정을 이룬다. 이른 봄 기운차게 용솟음치는 대지의 자양분을 가득 머금었다 꽃샘바람 잦아드는 4월이 돼서야 그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동백(冬柏)이 아니라 춘백(春柏)이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보다 개화시기가 조금 빠른 편이다. 4월 둘째 주쯤에 절정기를 구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겨울 날씨가 포근했던 덕에 꽃빛깔도 유난히 곱고 꽃송이도 풍성하다.



    ‘선운사사적기’에 의하면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당시 선운산 진흥굴과 용문굴, 서해 칠산바다에는 산적과 해적이 들끓어 양민의 고통이 말할 수 없이 컸다. 검단선사는 그들을 교화해 도둑질을 그만두게 하고 소금 굽는 법을 가르쳐 생업을 꾸려나가게 했다. 개과천선해 소금을 구우며 살아가던 그들은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씩 ‘보은염’이라는 이름의 소금을 선운사에 보내곤 했다.

    전성기에 선운사는 크고 작은 암자를 89개나 거느린 데다 머무는 스님만 3000명에 달하는 대찰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부속암자가 4곳으로 줄고 경내 건물도 천왕문, 만세루, 대웅전, 영산전 등 10여 동에 불과할 만큼 절 규모가 작아졌다. 그런데도 지나치게 초라하거나 화려하지 않아 언제 찾아도 마음 편한 절집이다.

    이맘때쯤 선운사 주변은 봄꽃의 경연장이다. 동백나무숲 주변 산자락에는 연분홍 진달래꽃과 샛노란 생강나무꽃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선운사 동구 진입로 양쪽에 늘어선 벚나무는 동화 속 풍경처럼 아름다운 꽃 터널을 만들어낸다. 선운사 골짜기와 나란히 이어지는 오솔길을 걷노라면 산골 새색시처럼 수줍게 피어난 봄꽃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눈길 닿는 곳마다 현호색, 제비꽃, 보춘화(춘란), 산자고, 개별꽃, 개구리발톱 같은 야생화가 지천이다.

    선운사를 품은 선운산은 ‘도솔산’으로도 부른다. 정상 높이는 해발 335m에 불과하지만 숲이 울창하고 기암괴석이 많아 ‘호남의 내금강’이라 일컬어져 왔다. 진흥굴, 용문굴, 낙조대, 천마봉, 도솔암 등 절경이 즐비하다. 게다가 등산로도 험하지 않은 편이어서 겨울의 묵은 때를 씻어내는 봄 산행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선운산은 또한 ‘대장금’ ‘최종병기 활’ 등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종종 등장한다. 그 밖에도 선운산 골짜기를 오르내릴 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과 커다란 가지가 부챗살처럼 퍼진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도 눈여겨볼 만하다.

    동백꽃 후드득 져도 청보리밭 있어 좋아라
    선운사 품은 도솔산은 ‘호남 내금강’

    선운산의 봄날 정취를 제대로 즐기려면 적어도 하룻밤은 묵어야 한다. 그래야 밤하늘에서 초롱초롱한 별을 감상하고, 인적 뜸한 새벽 오솔길도 걸을 수 있다. 마침 선운사 초입의 유스호스텔 옆에 괜찮은 야영장을 조성해놓았다. 이 선운사 야영장은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60, 40m에 불과할 정도로 작다. 하지만 급수대, 화장실을 잘 갖춰놓았고, 바로 앞에는 ‘선운사생태숲’이 정원처럼 펼쳐진다. 선운사 상가지구와 선운사도 걸어서 5~10분 거리에 있다. 그런데도 밤만 되면 적막이 느껴질 만큼 고즈넉하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인위적인 편의성과 자연적인 소박함이 조화를 이룬 야영장이다.

    이맘때쯤 고창 땅을 여행한다면 학원농장(063-564-9897)의 청보리밭도 빼놓을 수 없다.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에 위치한 학원농장은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아들인 진영호 씨가 경영하는 개인 농장이다. 약 50만㎡(15만여 평)에 이르는 드넓은 밭이 해마다 봄이 되면 파릇한 보리밭으로 변한다. 학원농장 일대가 경관농업특구로 지정된 이후 인근 주민들도 보리를 심기 시작해 지금은 청보리밭이 총 100만㎡(약 30만 평)나 펼쳐진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광활한 보리밭을 바라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매년 봄에는 고창 청보리밭 축제(올해는 4월 19일~5월 11일)가 열린다.

