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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가운 입은 노예

잇따른 병원 내 폭행·성추행, 도대체 왜?

제왕적 교수, 과중한 업무, 폭력 대물림, 솜방망이 처벌… “이제 의사들이 스스로 환부 도려낼 때”

잇따른 병원 내 폭행·성추행, 도대체 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신입 의사들. 선서 내용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형제처럼 생각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뉴시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신입 의사들. 선서 내용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형제처럼 생각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뉴시스]

최근 언론에 대학병원 교수들이 제자와 후배 의사를 폭행·성추행한 사건이 연일 보도되면서 사회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사람을 살려야 하는’ 의사가 제자와 후배 의사들을 ‘다치게 한’ 불미스러운 행태에 국민은 공분했다. 

3월 한양대병원 전공의는 교수 폭력을 참다 못해 근무지를 이탈했고, 전북대병원 전공의는 선배 전공의들로부터 폭언·폭행을 당한 사실을 언론에 알려 파문이 일었다. 부산대병원 한 교수는 3년간 수술실 등에서 전공의 11명을 수술도구나 주먹, 발 등으로 수십 차례 폭행한 혐의로 최근 경찰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공의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교수들은 윤리위원회에 회부되는 등 대학병원 전공의·수련의를 상대로 한 폭행 및 성추행 문제가 최근 잇따라 터졌다. 지난해 12월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이 시행됐고, 올해 8월부터 ‘진료실 폭행 신고센터’가 운영 중이지만 악습 관행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는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미래를 잃을 수 있다’는 공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3~4월 실시한 ‘2017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2만9545명 대상)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8.2%가 폭언을 경험했고, 폭행과 성폭력을 경험한 경우도 각각 8.2%, 8.0%에 달했다. 폭언 가해자가 의사인 경우는 30.9%였다. 

폭언·폭행·성폭력을 당했을 때는 ‘참고 넘긴다’는 응답이 많았다. 폭언에 대해선 84.2%가, 폭행은 68.2%, 성폭력은 76.9%가 ‘참고 넘긴다’고 응답했다. 노동조합이나 고충처리위원회 등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는 응답은 폭언 1.5%, 폭행 4.4%, 성폭력 3.3%로 미미했다. 

‘주간동아’가 10월 30일~11월 1일 만난 10명의 대학교수, 전공의, 전임의는 환자 생명을 다루는 병원 특성상 항상 긴장된 분위기에서 일해야 하고, 교수 중심의 상명하복 및 수직적 조직문화가 폭행·성추행 사건을 부추긴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한 대학병원 전공의 A씨는 다음과 같이 하소연했다. 

“일반적으로 외과계열 학과, 그리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더라도 (시장 경쟁이 치열해) 개업이 어려운 과, 정원이 많은 과에 폭력과 ‘갑(甲)질 문화’가 만연해 있다. 취업이 어려운 과일수록 교수나 선배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해 지도교수는 ‘생사여탈권’을 쥐게 된다. 교수에게 밉보이면 수술이나 시술에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나쁜 소문이 돌면 좋은 병원에 취업하기도 어렵다. 전공의 시절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는 이유는 미래를 잃을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학회 세미나에서 다른 대학 교수들을 만나보면 내 평판이 어떻게 돌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지원자가 적으면 전공의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전공의가 ‘중도 포기’를 선언하면 인력 공백이 크고 새 전공의를 받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한 대학병원의 B교수는 “의료계 내 폭행·성추행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용인된 문화였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병원 내 폭행은 대체로 수술하는 외과에서 주로 발생한다. 내과는 환자와 문진(問診)하면서 약물치료를 주로 하지만, 외과는 곧바로 다리를 절단하거나 가슴을 여는 수술을 해야 하니 정형외과, 흉부외과 의사는 상대적으로 예민하다. 응급수술을 할 때는 ‘테이블 데스’(수술대 위에서 죽음)를 겪을 수 있어 초긴장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수술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있거나, 수술 부위를 잘못 판단해 환자가 침대에 잘못된 방향으로 누워 있으면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도 (전공의를 때리려는) 시늉을 하며 손을 올린 적이 있다. 사소한 실수에도 예민해져 행동(폭행)이 나오게 된다. 물론 폭력은 용납될 수 없지만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 본 것이다. 나도 맞으면서 배웠지만, 이젠 용납받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여자 제자들과 회식자리도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관행도 용납받지 못하는 시대”

수술이 많은 외과 병동에서 전공의 폭행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뉴스1]

수술이 많은 외과 병동에서 전공의 폭행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뉴스1]

부산에서 정형외과 개원의로 활동하는 40대 중반의 C원장은 ‘폭력의 대물림’을 병원 내 폭력 원인으로 꼽았다. 

