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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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인가 ‘적폐’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일부 열성 지지자, 댓글 폭탄으로 ‘홍위병’ 논란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7-05-19 17: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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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과 ‘통합’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간이 없었음에도 순항 중이다. 특히 양정철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 이호철 전 민정수석비서관, 최재성 전 의원 등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들이 ‘아름다운 퇴장’을 하면서 측근 정치의 우려도 가신 상태다. 그런데 ‘문 대통령 지키기’에 나선 열성 지지자들은 평소 문 대통령에게 우호적이라고 평가받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겨레21, 오마이뉴스 등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들이 문 대통령의 인사를 비판하거나 지지자들을 ‘문빠’로 부르며 불손한 글을 올렸다는 이유에서다. 야권은 이런 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을 ‘홍위병식 행태’라며 ‘통합을 방해하고 의사소통을 막는 적폐’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반부패 적임자 vs 노조 파괴 대리인

    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이 민주노총과 틀어진 이유는 5월 12일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에 신설한 반부패비서관에 박형철 전 부장검사를 임명한 것과 관련한 논란 때문이었다. 청와대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집행할 최적의 인물”이라며 “2012년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 수사 당시 윤석열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와 함께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용기를 보여줬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박 전 부장검사가 지난해 7월부터 노조 파괴 사업장인 갑을오토텍의 사측 대리인 변호사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며 “박 전 부장검사의 반부패비서관 임명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법원은 지난해 7월 박효상 전 갑을오토텍 대표에 대해 기존 노조를 약화시키거나 와해하기 위해 노무법인으로부터 시나리오를 제공받아 물리력 행사가 가능한 특전사, 경찰 출신 등 60여 명을 채용해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는 등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바 있다.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 진행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 때 박 전 부장검사의 활약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민주노총은 박 전 부장검사의 검사 퇴직 이후 변호사 시절 활동을 문제 삼은 것이다.



    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은 박 비서관 임명을 반대한 민주노총에 대해 ‘귀족노조’ ‘청산해야 할 적폐’라며 집단 비판에 나섰다. 이는 야당이 가세하면서 ‘홍위병’ 논란으로 확대됐다.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5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대통령 팬클럽들이 민주노총이 마음에 안 드는 얘기를 했다고 ‘귀족노조’라며 득달같이 달려들어 청산해야 할 적폐로 모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홍위병식 몰매로 통합을 방해하고 의사소통을 막는 것이야말로 적폐”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도 이날 중진의원 간담회에서 “소위 ‘문빠’라 부르는 온라인상 홍위병들이 민주노총을 귀족노조 또는 적폐로 규정하며 욕설과 비난을 쏟아내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한 언론사 간부는 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과 온라인상에서 설전을 벌였다 사과하기도 했다. 발단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발행된 시사주간지 ‘한겨레21’ 1162호의 표지 사진이었다. 한겨레21은 ‘새 시대의 문’이라는 제목과 함께 굳은 표정을 한 문 대통령의 옆얼굴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이게 찍은 사진을 내보냈다. 한 지지자는 “문 대통령이 얼마나 권위주의적으로 보이길 원했으면 위로 올려다보는 구도로 찍은 사진을 썼나 싶다”고 비판했다. 다른 이는 “대선 전 다른 대선후보는 단독 표지 모델로 실었지만, 문 대통령은 단독으로 실은 적이 없었다”며 대선 전 표지 사진까지 문제 삼고 나섰다. 표지 사진 논란은 절독, 불매운동으로도 이어졌다. 논란이 확산되자 지난해 말까지 한겨레21 편집장을 지낸 안수찬 한겨레 미래라이프에디터는 5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가 살아낸 지난 시절을 온통 똥칠하겠다고 굳이 달려드니 어쩔 수 없이 대응해줄게. 덤벼라 문빠들’이라는 도발적인 글을 올렸다.



    ‘문팬’의 뿌리는 노사모

    안 에디터의 해당 글에는 1만 개 넘는 욕설과 조롱의 댓글이 달렸다. 논란이 커지자 한겨레 측은 5월 16일 ‘독자와 주주, 시민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사과문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경위 파악 조사를 마친 뒤 안수찬 에디터에게 엄중히 경고했다’고 밝혔다. 안 에디터 역시 페이스북에 사과 글을 올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계정을 폐쇄하고 페이스북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오마이뉴스 역시 일부 기사에서 문 대통령 부인의 호칭을 ‘김정숙 씨’라고 했다가 왜 ‘여사’라고 하지 않느냐는 집중 비난을 받았다. 오마이뉴스는 5월 16일 “2007년부터 내부 표기 방침을 정해 대통령 부인을 ‘씨’로 표기하는 원칙을 지켜왔다”고 해명했다.
     
