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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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국밥 한 그릇 고향의 情 듬뿍 먹다

경주 팔우정 해장국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입력2011-09-19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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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박한 국밥 한 그릇 고향의 情 듬뿍 먹다

    앞부분은 주방, 그 뒤는 좌식의 손님방으로 된 경주 팔우정의 한 해장국집.

    지방자치단체마다 향토음식 개발에 열중이다. 특정 지역에 향토음식 타운을 형성하면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고, 상품 판매시장을 개척해 지역 생산자에게 경제적 이득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만든 향토음식은 소비자에게도 큰 이득이 될 수 있다. 전국이 비슷비슷한 음식을 내는 중앙집권의 대한민국에 특정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음식이 다양하게 있다면 단조로운 국내 여행에 즐길 거리를 하나 더 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집에서 그 향토음식을 주문해 택배로 받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향토음식이란 게 한 지역에서 유명해진 아이템이 있다 하면 너도나도 따라하는 탓에 희귀성에서는 빵점인 것이 워낙 많다. 안흥에서 찐빵이 뜨자 그 주변의 온갖 지역에서도 이를 지역 특산물로 내놓아 안흥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식이다. 또 그 지역에 가야만 맛볼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데, 유명해졌다 하면 전국에 그 음식이 쫙 깔리는 것도 문제다. 안흥 찐빵을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니 찐빵 먹자고 안흥 갈 일도 없고, 또 그렇게 흔한 것을 굳이 먹을 필요가 있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브랜드 관리 측면에서 보자면 최악의 상황이 향토음식 분야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몇 주 전 경북 경주에 갔다. 경주는 한국 최대 관광도시다. 관광도시답게 길거리마다 향토음식을 내놓고 팔았다. 황남빵 또는 경주빵이라 부르는 단팥빵 가게가 제일 많고, 최근에 개발한 보리빵 파는 가게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황남빵이든, 보리빵이든 그 빵이 경주에서 비롯한 것임에도 전국 어디를 가나 다 있다. 희소성 빵점인 것이다. 황남빵 원조 가게가 있다 하는데, 그 가게의 것이면 몰라도 나머지는 아무 의미 없는 향토음식의 나열로만 보였다.

    또 하나의 경주 향토음식으로 쌈밥이 있다. 천마총 옆 골목길에서 시작된 이 쌈밥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손에 채소 따위를 올리고 그것으로 음식을 싸서 먹는 방법이 일본 관광객에게 독특하게 보여 유명해진 경우다. 1990년대 초창기 쌈밥집만 하더라도 반찬에 정성이 들어 있고 토속적으로 보여 먹을 만했다. 그러나 지금의 쌈밥은 최악의 관광음식으로 변했다.

    쌈밥집에 가서 자리에 앉으면 주문도 받지 않고 머릿수에 따라 음식을 순식간에 깐다. 그 속도는 정말 놀라울 정도인데, 30가지 정도 되는 반찬을 1~2분 만에 세팅 완료한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주문해도 이보다 빠르지 않을 터. 반찬은 미리 담아놓아 겉이 다 말랐고, 정성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어 기겁하게 된다. 그래도 쌈밥집은 대박 장사를 한다. 관광버스가 그 앞에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다시 올 일 없을 것 같은 경주 관광객이니 그리 음식을 내어도 영업에 아무 지장이 없다. 내일은 또 내일의 손님이 오는 것이다.



    이래저래 먹을 것 없는 경주의 향토음식을 훑다가 팔우정의 해장국 골목에 가게 됐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는데 여러 해장국집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혼자 그 앞을 지나가는데도 호객 행위가 있었다. 관광도시 경주가 이렇다. 주방에서 혼자 밥을 드시느라 호객에 나서지 않은 어느 할머니의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앞부분은 주방이고 그 뒤로는 좌식의 손님방이 있었다. 이 구조는 시골장터 주막에서 가끔 보는 것인데, 따지자면 조선시대 국밥집 형태다. 손님방에 앉아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이렇게 개방된 식당 구조를 만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해장국은 메밀묵에 콩나물, 신 김치가 들었고 모자반이 올려진, 다른 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었다. 할머니도 말을 잘 받아주어 고향집에 와 저녁을 먹는 기분이었다. 겉치레만 잔뜩 낸 음식이 아닌, 이 소박한 해장국에서 경주의 향토 관광음식을 발견하고는 팔우정 해장국 골목 앞을 한참 서성거렸다. 손님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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