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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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시대는 갔어도 추억은 남아

서울 청계8가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4-02-24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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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P 시대는 갔어도 추억은 남아

    1980년대 말 서울 청계천 인근의 한 음반 가게.

    동네마다 레코드 가게가 있던 시절, 웬만한 음반은 다 동네에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 나온 음반을 하루라도 빨리, 한 푼이라도 싸게 사려면 서울 ‘청계천’으로 나가야 했다. 청계4가 세운상가 뒤편 육교 위에는 ‘빽판’(불법복제 LP)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음반가게가 있었다.

    세운상가 육교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날을 기억한다. 망원동에서 7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는 관문인 아현고가도로를 지나 청계4가에서 내렸다. 아세아극장으로 연결된 육교에 올라 빽판 가게로 향하던 길, 아저씨들이 말을 걸었다. 포르노 영화 비디오테이프와 잡지를 몰래 파는 아저씨들이었다.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되, 막상 아저씨들의 유혹을 최초로 직면하는 순간 나는 미국의 퇴락한 도시 뒷골목에서 마약상과 접촉하는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돌아올 수 없는 어둠의 세계에 발을 담그지 않겠다는 의식의 발로라기보다 너무 비싸서 유혹을 뿌리쳤다. 그리고 1500~2000원짜리 빽판 몇 장을 산 후 부리나케 육교를 내려왔다. 그러고는 역시 청계4가에 모여 있던 음반 도매상에 들어가 그 주에 라이선스로 발매된 새 앨범들을 구매한 후 다시 7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현고가도로를 지날 즈음에는 차창으로 석양 빛이 날아들었다. 그렇게 음악 애호가의 길에 입문했다.

    입문단계가 끝나고 심화단계에 도달했다. 그때 주무대는 청계4가가 아니라 8가였다. 청계8가는 4가보다 훨씬 복잡했다. 후일 왕자웨이 감독의 ‘아비정전’에 나오는 홍콩 구룡성채를 보며 나는 청계8가를 떠올렸다. 복마전 같았다.

    그 복마전 안에는 장안레코드와 돌레코드가 있었다.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 장안의 음악 애호가가 모두 모여들던 곳이었다. 빽판과 라이선스, 원판(수입 LP)까지 모든 게 구비된 곳이었고, 물량 또한 어마어마했다. 입문단계 시절에는 머릿속 ‘장바구니’에 미리 담아둔 음반만 샀지만, 이 무렵엔 족히 10만 장은 넘을 앨범들을 하나하나 다 빼보며 몇 시간을 보냈다. 그래봐야 가난한 고교생은 고작 한 번에 서너 장 살 뿐이었지만 눈치를 주는 직원은 없었다.



    모든 정보를 음악 잡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앨범 표지와 곡 제목, 멤버 이름과 사진을 몇 시간씩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됐다. 공부가 끝나면 손가락 끝이 먼지로 꼬질꼬질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날 산 음반 커버를 조심스럽게 뜯었다. LP의 플라스틱 냄새가 피어올랐다. 봉투에 머리를 박고 그 냄새를 맡았다. 음악에 빠져 있던 소년에게 LP 향은 세상 그 어떤 꽃보다 좋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과외를 비롯한 온갖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술값 아니면 판값으로 나갔다. 1995년 LP 생산이 대부분 중단돼 CD를 주로 살 때는 홍대 앞에도 좋은 음반가게가 적잖이 흥했다. 청계8가를 찾을 일이 없었다.

    최근 어쩌다가 청계8가에 들렀다. 19년 만의 방문이었다. 장안레코드와 돌레코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주변 지역이 대부분 철거와 재개발로 사라졌지만, 음반가게 주변의 복마전 같은 풍경은 그대로였다. 청계고가도로도, 아현고가도로도 사라진 길을 따라 홍대 앞으로 돌아오면서 LP의 환후(幻嗅)를 느꼈다. 그때 같은 공간을 누볐을, 지금은 음악계에 몸담은 사람들을 모아 조만간 다시 청계8가에 가볼 예정이다. 동창회 같은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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