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4

2011.09.19

“글로벌호크機 사라” 미국 구매 압박 집요했다

위키리크스로 본 도입 추진의 진실 … ‘한국이 매달렸다’ 기존 통설 뒤집어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1-09-19 0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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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호크機 사라” 미국 구매 압박 집요했다

    2007년 12월 20일 이명박 제17대 대통령 당선자가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를 접견하고 있다.

    ‘글로벌호크(Global Hawk).’ 미국 노스롭그루먼사가 생산하는 고(高)고도무인정찰기로 20km 상공에서 레이더(SAR)와 적외선탐지장비를 통해 지상의 30cm 크기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다는 이 무기체계는 그간 우리에게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꿈의 정찰기’였다. 한국군의 정보전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비장의 카드’지만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의회를 중심으로 미국 측이 판매를 꺼린다는 것이 그간의 대체적인 인식. 2005년 국방부가 4대(대당 600억 원 내외)를 구매하겠다고 나섰다가 2009년도 국방예산 삭감으로 도입을 연기하기까지, “우리는 꼭 사고 싶어 했지만 워싱턴이 머뭇거렸다”고 정부와 군 당국 관계자들이 설명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키리크스가 8월 26일(현지시간) 공개한 외교전문은 이러한 통설이 사실과 거리가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미 행정부는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7년부터 이미 한국에 글로벌호크 구매를 강력히 권했고, 주한 미대사관은 최전선에서 적극적으로 ‘세일즈’를 담당했다. 2008년 들어 한국이 예산 문제를 이유로 도입 일정을 미룰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치자 미국 측은 장관급 회담을 비롯한 주요 안보 관련 회의 때마다 사실상의 구매 압력을 가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부터 그 구체적인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청와대 회의 장면까지 속속들이 생중계

    위키리크스가 이번에 공개한 2만5000여 건의 전문 가운데 ‘글로벌호크’로 검색되는 주한 미대사관 전문은 총 14건이다. 한국 언론 보도를 취합해 정리한 보고서를 빼놓고는 모두 양국 당국자 사이에서 글로벌호크 도입 문제를 논의한 내용을 담았으며, 비공개 혹은 기밀로 분류해놓았다.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문서는 2007년 12월 3일자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 명의로 돼 있는 ‘글로벌호크 한국 판매 지원(SUPPORT FOR GLOBAL HAWK SALE TO SOUTH KOREA)’문서는 그간 주한 미대사관이 한국에 글로벌호크를 판매하려 어떤 노력을 기울였고 어떤 쟁점이 남아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서두에서 “한국의 글로벌호크 도입이 미국 국익과 동맹 유지에 필수적(essential)”이라고 정의한 이 문서는 특히 북한의 군사 동향을 추적하는 감시·정찰 능력의 상당 부분을 미 태평양사령부 U2 정찰기에 의존하는 대신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전환 시점에 즈음해 한국이 독자적으로 글로벌호크를 도입, 운용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미국 측 입장은 2008년 3월 25일자 현안자료 문서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미 국무장관의 회담을 앞두고 작성한 이 문서에서 주한 미대사관은 당시 청와대가 추진하던 국방예산 삭감 문제가 글로벌호크 도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이 전문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그해 3월 12일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희 당시 국방부 장관의 면담 모습을 옮긴 대목. 배석한 청와대 보좌진이 “청와대는 국방부의 장난감을 사주려고 수표를 써주지 않을 것(writing checks for MND toys)”이라고 강하게 경고했고, 이 대통령 역시 말없이 이 발언에 동의를 표했다는 것이다. 회의 참석자로부터 직접 전달받은 것으로 보이는 생생한 묘사다. 전문은 그러면서 “(라이스 장관은) 유 장관과의 회담에서 이러한 예산 삭감이 의회의 동맹 지원 의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거론해야 한다”고 권한다.