“나도 레지던트(전공의) 1년 차 때 ‘방망이찜질’을 당했다. 수술방을 나온 교수가 한마디 하면 선배는 어김없이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당시 교수와 선배들이 주문한 수술 준비와 환자 상태 확인은 물론, 행정 일도 도맡아 하느라 잠을 거의 못 잤다. 병원은 경영상 암묵적으로 수술을 권하는 분위기였고, 장기 재원(在院) 환자를 내보내는 아이디어를 내라고도 했다.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어쩔 땐 교수나 선배 의사가 지시한 걸 놓치는 일도 생기는데, 그때 선배는 ‘너의 실수로 환자 생명이 잘못될 수 있다’고 외치며 어김없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런데 내가 선배 전공의가 되니 내 손에도 야구방망이가 쥐어져 있더라. 맞으며 자란 아이가 어른이 돼 자녀를 때리는 것처럼, 폭력도 대물림되는 것 같다. 요즘은 그나마 많이 줄었다고 하더라.” 

C원장의 말처럼 과거와 달리 폭력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병원 내부 조직문화가 많이 바뀌었고, 전공의에 대한 처우 개선과 폭력을 막으려는 의료계 내부의 자정 움직임도 이어져왔다. 그러나 의료계에 폭행·성추행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은 사건이 알려졌을 때 엄밀한 조사와 징계가 제대도 이뤄지지 않은 탓도 크다. 수직적 조직문화로 ‘쉬쉬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가해자를 감싸는 관행은 여전하다. 

안치현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은 “병원에서 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를 보호해줄 제도가 전혀 없다. 적어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하는 규정은 있어야 하는데 ‘전공의법’에도 해당 규정이 없다. 결국 피해자는 폭로 후 안전을 보호받지 못하니 입을 다물게 되고, 부당한 대우는 계속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당 최도자 의원은 6월 ‘전공의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전공의가 부득이한 이유로 수련 병원을 옮겨야 할 때 변경 여부를 보건복지부가 심사하도록 한 것. 현행법상 전공의가 폭행을 당해 수련 병원을 변경하려면 해당 병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수련 병원을 옮기는 사유에도 ‘폭행’ 항목은 없고 ‘그 밖의 사유’만 있을 뿐이다. 폭행을 이유로 공개적으로 수련 병원을 옮긴 사례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현재 최 의원의 개정안은 대한병원협회 등 병원 측 반발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병원 측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상위 대학병원에만 전공의가 몰려 지방 의료인력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반대한다. 대전협 측은 “말 그대로 부득이한 사정이 생겼을 때만 수련 병원을 옮기는 것이다. 아무 문제없는데 전공의가 원한다고 해서 수련 병원을 옮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다시 보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전공의법 개정안을 발의한 국민의당 최도자 의원.[뉴스1]

전공의법 개정안을 발의한 국민의당 최도자 의원.[뉴스1]

병원 안에서 폭행을 휘둘러도 처벌 수위가 낮아 같은 사례가 계속 발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 소재 대학병원의 전공의 D씨는 “교수가 전공의를 폭행해도 처벌은 대부분 정직 3개월이다. 교수가 금세 다시 돌아오니 보복이 무서워서라도 폭력에 항의하는 전공의는 드물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2010~2016년 6년간 교수가 전공의를 폭행해 보도된 사건은 총 6건. 6건 모두 학교 측이 교수에 가한 처벌은 정직 3개월이었다. 

최근 전공의 11명을 피멍이 들 때까지 상습 폭행한 부산대 의대 S교수가 받은 처벌도 정직 3개월이었다. 국내 주요 대학병원 징계 기준에 따르면 정직은 최고 3개월까지 가능하다. 정직 처분이 종료된 날부터 18개월간 승진과 승급이 불가능해 ‘3개월 정직’도 약한 징계가 아니라는 것이 대학병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아무리 심하게 학생을 폭행해도 교수나 선배 전공의에게 강등, 해임, 파면 등의 징계를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는 이유는 명문화된 규정이 없기 때문. 대전협 조사에 따르면 현재 병원 대부분에는 교수가 수련의를 폭행하거나 성희롱 혹은 추행했을 때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다. 따라서 전공의들은 정부가 나서서 처벌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공의법’ 제9조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에서 수련 규칙 표준안을 만들어 각 병원에 제공하게 돼 있다. 보건복지부 수련 규칙 표준안에 폭언이나 폭력, 성희롱 관련 처벌 규정을 추가하자는 주장이다. 

결국 대다수 의료계 관계자는 폭력 예방 교육과 상호존중 프로그램 등을 활성화해 폐쇄적인 병원 조직문화를 바꾸고, 사건이 발생하면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재발을 방지하며, 피해자 보호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유명 대학병원의 원로 교수는 “대학병원장과 학과 파트장 등 이른바 ‘힘 있는’ 교수들이 나서 정화운동을 펼치면 그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병원 내 불미스러운 일이 계속 보도돼 참담하다. 그렇다고 모든 대학병원 교수가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사회 수준이 높아진 만큼 이번 사태를 의료계가 반성하고 자정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대학병원의 고위직 인사나 명의로 알려진 의사들이 ‘스마일운동’ 같은 걸 해보는 건 어떨까. 교수 중에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분이 종종 있는데, ‘스마일 브로치’를 달고 먼저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병원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의사들이 의대를 졸업하면서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나의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하겠노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 선서만 실천해도 이런 일은 없을 거다.” 

결국 병원 구성원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변화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제 병원에 자생하는 환부에 의사들이 메스를 들이대야 할 때다.




입력 2017-11-07 15:59:00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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