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1

2017.06.07

특집| 기준부터 마련하라!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대체 몇 명?

‘임기 중 제로’ 강조하기보다 범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부터 시작해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6-02 16: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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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2일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인천공항)을 방문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도 “올해 안에 비정규직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런데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www.alio.go.kr)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통계가 나온다. 일사분기 기준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수가 29명이다. 이 ‘격차’의 해답은 통계시트를 좀 더 살펴봐야 나온다. 파견·용역·사내하도급 등으로 고용된 6903명이 ‘비정규직’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소속 외 인력’ 항목에 묶여 있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증이 남는다. ‘29+6903’을 해도 정 사장이 언급한 ‘비정규직 1만 명’에 3000여 명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29명 vs 6893명 vs 1만 명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시스템’(public.moel.go.kr)을 찾아봤다. 이 사이트는 지난해 현재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수를 6893명이라고 소개한다. ‘기관 소속 인원’ 24명에 ‘기관 소속 외 인원’ 6869명을 더한 수다. 그렇다면 정 사장은 있지도 않은 비정규직 3000여 명을 추가 고용하겠다고 약속했다는 말인가. 

    여기 두 번째 비밀이 있다. 인천공항에서 보안·환경미화·시설유지·시스템관리 등을 담당하는 노동자의 상당수가 어떤 비정규직 통계에도 잡히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 협력업체의 ‘정규직’ 사원일 수 있다. 실상은 인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업무를 수행하고 사장조차 ‘정규직 전환이 필요한 우리 비정규직’이라고 인식하는데도, 각종 통계에서 그들은 정규직 노동자 취급을 받는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현행 비정규직 분류체계는 급변하는 노동시장과 다양한 고용 형태 분화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현 시스템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나 단일한 대기업과 거래하는 서비스 외주업체 노동자 등이 중소기업 정규직 또는 비정규직으로 분류될 개연성이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인천공항은 우리나라 비정규직 고용 실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전체 노동자의 약 85%가 비정규직으로 분류된다. 2013년부터 이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파업과 집회, 1인 시위가 잇따라 열렸다.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 간부가 해고(계약해지)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사업장조차 비정규직 수가 제대로 집계되지 않는다. 정부 내에서도 통계에 따라, 주관기관에 따라 비정규직이라는 용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민간 부문 논의까지 포함하면 이 단어의 쓰임새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통계청은 지난해 8월 현재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의 32.8%가 비정규직이라고 밝혔다. 통계청이 매년 3월, 8월 실시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다. 그런데 노동계 싱크탱크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같은 기간 국내 비정규직 규모를 전체 임금노동자의 44.5%로 집계했다. 경영계 의견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을 내세우며 이 비율을 22.3%라고 주장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임금근로자 수는 1962만7000명이다. 이를 바탕으로 삼은 통계에서 10%p 차는 노동자 약 200만 명에 해당한다. 경영계와 노동계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비정규직 수의 차이가 약 400만 명에 이르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기본 단어의 뜻조차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임기 내 비정규직 제로’ 약속이 지켜질 수 있겠느냐고 우려한다. 


    일상화된 비정규 노동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쓰인 지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니다. 이 단어의 대중화 시점은 보통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여겨진다. 장하성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은 2015년 펴낸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헤이북스)에서 ‘1990년대만 해도 비정규직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외주 용역 증가 등으로 비정규직이 생겨났고, 이후 급격하게 증가했다. 정부통계가 시작된 2002년 비정규직 비중은 전체 노동자의 27.4%였고, 2004년 37.0%로 불과 2년 만에 10%포인트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1998년 2월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제정되면서 역설적으로 ‘파견 고용’이 크게 늘어나는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 노동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파견철폐공동대책위원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에서 활동해온 김혜진 씨는 책 ‘비정규 사회’(후마니타스)에 이렇게 썼다.