    MB정부 국방개혁 폭넓게 비판

    “글로벌호크機 사라” 미국 구매 압박 집요했다

    고고도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같은 해 4월 8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 내용을 전한 4월 28일자 전문의 취지도 마찬가지다. 데이비드 세드니 미 국방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가 비공개 세션에서 한국 국방부 관계자에게 던진 첫 발언이 바로 글로벌호크에 관한 부분이었다는 것. “최근 한국에서 글로벌호크 구매사업 중단을 결정한 것에 대해 미국은 심각하게 우려(serious U.S. concerns)한다”고 말문을 연 그는 “한국이 오늘 당장 결정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면 적절한 시점에 글로벌호크를 구매하는 것이 어떤 이점이 있는지 작전 개념을 설명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요구에 한국 측 당국자들이 압박감을 느꼈다는 사실 또한 전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같은 해 5월 30일자 전문에 따르면, 당시 방위사업청 고위관계자는 미대사관 정치담당 참사관에게 “글로벌호크 도입을 위한 예산 일부를 국방부가 아닌 국가정보원 예산에서 공동으로 충당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말한다. 12월 16일자 전문에서는 김태효 대통령실 대외전략비서관이 조지프 윤 당시 미대사관 공사에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파병이나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 기지 이전, 글로벌호크 도입 등에서 한국을 항상 강하게 압박해왔고, 한국은 이에 부응하려고 애써왔다”고 언급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 직전 미 대선에서 선출된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의 요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응해주기를 희망한다는 취지였다.

    특히 이러한 한국 측 행보에 대한 비판이 ‘한국 정부 인사들 가운데 글로벌호크 도입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인물은 누구인지’를 따져보는 수준까지 이뤄졌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의 5월 30일자 보고서에서 주한 미대사관은 2012년 전작권 전환에 반대하는 대표적 인사로 김병국 당시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을 지목해 “글로벌호크와 같이 (전작권) 전환을 위해 필요한 무기체계 도입에 대부분 반대한다”고 적시했다. “이는 전임 노무현 정부의 2012년 전환 합의를 폄훼하려는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는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2009년 3월 2일 열린 SPI 회의에서도 글로벌호크 문제는 다시 한번 주요 의제로 떠오른다. 사흘 뒤 미대사관이 본국에 송신한 비공개 논의 기록에 따르면 세드니 부차관보는 “이미 7개월 전 한국 측에 글로벌호크의 가격과 성능에 대한 제안요구서(LOR) 제출을 요청한 바 있다”면서 “5월 SPI 회의 전까지 LOR를 제출해달라고 강력히 권고(urge)”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구매 일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한국 측 답변에도 미국 측의 완강한 태도는 흔들림이 없었다.

    두 달 뒤 송신된 전문은 당시 작성 중이던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기본계획 수정안을 폭넓게 비판하면서, 결론을 통해 국방예산 증가율이 전체 예산증가율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실망스럽다(disappointment)”고 표현하기도 했다. 공식 발표를 한 달 이상 앞두고 감축규모 등 수정안의 세부 내용을 정확히 파악한 주한 미대사관의 정보력이 놀라울 정도. 주한 미대사관은 2009년 9월 24일과 10월 15일, 각각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부 장관의 방한을 앞두고 작성한 전문에서도 글로벌호크를 한국에 판매하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글로벌호크機 사라” 미국 구매 압박 집요했다

    2008년 4월 8일 서울 용산 국방부청사에서 열린 제17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가

