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6

2009.10.13

닮아서 선택했나, 살다 보니 닮았나

진화심리학으로 본 배우자 선택 이론 … 초기 만남에선 ‘동질감’에 강렬한 반응

  •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입력2009-10-07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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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닮아서 선택했나, 살다 보니 닮았나
    “새내기 직장인 시절에는 돈을 많이 벌어다주는 배우자를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배우자를 만났으면 하지만, 그렇다고 경제력만 중요하다고 여기지는 않아요.”

    5년째 기업 홍보업무를 맡고 있는 박주연(30) 씨는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결혼관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연봉이 높고 안정된 직장을 가진 남성이 배우자감으로 좋지만, 여기에 더해 집안 문제를 편하게 상의할 수 있도록 다정다감한 마음씨도 지녀야 한다는 것. 그 옆자리에 앉은 8년차 직장인 이현숙(33) 씨는 한 걸음 더 나간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벌면 얼마나 벌겠어요. 저도 벌고 있으니, 경제력보다는 평생 저랑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요즘 이런 생각을 하는 ‘골드미스’나 결혼 적령기 여성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탄탄한 경제력을 가진 직장여성 중 이처럼 배우자 선택기준이 다양해진 경우가 적지 않다. 몇 년 전만 해도 진리로 통하던, ‘결혼은 최고 유전자와 안정된 환경을 추구하는 현대적 자연선택’이라는 진화심리적 공식이 깨진 것일까.

    돈만 버는 남자는 자연선택으로 퇴출?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이 주장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은 ‘결혼, 즉 짝짓기는 유전자가 세대를 거치면서 자신의 복제본을 더 잘 전파하는 유전자를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짝짓기’는 암수가 합의하에 서로를 선택한다는 느낌을 주지만, 자연계에서는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자기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인간의 짝짓기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남녀가 서로 판단해 선택한다.

    대개 남성은 여성 배우자를 선택할 때 배우자의 가치 중 나이나 신체적 매력에 유난히 관심을 둔다. 신체 요인은 어떤 여성이 얼마나 자식을 잘 낳을 수 있는지 직간접적으로 알려주기 때문. 반면 여성은 남성의 외모보다 경제적 능력이나 지위, 신뢰감을 더 따진다. 남녀가 함께 자식을 기르도록 진화한 인간 사회에서 가족을 충실하게 돌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의 짝짓기 과정에서 여성은 훨씬 까다롭게 남성의 이모저모를 살핀다.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이 같은 짝짓기 기준은 현대인의 결혼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몇 해 전만 해도 미혼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남성은 주로 여성의 외모와 성격, 직업(경제력) 순으로, 여성은 직업과 성격, 가정환경 순으로 배우자를 골랐다. 배우자의 직업에서도 남성은 보육과 가사를 안정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교사나 공무원을 일반 사무직 여성보다 선호한다고 답했다.

    남성은 여성을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는 자원(資源)으로 생각하고, 여성은 보호 능력의 척도인 경제력과 지위를 중요시하는 것과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최근 배우자의 선택기준이 조금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그저 돈 많이 벌고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남성이 최고였다면, 이제는 다정다감하고 가정생활에 충실한 남성이다. 여성 배우자상도 ‘현모양처’에서 자신의 일을 갖고 있고 직장인의 고충을 이해해주는 같은 사무직 여성으로 바뀌고 있다.

    배우자 여성의 직업도 교사, 공무원보다는 대기업 직장여성을 선호한다는 남성들도 생겨났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의 변화가 종전의 배우자 선택 이론에서 크게 벗어나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다만 최상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사회·경제적 환경이 바뀌면서 정교해지고 복잡해진 것뿐이다. 여성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자.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상당수 여성은 경제력을 비롯해 사회적 지위를 누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삶의 질을 더욱 고민하게 되면서 엇비슷한 경제력과 지위를 갖춘 배우자 후보 중에서 좀더 차별화한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예전에는 경제력에 주목했다면 이젠 그보다 한 걸음 나아간 가치, 즉 유머 감각이나 인간적 면모를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이는 남성의 경제력과 지위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변화한 여성의 지위에 맞는 새로운 기준이 추가됐다는 것을 뜻한다. 또 ‘졸부형’ 남성이 ‘자연선택’을 통해 추방되기 시작했다는 것도 의미한다.

    남성들 역시 여전히 배우자를 선택할 때 신체적 매력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남성이 누리던 경제사회적 지위가 흔들리고 ‘가장’이라는 위치마저 위태로워지면서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도 바뀌고 있다. 이상적인 배우자 기준에 여성의 경제력이나 이해심 등을 포함시키게 된 것. 이 같은 배우자관은 여성에게서 출산과 육아, 가사, 직장생활의 성공을 모두 추구하는 ‘알파걸’ 신드롬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전통적 짝짓기 기준이 흔들리면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기현상이 생겼다. 반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전통적 시각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여성들도 존재한다. 최근 20대 여성 대졸자의 ‘취집(취직 대신 시집을 선택하는 것)형’ 조혼(早婚)이 느는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백년해로할 동반자로 삼는 이성은 어떤 사람일까. 최근 남녀 간 사랑과 배우자 선택을 다룬 10년간 연구의 공통적인 키워드는 ‘동질감’이다.

    남녀 간 짝짓기, 사랑에 관한 상당수 심리학적 연구는 첫인상이나 단기간의 반응에 집중돼 있다. 반면 동질감은 진화심리학적으로, 또 유전학적으로 튼튼한 근거 위에 서 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비슷한 타입의 이성을 계속 만나는 이유를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과 유사한 사람을 만나면 옥시토신이 활성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익숙한 얼굴에 친밀감을 느끼는 것과도 같다.

    영국 세인트앤드루대 인지심리학자인 데이비드 페렛 교수팀은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200여 명의 남녀 실험 참가자에게 자신의 얼굴을 반대 성(性)으로 만든 사진을 다른 이성 사진과 섞어 보여준 뒤, 그중 호감이 가는 사진을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상당수의 참가자는 자신을 닮은 반대 성의 사진을 골랐다. 또 대부분의 남성이 자신의 어머니를, 여성은 아버지를 닮은 배우자를 선호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심지어는 체취에서도 동질감을 찾는다.

    미국 시카고대 마사 매클린톡, 캐롤 오버 박사 연구팀은 여성은 아버지와 유사한 냄새를 가진 남성을 선호한다는 연구결과를 유전학 전문 학술지 ‘네이처 지네틱스’에 발표하기도 했다. ‘부부는 살면서 닮는다’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다수 사람이 배우자를 고르는 과정에서부터 자신을 닮은 이성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자신이나 부모를 닮은 배우자를 찾는 것은 유전학적으로는 미스터리다.

    유전적으로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는 것은 후손에게 좋지 않은 열성유전자를 물려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 부모 또는 자신과 유사한 배우자를 선택할 경우 특정 환경에 잘 적응한 유전자를 보존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연구도 있긴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명확히 비밀이 풀리지는 않았다. 사랑이라는 뇌의 작용이 복잡하게 얽힌 데다, 어느 때보다 사회현상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배우자 선택의 메커니즘은 여전히 알쏭달쏭한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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