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6

2014.02.24

지하 권력 주무르는 찌라시 세상

김광식 감독의 ‘찌라시 : 위험한 소문’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4-02-24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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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권력 주무르는 찌라시 세상
    ‘찌라시’를 아는지? 어지름, 흩뜨려 놓음, 광고로 뿌리는 전단이라는 뜻의 일본어 ‘ちらし’를 소리 나는 대로 우리말로 쓴 단어다. 흔히 증권가에서 비밀리에 유통되는 미확인 혹은 출처 불명의 정보들을 모은 비공식 간행물을 가리킨다. 정치, 기업, 연예 등 사회 각 분야 소문과 동향, 스캔들 등 각종 정보가 수록돼 있다.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감독 김광식)은 이것을 소재로 한 첫 한국 영화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일반인은 대부분 ‘소문’으로만 들은 찌라시 제작과 유통 실태가 영화에 어떻게 담겼는지 먼저 눈길이 간다.

    영화에 따르면 기업체 정보 담당 임직원과 국회의원 보좌관 등 정치권 인물, 국가기관 요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엄선한 멤버가 비밀리에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주간 회의를 통해 찌라시 정보가 생산된다. 각자 보고할 만한 정보를 몇 개씩 가져와 ‘정보 회의’에서 주고받는 식이다. 이 자리에서 “기업인 아무개가 청와대 정책실 누구를 만난다더라” 같은 정보부터 “A회장이 여배우 B양과 만나 어쨌다더라” 같은 은밀한 스캔들까지 오간다.

    이렇게 생산된 정보는 일명 ‘공장’이라 부르는 사설 정보지 전문업체를 거치면서 유료화된다. 구독자들은 알음알음 ‘공장’에 선을 대 받아본다. 기업이나 개인이 1년 구독료 300만~600만 원을 지불하고 찌라시를 제공받는다. e메일과 비밀번호를 함께 전달받아 정보를 확인한다. 여기에도 다양한 정보 회의와 사설 정보지 업체들이 있어 서로 경쟁하며 시장을 형성한다. 영화에 묘사된 것을 보면 찌라시는 ‘지하 언론’이자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찌라시 제작과 유통’이라는 소재를 영화는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찌라시에 담긴 정보 중 일반인이 가장 관심을 둘 만한 것은 바로 연예인의 사생활 아닐까. 그래서 영화도 연예인 이야기부터 ‘큰 그림’을 그려간다.

    신인 연예인을 뽑는 오디션 현장이 출발점이다. 가진 것은 없지만 재목을 알아보는 안목과 집념만은 누구보다 뛰어난 연예 매니저 우곤(김강우 분)은 신인 여배우 미진(고원희 분)을 발견하고, 그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기로 한다. 대형 기획사에 회의를 느껴 미진과 함께 독립한 우곤은 남다른 애정과 야망을 품고 연예계 밑바닥부터 시작해 온몸을 내던진다.



    드디어 미진이 드라마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성공을 눈앞에 둔 순간, 모든 것이 물거품 될 위기에 직면한다. 증권가 찌라시의 단 한 줄 때문이다. 미진이 국회의원 남정인(안성기 분)과 은밀한 ‘스폰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근거 없는 정보로 모든 것을 잃게 된 미진은 죽음을 선택하고, 우곤은 절망과 복수심에 휩싸여 찌라시 최초 유포자를 찾아 나선다.

    찌라시에 담긴 한 여배우에 대한 소문으로부터 시작해 관객이 우곤과 함께 맞닥뜨리는 진실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일반인이라면 그저 술자리 안주로 소비할 만한 연예계 가십이지만, 그 바탕에는 국내 최고라는 한 대기업의 이권과 이와 결탁한 청와대 내 일부 세력의 음모, 입법기관(국회) 내 정치적 이해 다툼이 깔렸다. 꼼꼼히 재현한 ‘찌라시 제작과 유통’ 과정이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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