    5월 12일 MBN 메인뉴스에서 문 대통령이 커피를 마시는 사진에 대한 누리꾼들 반응을 전한 김주하 앵커의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이날 김 앵커는 ‘커피 대신 국산차를 사랑했으면 하는 바람’과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누리꾼의 반응을 전하며 “국민이 대통령을 사랑하면 할수록 기대하고 바라는 건 더 많아지나 봅니다”라고 클로징 멘트를 했다. 하지만 해당 발언이 나온 이후 문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은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탓한다”며 김 앵커를 공격했다. 그러면서 김 앵커가 그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한 일상 가운데 일회용컵이나 일회용품을 사용한 사진을 대거 올렸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 확산을 위해 열성적으로 활동하던 지지자들이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문재인 지킴이’를 자처하면서 사소한 비판이라도 차단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열성 지지자들은 일반적으로 공식팬까페 이름을 딴 ‘문팬’으로 통한다. 하지만 비판하는 쪽에선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를 ‘노빠’로 불렀던 것처럼 ‘문빠’라고 비하해 부른다.

    ‘문팬’의 뿌리는 2000년 결성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노사모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그해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여론조사, 12월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승리하는 데 큰 기여를 하면서 든든한 정치기반이 됐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노사모는 팬클럽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2007년 ‘참여정부를 바로 알리겠다’며 노무현 정부에 참여했던 주요 인사들이 중심이 돼 ‘참여정부 평가포럼’을 출범했다.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폐족’ 선언까지 했으나 이후 ‘사람 사는 세상’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노사모 회원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노사모는 다시 결집해 노무현재단 출범의 모태가 됐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 출범 과정에서 당시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중심의 100만 민란 등이 당에 합류하면서 일부 노사모 인사는 정치권에 진출했다.



    ‘양념’ 발언이 논란 키웠나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노사모는 ‘문재인’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한 문재인 서포터스, 이른바 ‘문팬’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문재인 변호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문사모)으로 출발한 ‘문팬’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안팎에 포진해 2015년 2월 전당대회 때 문재인 당대표 선출에 기여했고, 그해 12월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자 10만 온라인 당원 입당을 이끌어내는 등 문 대통령 당선에 앞장섰다. 

    노사모 초창기에 열성적인 활동으로 주목받던 ‘미키 루크’ 이상호 씨는 참여정부에서 집권여당 열린우리당 청년위원장을 역임했고, 2007년 대선 때는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를 만들어낸 ‘정통들’(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의 주역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선 문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상대인 안희정, 이재명 후보 측에서 문 후보의 열성 지지자들이 문자메시지 폭탄을 보내온 데 대해 문제제기를 하자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언급했다 경선 이후 사과한 바 있다. 정치권에선 이 같은 문 대통령의 발언이 지지자들의 행동을 더욱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 한 인사는 개인적 견해라며 “온라인에서 지지자들의 집단행동이 자꾸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면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문 대통령이나 민주당이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요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선거조직 국민참여운동본부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2000년 총선 이후 노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노사모’를 결성했을 때만 해도 순수 정치인 팬클럽의 성격이 강했다”며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현상이 강하게 나타났고, 이후 2012년 대선과 지난해 탄핵 국면, 그리고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것 같다”고 풀이했다. 그는 “상당수 지지자는 문 대통령에게 누가 될 수 있는 행동을 조심하고 있지만, 일부 지지자가 과도한 열정을 이기지 못해 ‘자기가 옳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야권 한 인사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응원하는 수준을 벗어나 사소한 문제를 지적했다거나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판하고 공격한다면 온라인 완장 부대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며 “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로 집단행동에 나서면 비판이 설 자리가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열성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요청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자칫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충성도 높은 자발적 열성 지지자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자제해주길 바랄 뿐 오히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또 다른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조심스러워했다.

    또 다른 여권 인사는 “문팬=문빠=홍위병이란 도식을 만들어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국민이 사안에 따라 자신의 호불호를 댓글로 표현한 것일 뿐, 특정한 목적을 갖고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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