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4

2011.09.19

밴드는 드라마다, 멤버가 만드는

밴드음악의 놓치기 쉬운 매력

  • 정바비 bobbychung.com

    입력2011-09-19 12: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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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는 드라마다, 멤버가 만드는

    밴드 ‘자우림’.

    인터넷에서 인터뷰 동영상을 하나 봤다. 얼마 전 2집 앨범을 낸 ‘장기하와 얼굴들’을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프런트맨인 장기하는 지난 앨범과의 차이점에 대해 “1집은 편곡까지 내가 도맡아서 했지만, 2집은 멤버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모든 편곡 작업을 같이 진행했다”고 얘기했다. 사실 그 말을 듣자 ‘록밴드라면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터뷰 진행자는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멤버 박종현이었는데, 그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적어도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이번 앨범은 멤버가 다 편곡에 참여했다”고 구태여 부연하는 건 못 들어봤으니 말이다.

    굳이 록밴드를 크게 두 종류로 나눠보자면 압도적인 카리스마나 유별난 매력으로 시선을 독차지하는 프런트맨이 있는 팀과 그렇지 않은 팀이 있을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전자에 속할 것이고,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박종현도 무대에서 엄청난 오라를 보여주지만) 비교적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나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큰 성공을 거둔 밴드는 유독 프런트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에서도 유난히 인물에 주목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밴드에도 그들이 ‘지향하는 음악적 방향이나 색깔’보다 마이크를 든 사람의 이력이나 외모를 더 유심히 보는 건 아닐까.

    장기하의 인터뷰 얘기로 돌아가자면, ‘얼굴들’과 스포트라이트를 나누려는 그의 모습은 또 다른 프런트맨과 오버랩된다. 이를테면 윤도현은 다른 밴드 멤버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자신을 오히려 밴드의 구성원 중 하나로 ‘낯설게 봐줄 것’을 끊임없이 호소해왔다. ‘윤도현밴드’에서 ‘윤밴’, 현재의 ‘YB’에 이르는 변천 과정은 그 부단한 노력을 보여준다. 김윤아 또한 언젠가 홈페이지에 직접 장문의 글을 써서 자우림을 ‘김윤아 밴드’로 보지 말아달라고 한 적이 있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 선한 의도를 읽는다. 하나는 똑같이 피와 땀을 밴드에 쏟는 다른 멤버에 대한 존경과 인정이다. 다른 하나는 프런트맨에 과도하게 집중하다 밴드가 줄 수 있는 더 큰 매력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팬과 대중에게 보내는 충고다.

    영화 ‘스쿨 오브 락’에서 무자격 불량교사인 듀이 핀(잭 블랙 분)은 음악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과 함께 밴드 경연대회에 나가기로 하고 맹연습에 돌입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작곡에는 참여하지 않던 기타리스트 잭이 노래를 만들어 흥얼거리자 듀이는 당장 그 곡을 같이 연주해보자면서 이렇게 말한다. “원래 밴드는 그런 거야. 서로의 노래를 연주해주지.” 물론 영화는 잭 블랙의 원맨쇼에 가깝고, 영화 속 무대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 경연 무대에서 선택한 곡은 결국 내성적인 소년 잭의 노래였다.

    밴드는 드라마다, 멤버가 만드는
    조금 과장하자면, 멤버 간 온갖 역학관계와 화학작용 속에서 만든 음악과 무대는 세상의 축소판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다. 그 모든 이야기야말로 프런트맨의 카리스마만큼이나 놓쳐서는 안 될 밴드의 매력일 것이다.



    * 정바비는 1995년 인디밴드 ‘언니네이발관’ 원년 멤버로 데뷔한 인디 뮤지션. ‘줄리아 하트’ ‘바비빌’ 등 밴드를 거쳐 2009년 ‘브로콜리 너마저’ 출신 계피와 함께 ‘가을방학’을 결성, 2010년 1집 ‘가을방학’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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