    ‘새벽에 집을 나선다. 현관에 걸린 주머니에서 요구르트와 우유를 꺼내 안에 넣어둔다. 우유와 요구르트를 배달한 사람은 특수고용직이다. 골목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봉투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을 만난다. 구청에서 직접 고용하지 않고 민간에 위탁한 용역 비정규직이다. 지하철역 앞에서 전단지를 돌리는 사람은 일당직 아르바이트다. 지하철을 수리해 안전하게 타고 다닐 수 있게 돕는 지하철 정비 기술자의 상당수가 비정규직이다. 지하철을 청소하는 사람도 용역직이다.

    지하철역을 나와 사무실로 향하다 길가로 눈길을 돌리니 누군가가 전신주에 매달려 전선을 수리하고 있다. KT에서 일하는 도급 비정규직이다. 사무실에는 파견직 직원들이 서류를 정리하고 있고, 지하에는 시설관리직원이 용역직으로 일하고 있다. 대형할인마트에 가면 카트를 운반하는 일용직, 계산대에 있는 계약직 단시간 노동자, 용역직 주차요원, 물건 판매대 앞에 서 있는 파견직 등이 보인다. (중략) 서둘러 점심을 해결하고 은행에 들른다. 빠른 창구에 있는 직원은 계약직이거나 무기계약직이다. 창구 안쪽에서 상담업무를 맡은 정규직들과 대비된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통신요금고지서를 확인하기 위해 콜센터에 연락하면 파견직 직원이 상냥하게 전화를 받는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간다. 고장 난 복사기를 고치려고 방문한 애프터서비스센터 직원은 특수고용직이다. 거래처에 급히 서류를 보내려고 부른 퀵서비스 기사도 마찬가지다. (중략) 아파트에 도착하자 택배가 왔다면서 물건을 건네는 경비원은 용역직이다. 현관에 들어서니 둘째 아이를 가르치는 학습지 교사가 와 있다. 그는 특수고용 비정규직이다.’

    노동계는 김혜진 씨가 이 글에서 언급한 모든 노동 형태를 비정규직으로 본다. 파견직은 ‘파견 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사용 사업주의 사업장에서 지휘, 명령을 받아 근무하게 하는 형태’를, 용역직은 ‘용역업체의 지휘 하에 이 업체와 용역계약을 맺은 다른 업체에서 근무하는 형태’를 각각 의미한다. 특수고용직은 학습지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과 같이 ‘독립적인 자영업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고용주에게 종속된 지위에서 근무하는 형태’다. 모두 고용안정성 등의 면에서 정규직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에 포함하는 것이다.

    정부 생각은 다르다. 통계청은 관련 통계를 낼 때 ‘2002년 7월 노사정위원회가 합의한 비정규직의 정의 및 범주’를 이용한다고 밝혔다. 여기엔 △한시적노동자 또는 기간제노동자 △단시간노동자 △파견·용역·호출 등의 형태로 종사하는 노동자가 포함된다. 노동계가 비정규직으로 보는 범주 가운데 ‘계약 기간의 정함이 없는’ 무기계약직이나 특수고용직 등은 제외된다.

    그러나 노동계에 따르면 이들은 정규직 노동자와 다를 바 없이 일하면서 대우 면에서는 차별을 받는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발표한 ‘2014 학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 비교’ 자료에 따르면 한 학교의 9년 차 무기계약직 영양사 급여는 같은 연차인 정규직의 절반(55.9%)에 그쳤다. 상당수 기관이 무기계약직에게 승진 기회를 주지 않고 근속 보상, 해고 요건 등에서도 정규직과 차별을 뒀다. 그러나 정부 통계에서 이들은 정규직이다. 



    만연한 2년 내 해고

    청와대 일자리수석실 고용노동비서관에 내정된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 통계에서 빠지는 비정규직으로 ‘전속성이 강한 앱음식배달 종사자’를 꼽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7월 1일〜8월 15일 앱음식배달 종사자 2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5.7%(181명)가 주당 56시간 넘게 일했다. 82.2%(198명)는 출근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73.0%(176명)는 퇴근시간도 통제받았다. 황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관리와 통제 수준이 전통적인 임금노동자에 비해 낮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의 약 60%는 계약 기간을 정하지 않은 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우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이 지난해 9월 월간 ‘노동리뷰’에 게재한 ‘고용의 질은 개선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근로자들이 직업 선택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항목 중 하나는 고용안정성’이다. 김 전문위원은 “아직 사회안전망이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고용안정성은 그 자체로 근로자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전속성이 강한 앱음식배달 종사자’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상당수 노동자가 고용안정성을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2006년 제정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 이 법에는 사용자가 2년 이상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할 경우 그 노동자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자’로 본다는 조항도 있다. 그러나 이 법 시행 뒤 비정규직 노동자 앞에 닥친 현실은 계약 기간 2년이 되기 전의 계약 해지가 일반적이다.  

