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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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계약에서 행복한 동행까지

결혼, 소설과 영화로 끊임없이 창작 … 최근엔 여성의 주체성과 자부심 강조

  • 표정훈 출판평론가 medius@naver.com

    입력2009-10-07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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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미술, 영화, 음악 등 거의 모든 예술 장르에서 사랑과 결혼만큼 자주 다루는 소재는 드물다. 사랑과 결혼이라는 주제를 금지한다면 인류의 문화활동이 정지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특히 소설과 영화 장르가 그렇다. 일단 한 여자와 한 남자를 설정하고 나면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온다는 어느 소설가의 창작 노하우(?)는 결코 헛된 말이 아니다. 결혼을 다룬 작품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결혼의 풍경이 있겠지만, 그 다채로운 풍경 가운데 몇몇을 살펴보자.

    야마모토 후미오의 ‘지혼식’(창해)은 8편으로 이뤄진 결혼 연작소설이다. ‘지혼식(紙婚式)’은 본래 결혼 1주년을 이르는 말로, 이날 종이로 된 선물을 주고받으며 기념하는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8편의 작품 가운데 깨가 쏟아지는 닭살 부부의 이야기는 ‘물론’ 없다. 결혼을 앞둔 커플에게는 일종의 예방주사가 될 수도 있고, 결혼생활 중인 이들에게는 공감을 느끼며 부부로 산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돌이켜보게 만들기도 하는 작품이다.

    ‘결혼이란 그럼에도 혼자이길 선택하지 않는 것’

    생존계약에서 행복한 동행까지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상대의 일과 친구 이야기를 그다지 흥미롭게 듣지 않게 되었다. 고민을 털어놔봐야 적극적으로 상담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말하지 않게 되었고, 둘이 외출해도 즐겁지 않았다.

    휴가를 맞추는 번거로움도 포기했다. 남편은 이미 나의 일부이다. 타인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있어도 외로워한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타인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표제작 ‘지혼식’ 중에서)



    그 흔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솜씨가 각별한 작가 에쿠니 가오리. 그의 많은 작품이 소개됐지만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소담출판사)는 자전적 에세이와 소설의 중간쯤 되는 분위기로 결혼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매력은 결혼에 관한 촌철살인의 단상, 상념, 그리고 성찰에 있다.

    “결국 결혼이란 그럼에도 혼자이길 선택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있지 않는 편이 마음 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있는 것.” “나는 남편과 함께 본 도치기의 별밤과 나가노의 고추냉이밭만큼이나 내가 보아온 풍경과 남편이 보아온 풍경을 사랑한다. 항상 같은 사람과 밥을 먹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먹는 밥의 수만큼 생활이 쌓인다.”

    오정희의 중편소설 ‘바람의 넋’(문학과지성사)에서 결혼 초 전업주부인 주인공이 남편에게 묻는다. “당신이 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내가 뭘 하고 있을까를 생각해보기도 하나요?”

    남편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여자들의 일상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대답이 궁했다. 남자들이 나간 집에서 여자들은 설거지, 청소, 빨래를 하고, 이런 일을 마치면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이거나 가벼운 클래식 소품과 자잘한 생활 주변의 일을 담은 사연으로 꾸며지는 라디오의 여성 프로를 듣고 저녁 찬거리를 생각하고 시장에 갈 것이라는 정도가 기껏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아내의 하루였다.”

    주인공 여성은 결국 ‘바람의 넋’이 되어 떠돌게 된다. 스티븐 비덜프는 ‘우리는 사랑을 배우기 위해 결혼했다’(북하우스)에서 모든 사람의 자아 속에서 어린아이 부분, 부모 부분, 어른 부분이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낸다고 말한다. 그러한 다른 목소리들이 배우자의 자아 속 다른 목소리들과 어떻게 부딪치느냐에 따라 결혼생활의 유형이 결정된다는 것. 예컨대 어떤 때는 어른-어른으로 의젓한 대화를 하다가, 때로는 아이-아이로 만나 토닥거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다른 사람이 아닌 이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했을까?’ 하는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비덜프에 따르면, 우리가 특정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우리 내부에 장착된 일종의 ‘사랑 조정장치’ 때문이다. 그 장치는 겉으로는 공통점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사실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서로 많이 닮은 상대, 즉 나 자신과 닮은꼴인 상대에게 빠져들게 만든다.

