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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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위기의 보수

지지층은 무너지는데, 희망의 리더십은 오리무중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7-06-23 16: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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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가 좌우 양쪽 날개로 날 듯,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여야의 상호 견제와 균형 원리로 작동한다. 그러나 2017년 6월 대한민국 정치권은 압도적인 여권 우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6월 셋째 주(6월 13~1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83%,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50%였다. 그에 비해 제1야당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10%, 제2야당 국민의당 7%, 제3야당 바른정당 5% 순이었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정의당은 7% 지지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이 같은 정당 지지율을 보수, 진보 등 이념 성향으로 구분해보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진다. 보수 성향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지지율 합이 15%에 머문 반면,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지지율 합은 64%로 보수 성향 정당 지지율의 4배가 넘는다. ‘보수에게 미래가 있는가’라는 회의적 시각이 대두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인 2013년 1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이념 성향 조사에서 응답자의 40%가 스스로를 보수 성향이라고 답한 바 있다. 진보 성향이라는 응답자는 24%에 머물렀다. 그런데 이것이 지난해 12월 조사에서는 역전됐다. 보수라는 응답이 24%에 그친 반면, 진보라는 응답은 36%로 크게 높아진 것이다. 4년 만에 유권자 지지 성향이 이처럼 급격한 변화를 겪은 이유는 뭘까.



    보수 지지층의 고령화 현상

    한국 보수와 보수 정당의 위기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동시에 찾아왔다. 가치와 이념 중심이 아닌, 특정인 중심으로 권력 유지 차원에서 정당을 운영해온 부작용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자유한국당 정책연구소 여의도연구원이 주최한 6월 23일 토론회에서 “한국 우파는 산업화를 이룬 뒤 대안을 내놓는 데 안이했다”며 “대중영합주의에 결연히 맞서 싸운 영국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결단력도,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의 유연성도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보수 정당이 처한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대통령 탄핵과 5·9 대선을 지나오면서 보수 정당을 떠받쳐온 지지층이 점점 더 와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보수 지지층에서는 고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2012년 대선 때까지만 해도 보수 지지층은 연령별로는 50대 이상, 지역별로는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 서울 강남3구 등 수도권 강남벨트가 굳건히 떠받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견고해 보이던 보수 지지층의 분화 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일부 여론조사 전문기관은 5·9 대선 때 ‘60대 이상’이라는 기존 연령 구분을 ‘60대’와 ‘70대 이상’으로 구분해 발표하기 시작했다. 60대와 70대 이상의 지지 성향 차이가 과거와 달리 확연해졌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연령 구분은 386세대 가운데 일부가 60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공고해질 개연성이 높다. 가장 강력한 세대 특성을 보여온 이들이 60대에 진입하면 ‘60대=보수 지지층’이라는 등식이 깨질 공산이 크다. 결국 보수 지지층이 70대 이상 초고연령층으로 고립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지역별로는 TK와 PK의 분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해 20대 총선 때 PK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거 당선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문 대통령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PK에서 근소한 차로 앞섰다. ‘PK=보수=자유한국당 지지’라는 등식이 깨진 것이다. 결국 연령별로는 70대 이상으로, 지역별로는 PK가 떨어져나가고 TK 중심으로 보수 지지층이 고립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와 총선 등 전국을 수백 개 단위로 쪼개 치르는 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이 TK 등에서 우세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단 한 명의 당선인을 선출하는 대선에서는 연령과 지역에서 고립되면 당선권에서 멀어진다. 결국 보수 지지기반 붕괴는 집권 가능성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총선과 올해 대선에서 2연패를 당한 보수 정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 전망은 우울하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6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보수 정당 지지율을 보면 무척 걱정된다’면서 ‘바른정당과 한국당의 통합이 절실하다’며 보수 대통합을 촉구하고 나섰다. 부산에 지역구를 둔 장 의원이 보수대통합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포석의 성격이 다분하다. 보수층 분열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맥없이 패할 경우 2020년 21대 총선, 나아가 2022년 대선 결과도 암울해진다는 점에서다.

    지지기반 와해와 함께 뚜렷한 리더십이 출현하지 못한 현실은 보수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한다. 2012년 대선 이후 보수 진영에서는 전체를 아우를 만한 인물이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급작스럽게 대선을 치렀다고는 하지만, 다선의원이 즐비한 상황에서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뒤늦게 등장한 것은 보수 진영의 인물 경쟁력이 그만큼 취약함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게으름과 기회주의에서 벗어나야

    그에 비해 여권은 문 대통령의 뒤를 이을 쟁쟁한 인물군이 포진해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경쟁했던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을 비롯해 문 대통령이 첫 내각에 포진시킨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그리고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모두 차기 주자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들 차기 주자군은 호남(임종석)과 충청(안희정), TK(이재명, 김부겸), PK(김영춘) 등 전국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1여-3야 정치지형은 집권 여당에게 크게 유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아주 나쁜 구도도 아니다. 더욱이 보수 성향 정당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양분돼 서로 반목하는 상황을 잘만 활용하면 여당이 정치력을 발휘할 공간이 더 넓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 정치 구도가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실시한 이후 대통령과 집권당 지지율은 임기 초반에는 높고 후반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초고후저’ 현상을 일관되게 보여왔다는 점에서다. 김인영 한림대 교수는 바른사회시민회의와 여의도연구원이 주최한 토론회 ‘보수의 미래를 디자인하다’ 발제를 통해 “장기적으로 본다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국민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문재인 정권이 실수를 거듭하면 ‘보수’는 다시 살아날 것이 명백하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피나는 보수개혁 운동이 전개돼야 할 것이고, 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보수궤멸론’과 ‘보수는 더는 안 된다’는 보수 패배주의 역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사상, 정책, 시민운동의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보수는 ‘3가지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는 공부하고 토론을 통해 정책을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새로운 뉴라이트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며, 셋째는 미국 티파티 같은 보수주의의 풀뿌리 시민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은 “스스로 지지세력을 만들지 않는 습관과 게으름 탓에 대중 다수의 중간에 서면 지지를 받을 것이란 착각을 하고 있다”며 “보수는 기회주의적 편승의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보수가 좌파의 ‘헛발질’에 편승해 이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자기 힘으로 새로운 동력을 얻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젊고 유능한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 복원이란 막연한 기대를 뚜렷한 현실로 만들어낼 리더십이 각각 6월 말, 7월 초로 예정된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를 통해 세워질 수 있을까. 아직 회의적 시각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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