    동백꽃 후드득 져도 청보리밭 있어 좋아라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이 즐비한 ‘고창 고인돌군’(위). 솔향이 가득한 고창읍성의 운치 좋은 오솔길.

    선운사와 학원농장을 모두 둘러본 뒤에도 여유가 있거든,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고인돌군’(고인돌박물관·문의 063-560-8666)과 벚꽃 만발한 고창읍성(문의 063-560-2313)을 찾아볼 만하다. 고창군은 세계적인 고인돌 밀집지역이다. 서로 인접한 고창읍 매산리, 죽림리, 도산리와 아산면 상갑리 일대에만 고인돌 약 450기가 몰려 있다. 지상 석곽식, 남방식, 북방식 등 고인돌 양식도 다양해 ‘지붕 없는 고인돌박물관’이라 부를 만하다.

    ‘모양성’이라고도 부르는 고창읍성은 우리나라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조선시대 읍성이다. 여자들이 쌓았다는 전설과 함께 여자들의 답성놀이 풍속도 전해온다. 초행인 외지인이라도 성밟기를 하는 아낙네처럼 느긋하게 성벽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 좋다. 갖가지 봄꽃이 만발한 성벽에 올라서 고창읍내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여간 상쾌하지 않다. 특히 성벽과 성안 곳곳에 늘어선 벚꽃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는 4월 1~10일에는 눈부시게 화사한 봄날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는 4월 첫째 주에 벚꽃이 이미 만개했다. 벚꽃이 시들하거나 모두 떨어져도 고창읍성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피톤치드가 가득한 솔숲 길을 걷는 즐거움이 있고, 울창한 맹종죽숲에서 댓잎이 서걱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

    동백꽃 후드득 져도 청보리밭 있어 좋아라

    벚꽃,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핀 고창읍성의 봄날.

    여행정보

    ● 선운사 야영장 이용안내

    선운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 063-563-3450)에서 관리하는 선운사 야영장은 사시사철 1년 내내 무료 개방한다.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급수대와 깔끔한 화장실을 갖춰놓았다. 그러나 샤워장이나 전기시설은 없다. 데크도 3개뿐이라 비 오는 날에는 질척거리는 땅바닥에 텐트를 설치해야 된다. 전반적으로 편의시설이 다소 미흡하고, 야영장의 자연환경도 비교적 삭막한 편이다. 하지만 사시사철 즐겨 찾는 선운사 입구에 위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야영장이다. 무조건 선착순이므로 야영하기 좋은 봄부터 가을까지 주말이나 휴일에는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 숙식

    동백꽃 후드득 져도 청보리밭 있어 좋아라

    동백가든의 한정식.

    선운사 입구에는 선운산관광호텔(063-561-3377), 선운산유스호스텔(063-561-3333), 선운산도솔펜션(063-564-4421), 햇살가득한집(063-562-0320), 산사의아침(063-562-6868), 선운사의 추억(063-561-2777), 둥지펜션(010-3671-5450) 등 숙박업소가 많다.

    선운사 입구에는 고창의 대표적 별미인 풍천장어와 복분자술을 내놓는 장어 전문점이 40여 곳이나 몰려 있다. 강나루(063-561-5592), 연기식당(063-562-1537), 할매집(063-562-1542) 등을 권할 만하다. 고창읍성 입구에 자리한 미향(063-564-8762)은 바지락밥, 전복돌솥밥, 해물굴밥 등을 비교적 저렴하고 맛있게 내놓는다. 고창읍내 조양관(063-564-2026)과 공설운동장 초입에 있는 동백가든(063-563-4141)은 한정식을 푸짐하고 맛깔스럽게 차려내는 집이다.

    ●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IC→석교교차로(선운사 방면으로 좌회전, 22번 국도)→삼인교차로(좌회전)→선운사 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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