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7

2017.05.10

안보| Global Asia 주간동아 특약

한국, 실용주의 노선이 답이다

보수·진보 어느 쪽이 집권하든 북한·중국 협력대상으로 삼게 될 것

  • 배종윤·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입력2017-05-08 11: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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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외교가 총체적 난국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한중 갈등이 고조되고,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전통적 우방국인 미국, 일본과 관계 또한 삐걱대고 있다.
    • 영문계간지 ‘글로벌아시아’ 최신호에는 위기에 처한 한미일 3각 관계에 관한 3국 석학의 의견이 실렸다. 이 기획 특집을 번역, 소개한다. 필자의 의견은 ‘주간동아’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 주>
    1948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핵심 이익은 국가 안보와 생존이다. 한반도가 분단되고 북한과 대립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은 한국 국가 안보의 중요한 축이었다. 한국 안보 문제의 근간에는 역사와 지정학적 환경에 대한 인식이 자리한다. 덩치가 작은 한국의 운명은 중국, 일본 등 큰 나라에 의해 결정돼왔다.

    이들과 대립하지 않고 대국 간 다툼에서 살아남는 것이 한국 안보 문제의 핵심이었다. 그렇다 보니 안보 위협에 대한 한국의 인식은 미국을 비롯한 다른 강대국과 같을 수 없다. 중국의 부상,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한미일 협력에 대한 한국의 대응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에는 중국에 대한 다양한 정치적 관점이 존재한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것이 익숙한 보수층은 북한과 중국을 믿지 않으며, 미국과 일본이 그러하듯 이들을 위협으로 간주한다. 북한에 대항하려면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하고, 중국에 대응하는 데도 한미일 안보협력이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이를 위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



    보수? 진보? 실용?

    하지만 진보층의 의견은 다르다. 과거 냉전기 사고방식에서 탈피한 이들은 북한과 중국도 실질적인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할지라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북한을 파트너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북한 문제에서 중국과 전략적 협력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긴다.



    이를 통해 미국과 일본이 추구하는 전략적 불신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역내 평화와 공동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진보 측은 중국을 배제한 한미일 안보협력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강대국 간 세력 다툼을 조장하고 진영 대립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밖에 제3의 그룹도 있다. 외교적 실리를 추구하는 이들로, 한국의 전략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이들은 한미일 안보협력에 신중하게 대응하는 한편, 북한 문제와 중국 위협 문제를 분리해 처리하려 한다. 이들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3자, 더 나아가
    4자 안보협력 구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을 배제한 3자 협력에는 신중하게 접근하는 태도를 보인다. 중국의 부상이 경제 측면이나 북한을 고려한 안보 강화 측면에서 한국에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내에서 보수층과 진보층이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대립하지만 한국 정부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있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변국의 전폭적인 지지와 협력이 필요한 동시에 주변 강대국 간 파워 게임에 휘말려서도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외교정책에서 실용주의의 전략적 효용성을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드 배치 문제가 발생하기 전부터 한국의 외교정책은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미국과 일본은 전부터 한국과 3자 안보협력, 더 나아가 3국 동맹을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하지만 북한뿐 아니라 중국까지 적으로 겨냥하는 3국 동맹은 한국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국은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부상이 가져다줄 전략적 기회 요소를 분명히 구분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보수적 관점에서 군사 안보만 따져봤을 때 중국과 북한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려면 한미일 군사동맹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냉전기를 떠올리게 하는 대립 국면을 만드는 것은 한국의 운신 폭을 좁힐 수 있다. 나아가 대륙과 해양대국 간 충돌로 한국이 피해자로 전락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한미일 3국 동맹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문제는 한국 내 반일감정이다. 19세기 일본의 조선 침탈은 동맹이라는 단어에서 시작됐다. 이 때문에 한국인에게 일본과 협력은 몰라도 동맹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지난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당시 상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때 많은 한국인은 일본과 협정 체결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일본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우려했다.

    한국은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관점도 미·일과 다르다. 한국에는 국가 중심적 관점과 민족 중심적 관점이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이나 일본 등 외부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국가지만 한국에게는 적일 뿐 아니라 인도적 지원 대상이며, 화해와 협력의 대상이기도 하다. 만약 한국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고 통일할 수 있는 방안을 갖게 된다면 한국은 정책적 유연성이라는 이유를 들어 국가 중심적 관점에서 민족 중심적 관점으로 과감하게 정책을 전환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전환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한미일 3국 협력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실용적 진보, 실용적 보수

    한국 정부의 안보 문제에 대한 외교적 대응은 이른바 실용적 진보, 실용적 보수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실용적 진보주의를 잘 설명해주는 것은 1999년 4월부터 2003년 1월까지 이어진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그룹’이다. 당시 미·일은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과 무책임한 행동을 징벌하고자 했다.

    하지만 한국은 동의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접근법은 안보 긴장을 높이고 북한의 추가 도발을 야기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2003년 1월 11일 북한이 공식적으로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한 직후 한국은 제재에서 대화 모드로 전환했고, 이것이 6자회담으로 이어졌다.

    북한 문제에 대한 한미일 3국 협력 체제에서 한국의 태도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늘 미·일과 같은 의견을 가질 수는 없다. 한국 처지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미사일 개발 중단은 남북 평화 공존과 통일을 이루기 위한 실용적 정책 노선의 일부이지, 그 자체로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

    이러한 한국의 특징은 사드 배치를 둘러싼 문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3년 2월 취임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국 지도부와 수차례 정상회담을 했고, 중국의 전승 7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했다. 박 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를 위해 중국과 전략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해 1월과 9월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막지 못하자 중국 측의 강력한 반발에도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북한 문제에서 중국의 전략적 효용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5월 9일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한미일 3국 협력 문제는 보수와 진보 진영에서 다시 이슈로 떠오를 테다. 하지만 북한 및 중국 문제에서 한국의 실용주의적 외교 접근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만약 3국의 안보협력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겨냥한다면 한국은 침묵을 지킬 공산이 크다.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새로 출범하는 한국 정부는 북한 문제에서 중국과 전략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좀 더 강력한 대북제재를 강조하는 보수정권도 제재의 전략적 효과를 키우려면 중국의 동참을 끌어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실용주의적 외교를 반영하는 다른 형태의 협력구조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한중일 3국 협력이 그중 하나다. 아직까지 완전한 신뢰를 쌓지는 못했지만, 세 나라는 이미 서울에 3국 협력 사무국을 설치했다. 한중일 3국 협력과 관련한 한국의 개방적 자세가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3국 협력에 대한 한국의 실용주의적 입장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 아래 아시아 지역의 주요 현안에 대한 각국 전문가와 정책 결정자들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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