    고용노동부가 기간제 노동자 2만 명을 표본 추출해 2010년 4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추적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해당 기간 우리나라 전체 기간제 노동자 121만5000명 가운데 정규직이 된 사람은 11.4%(13만9000명)에 불과했다. 대상자의 52.7%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으며, 실업 상태가 된 사람 중 53.2%는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직장을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간접고용은 ‘나 몰라라’

    장하성 정책실장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 따르면 OECD 통계에서도 우리나라 임시직 노동자가 1년 후 영구직으로 전환된 비율은 11.1%, 3년 후 전환 비율은 22.4%에 그쳤다. 장 정책실장은 이 책에서 ‘OECD 회원국 중 비정규직(non-regular worker)이라는 형태의 고용이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 외 모든 나라는 일이 일시적이면 임시직을 채용하고, 일이 지속되면 영구직을 고용한다. 일이 지속되는데 사람을 계속 바꾸는 비정규직 제도는 노동자의 고용 불안을 이용한 임금 착취 수단’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가 OECD 자료를 분석한 결과 룩셈부르크 임시직은 3년 후 거의 80%, 네덜란드·벨기에 등은 70%가 영구직이 된다. 반면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는 3년 후 열 명 가운데 두 명만 정규직이 되고, 대여섯 명은 계속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두세 명은 실업 상태가 된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우리나라 비정규직 고용의 또 다른 문제는 ‘정규직’의 탈을 쓴 간접고용이 많다는 점이다. 2015년 한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했을 때 학교 측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그들이 용역업체 소속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용역업체가 노동자 임금을 깎은 건 해당 대학이 용역업체에 주는 돈을 줄였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을 비롯해 많은 기업이 이처럼 비용 절감 목적으로 간접고용을 추진하며, 자신들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면 ‘고용주한테 따지라’고 책임을 회피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용역, 외주, 분사, 아웃소싱, 사내하청, 파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처지는 크게 다를 게 없다.

    현대자동차 사장을 지낸 이계안 전 국회의원은 “고용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근로조건은 임금과 고용보장이다. 고용안정을 포기한 비정규직에게는 높은 임금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당수 선진국은 복지수당 등을 지급할 필요 없는 비정규직에게 정규직보다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주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149만4000원)은 정규직(279만5000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그래프 참조).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고용보험 가입률도 정규직이 각각 82.9%, 86.2%, 84.1%인 데 반해 비정규직은 각각 36.3%, 44.8%, 42.8%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비정규직이 ‘저임금, 중노동, 쉬운 해고’를 의미하는 이름이 된 까닭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제작한 정책 제안 동영상 ‘주간 문재인’을 통해 “모든 계층, 모든 직종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절망이 자라고 있다. 이 차별의 벽, 절망의 벽을 무너뜨리겠다”고 약속했다. 유세 중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난 자리에서 “비정규직이 서러운 세상을 함께 바꿔나가자”고 했고, 취임 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에 비정규직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장하성 교수를 임명하기도 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공언했다 실패했지만, 현재 전문가들은 새 정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인천공항을 선택한 점을 거론하며 “인천공항은 그동안 ‘비정규직의 백화점’으로 불릴 만큼 온갖 형태의 간접고용이 심했던 곳이다. 그곳에서 관련 문제 해결 의지를 천명하고 경영진의 ‘정규직 전환’ 약속까지 받음으로써 공공부문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비정규직 문제가 개선될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그는 “새 정부가 앞으로 공약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노동법 및 사회보험 적용 대상에 빠져 있는 ‘앱음식배달 종사자’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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