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4

2011.09.19

김경문은 NC를 어떤 팀으로 조련하나

빼어난 지도력과 강력한 리더십 새로운 도전…창단 감독 불운 떨쳐낼지 주목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1-09-19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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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문은 NC를 어떤 팀으로 조련하나

    NC 다이노스는 창원시를 연고로 창단한 프로야구 아홉 번째 구단이다.

    ‘제9구단’ NC 다이노스(이하 NC)의 김경문 감독이 펼쳐나갈 야구는 어떤 모습일까. 올 6월 두산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할 때부터 김 감독이 NC 사령탑을 맡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로 그의 NC행은 어느 정도 예정됐던 결과다. 그의 상품성이 워낙 탁월한 데다 그가 구사하는 야구 스타일 또한 프로야구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는 엔씨소프트의 기업 이념과도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많은 야구인이 김 감독이 활기차고 창조적인 야구 스타일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김성근 전 감독이 8월 SK 사령탑에서 물러났지만, 항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NC는 그를 사령탑 후보로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김 감독 영입 작업을 진행하는 중에 김성근 전 감독이 갑자기 야인 신분이 됐지만, 이것이 김 감독의 NC행에 별다른 변수가 되지는 않았다. NC의 정체성과 방향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 김경문이라는 결론은 일찌감치 난 상태였다.

    NC는 2012년 2군 리그에 참여하며, 2013년 1군 리그에 진입한다. 신인 지명에서 특혜를 받고, 8개 구단에서 선수를 수급하더라도 기존 팀에 비해 전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신생팀은 단기간에 선수를 육성하고 전력을 강화해야 하는 쉽지 않은 숙제를 안고 있다. 김 감독은 두산 감독 재임 시절 젊은 선수를 과감하게 기용해 스타로 키워내는 능력을 발휘하며 ‘화수분 야구’로 명성을 떨쳤다.

    신생팀에 적합한 ‘화수분 야구’

    특히 재목을 알아보는 안목이 뛰어나다. 김현수, 이종욱, 정수빈, 최준석, 고영민 등 두산의 숱한 스타플레이어는 김 감독이 없었다면 지금 1군에서 모습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김 감독은 근성 있는 스타일의 선수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패기와 도전정신이 필요한 신생팀에 적합하다.



    더욱이 김 감독의 승부사적 기질과 그만의 야구 색깔 역시 NC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구단주인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와 다이노스 프런트 수장인 이태일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야구 마니아였다. 특히 야구기자 출신인 이 대표는 1993~94년 국내 야구기자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연수를 하고 메이저리그의 역사와 흐름도 꿰는 인물로, 정통 야구 스타일을 선호한다. 이런 점에서 스몰볼보다 정통 메이저리그 스타일처럼 호쾌하면서도 선 굵은 야구를 지향하는 김 감독 야구스타일과 맞아떨어진다.

    김 감독은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남자답고 호방해 야구계 선후배와의 관계도 원만하다. 후발주자로서 기존 구단과의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NC 처지에선 또 다른 플러스 점수를 줄 수 있는 긍정 요소다.

    NC는 김 감독의 지도력과 함께 그의 강한 리더십에도 주목했다. 두산 사령탑에 오르고 처음 맞은 2004시즌에서 전년도 7위에 그쳤던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이끌었고, 작년까지 7년 동안 2006년을 제외하고 팀을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능력을 발휘했다. 비록 두산에서 우승의 한을 풀지는 못했지만, 3차례의 준우승과 3차례의 3위는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무엇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아 9전 전승으로 한국야구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따내면서 ‘국민감독’ 반열에 올랐으며, 이후 전국적으로 폭넓은 팬층을 확보했다. 신생팀은 아무래도 지지 기반이 미약할 수밖에 없다. NC로서는 지명도와 인기는 물론, 실력까지 갖춘 사령탑이 필요했다.

    김경문은 NC를 어떤 팀으로 조련하나

    마산구장을 방문해 NC 코치로 임명된 박영태 전 롯데 수석코치(왼쪽)와 2차 트라이아웃 현장을 살펴보는 김경문 감독.

    고생만 하다 끝날까 아니면 비상할까

    그는 코치 생활을 할 때 한동안 극심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집을 마련할 돈이 없어 친구 5명이 100만 원씩 모아준 돈으로 옥탑방에서 생활했다. 훗날 두산 지휘봉을 잡고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그는 그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았다. “난 바닥을 딛고 일어났다”는 자부심은 그라운드에서 뚝심으로 이어졌다. 선수단 운영이나 구단과의 관계에서도 원칙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대쪽 같은 성격으로 유명하다.

    그는 가정 형편 탓에 어린 시절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니면서 성장했고, 프로에 입단해서도 선수로서 그다지 이름을 떨치지 못했기에 스스로를 ‘잡초’라 부른다. 그가 두산 사령탑을 처음 맡았을 때 이처럼 성공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바닥을 딛고 일어나 명장 반열에 올랐지만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지금까지 거쳐 온 길보다 더 험난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창단팀 사령탑은 단 한 번도 재계약에 성공한 적이 없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추가 창단으로 리그에 가입한 팀은 1985년 빙그레, 1990년 쌍방울, 2000년 SK, 2008년 히어로즈 등 4팀이다. 이 중 순수하게 창단을 통해 프로야구에 진입한 빙그레와 쌍방울의 창단 감독은 계약 기간만 채운 뒤 옷을 벗었다.

    김경문은 NC를 어떤 팀으로 조련하나

    NC 다이노스 김경문 창단 감독이 9월 6일 경남 창원시 사보이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85년 제7구단으로 합류한 빙그레는 아마추어팀 감독을 지내며 스파르타 훈련을 통해 수많은 무명선수를 스타로 육성한 배성서 감독을 창단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배 감독은 1군 리그에 뛰어든 1986년 이후 2년 연속 탈꼴찌에 성공하는 등 3년간 팀의 기틀을 만들었다. 하지만 빙그레는 1988시즌을 앞두고 김영덕 감독을 영입하면서 배 감독과 결별했다.

    1990년 창단한 제8구단 쌍방울의 사령탑은 당시 해태 수석코치였던 김인식이었다. 그는 1군 리그에 뛰어든 1991년 승률 0.455로 LG와 함께 공동 6위에 오르는 능력을 보였다. 그러나 3년 임기 마지막 해인 1992시즌을 끝으로 쌍방울을 떠나야 했다.

    인수 뒤 창단의 성격을 띤 SK와 히어로즈 역시 창단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SK 창단 사령탑인 강병철 감독은 2000년 8위, 2001년 7위, 2002년 6위 등 매해 순위를 올려놓았지만 3년 임기를 마치고 재계약에 실패했다. 2008년 계약기간 2년으로 히어로즈 창단 사령탑을 맡았던 이광환 감독은 첫해 7위를 하자 계약기간 1년을 남겨둔 상태에서 해고됐다.

    야구계에는 “창단 감독은 고생만 하다 끝이 난다”는 속설이 있다. 잡초처럼 역경을 딛고 성공 가도를 달려온 김 감독. 그가 NC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며 ‘창단 감독의 불운’을 떨쳐내고 또 한 번 비상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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