    생존계약에서 행복한 동행까지

    다양한 결혼의 풍경만큼이나 결혼을 다룬 작품도 많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위)와 ‘나의 그리스식 웨딩’.

    결혼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역사적인’ 제도이자 관습이다. 초기 인류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를 통해 다양한 문화권의 결혼관은 어땠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책이 스테파니 쿤츠의 ‘진화하는 결혼’(작가정신)이다.

    우리가 결혼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 예컨대 사랑을 기반으로 이뤄지며 가능하면 남자가 생계를 책임지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서의 결혼상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 이후부터 시작됐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시기 동안 결혼은 낭만적이지도 가슴 뭉클하지도 않은 정치 행사이자 사회 행사였다. 결혼은 이권과 생존이 걸려 있는 중요한 계약이었고, 사람들은 결혼을 자신과 집안의 사회, 경제, 정치적 지위를 획득하거나 강화하는 발판으로 삼았다.

    이제 영화 속 결혼 풍경을 살펴보자. 어릴 때부터 결혼식을 지독히도 좋아했던 주인공 제인. 지금은 지인들의 결혼식 들러리만 서는 처지다.

    짝사랑하던 남성도 여동생에게 빼앗긴 그녀는 좋게 말하면 천사표,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착한 사람 콤플렉스 덩어리인 셈. 앤 플레처 감독의 ‘27번의 결혼 리허설’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주인공이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남성과 사랑을 시작하리라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여성 가운데 자신이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이가 적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이기 전에 사랑에 관한 진정한 자아를 찾는 일종의 성장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사랑은 무엇이고 결혼은 또 무엇인가

    조엘 즈윅 감독의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그리스 전통 문화를 고집하는 가정에서 살아온 여성 툴라가 미국식 청교도 가정에서 자란 미국 남성 이안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문화적 갈등과 사랑 이야기다. 그리스식 가족주의와 미국식 개인주의의 문화적 차이가 영화의 중요한 배경을 이룬다. 상대방의 이름도 제대로 발음 못할 정도로 이질적인 두 사람은 어떻게 그 이질성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말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문화적 이질감과 차이를 심각하게 증폭시켜 그려내기보다는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가벼운 터치로 해소시켜버리지만, 결혼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얼굴짱 몸짱이 아니라 얼굴꽝 몸매꽝인 주인공 뮤리엘은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산다. 제대로 데이트 한 번 못해보고 부케를 받고도 결혼과는 거리가 멀기만 한 그녀는 시드니에 정착한 뒤 데이트도 하고 키스도 경험한다.

    여전히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사는 그녀. 급기야 호주 국적을 취득하려는 미남 수영선수에게 위장결혼 제의를 받고 꿈같은 결혼식을 올리지만 곧이어 찾아오는 비극. P. J. 호건 감독의 ‘뮤리엘의 웨딩’은 스스로에 대한 거짓이나 환상이 없는 당당한 주체성과 자부심이 여성의 삶에서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사랑과 결혼에서도 분명 그러할 듯.

    결혼은 좋은 조건의 상대와 하고 연애는 겉궁합, 속궁합이 맞는 사람과 할 수 있다면? 지적이고 매너 좋은 연애지상주의자인 대학 강사(감우성 분)와 섹시하고 당돌한 조명 디자이너 여성(엄정화 분)의 사랑. 여성은 돈 많은 의사와 결혼하고 남성은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며 각자의 욕망을 서로에게서 충족시킨다.

    이른바 불륜. 그런데 둘 사이의 불륜 관계가 진정한 사랑에 바탕을 둔 결혼생활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사랑은 무엇이고 결혼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작가 이만교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한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단정적인 제목과 달리 결말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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