    이후 한국 측이 글로벌호크 사업 추진 일정을 2015년 이후로 미루고 전작권 전환 역시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함에 따라 글로벌호크 도입 문제는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올해 3월 ‘국방개혁307계획’ 발표와 함께 국방부가 2015년 이전 도입으로 가닥을 잡고, 9월 초 미국 정부가 한국 판매 방안에 대해 의회와 협의를 시작했다는 외신보도가 나오면서 최근 이 문제는 다시 급부상했다. 이 문제가 한미 양국 사이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현대전에서 감시·정찰 자산의 효율적 운용이 갖는 위력은 절대적이다. 밝은 눈이 강한 주먹이나 빠른 다리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게 21세기 전장 환경의 특성이다. 특히 전작권 전환 이후를 생각하면 그간 미국에 상당 부분 의존해왔던 정보·정찰 능력을 독자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과제이기도 하다. 각국 외교관이 자국 기업 무기의 해외 판매를 위해 애쓰는 이른바 ‘세일즈 외교’를 굳이 탓하기도 어렵다. 글로벌호크 구매를 두고 미국 측이 가해온 압박을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는 반론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서두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간 글로벌호크에 대해서는 ‘한국은 원하지만 미국 측이 주저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쉽게 말해 구매자인 한국이 ‘갑(甲)’이 아니라 ‘을(乙)’이라는 식이었다. 그사이 한국이 구매자 위치를 활용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방안은 무엇인지 선택할 기회는 사라져버렸고, 이에 대해 정부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국민이 감시할 방법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주간동아’가 위키리크스 전문을 통해 이를 되짚어 공개하는 이유는 이제부터 진행할 협상에서는 이 같은 오류를 수정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사례 ‘공중조기경보통제기’

    “가격은 중요하지 않다, 동맹을 생각해라”


    “글로벌호크機 사라” 미국 구매 압박 집요했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 E-737 피스아이.

    이번에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한국 관련 전문은 2006년에서 2010년 사이에 집중돼 있다. 이 기간에 이슈가 됐던 한국의 또 다른 대형 무기 도입 사업으로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가 있다. 한반도 전역의 공중과 해상 표적을 탐지하고 수집한 정보를 각군에 배분하는 까닭에 ‘하늘의 지휘소’로 불리는 이 항공기는 2006년 미국 보잉의 E-737 기종과 이스라엘 엘타의 G-550이 경합을 벌이다 미국 기종으로 최종 결정된 바 있다. 이렇게 제작된 총 4대의 E-737 ‘피스아이(Peace Eye)’ 가운데 첫 번째 물량은 8월 초 한국 공군에 인도됐고, 나머지 3대는 내년 연말까지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AWACS 도입 문제와 관련해서도 상당수의 위키리크스 전문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측의 첫 번째 구매 압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3월 23일자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한한 크리스토퍼 본드 미 상원의원은 이종석 당시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동맹국인 한미 양국군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증진하는 차원에서 보잉의 AWACS 기종을 구매해달라”고 요청한다. 이 장관이 보잉사 기종이 이스라엘제보다 60%가량 비싸다는 점을 들어 난색을 표하자 본드 상원의원은 “보잉 기종은 실제 전장에서 성능이 입증됐으므로 비교가 불가능하다”면서 “가격이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박한다. 상호운용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같은 해 4월 22일자 전문에서는 버시바우 대사가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보잉 기종 구매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미국 정부가 보잉 기종 판매를 강하게 지원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한편, 이 기종만이 한미 양국군의 상호운용성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언급했다는 내용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보잉의 입찰 일정까지 상세히 설명해가며 적극적인 세일즈에 나섰고, 이러한 언급은 4월 28일자 송민순 당시 대통령 안보실장과의 면담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이렇듯 도입 결정 전 매우 적극적이던 미국 측 움직임은 보잉사가 단일 입찰대상으로 선정된 그해 8월 이후 사뭇 달라진다. 9월 6일 면담에서 윤광웅 당시 국방부 장관이 “보잉의 현재 가격이 한국군의 예산 범위를 벗어난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버시바우 대사는 “하청계약자의 가격보증이 끝나는 7월 이후에는 가격이 상승할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하지 않았느냐”며 “유감스럽게도 한국이 구매 결정을 지연하는 바람에 가격이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아닌 보잉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가격을 조율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면서도 버시바우 대사는 “빠른 시일 내에 이 사업이 진행되길 매우 강하게 원한다(very much wanted)”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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