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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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박근혜의 착각

새누리, 친박당과 대박당 사이

분당·해체 수순 밟으면 위기…혁신 계기 삼으면 ‘위험한’ 기회

  •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6-11-04 17: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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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게이트로 요동치는 지금, 새누리당 앞에는 어떤 선택지가 놓여 있을까. 크게 네 가지가 아닐까 한다. △친박당 △탈박당 △쪽박당 △대박당의 길이다. 친박당은 친박(친박근혜)계가 주도하는 정당으로 계속 나아가는 길이다. 탈박당은 친박당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길이다. 쪽박당은 분당으로 가면서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는 길이다. 대박당은 오히려 보수 정계개편을 주도하면서 중도는 물론, 진보로까지 세력을 확장하는 길이다.



    친박당

    최순실 방탄 국정감사에 앞장섰던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뜬금없는 단식농성까지 감행했다. 최순실 관련 의혹이 불거진 초기 박근혜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행한 일이다. 4월 총선에서 진박(진짜 박근혜계)의 공천 비난 여론에도 완벽하게 친박당으로 변신했고, 이후 전당대회에서 친박 지도부까지 구성한 ‘도로친박당’다운 행보였다. 일종의 보은 행보다.

    이런 새누리당 내에서 최근 자성론이 일고 있다. 그런데 묘하다. 이 또한 친박계 지도부가 앞장서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10월 25일 대국민사과에서 최순실 씨 관련 설을 시인한 직후였다. 새누리당은 그날 ‘집권여당으로서 작금의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깊은 사과를 드린다’는 논평을 내놨다. 하지만 정작 국정감사 초반 최순실 증인 채택에 반대했던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11월 2일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 이르러서야 정진석 원내대표가 “지금 와서 보면 그렇게 한 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는 발언을 내놨다. 그러면서 그것을 당론으로 정한 바 없다며, 은근히 의원 개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사과 아닌 사과 같은’ 사과를 내놓은 것이다.

    사실 최순실 증인 채택 거부에는 비주류도 힘을 보탰다. 그러나 비주류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반면 친박 지도부 사퇴 주장에 열을 올린다. 심지어 김무성 전 대표, 남경필 경기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 새누리당 내 유력 대권주자까지 나서 지도부 사퇴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이정현 대표는 ‘부족하지만 도와달라’며 버티는 중이다. 정 원내대표는 아예 들은 바 없다면서 무시하고 있다. 친박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은 비주류에게 ‘전쟁하자’며 한술 더 뜨고 나섰다. 버티기도 이 정도면 거의 ‘최순실급’이다.



    이 대표와 정 원내대표가 이처럼 버티는 까닭은 비주류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다. 잠시 시끄럽다 결국 조용해질 것이란 계산이다. 이들의 버티기에는 박 대통령의 의중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비주류가 주저앉는다면 새누리당은 앞으로도 계속 친박당으로 남을 것이다.



    탈박당

    비주류는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비대위를 중심으로 재창당 수준의 혁신을 하자는 것이다. 솔직히 총선이 한참 뒤에 있어 공천을 통한 인적 쇄신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재창당 주장이 다소 공허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속락하는 국면에서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차원에서 새누리당이라는 당명을 버리는 정도의 극적인 선택도 고려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의미, 그러니까 간판을 갈아보자는 의미에서 재창당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라면 재창당은 점차 불가피한 선택으로 다가올 것이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비대위원장 재임 시절 작품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를 최순실 씨가 감수한 것 아니냐는 연상의 결과다.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 특히 보수 지지세력 내에서 환멸감이 높아지는 와중에 새누리당이라는 당명조차 외면당하는 처지라면 간판을 갈아야 할 동기는 더 명확해진다.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비주류를 중심으로 비대위를 꾸리면 이 정도 작업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성형이 어려운 상황에서 필러와 보톡스 정도로 때우는 격이다.

    이런 속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한다면 자발적 투항자도 늘어날 것이다. 친박계에서 이탈자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탈 방식은 비주류 대권주자 캠프에 합류하는 방식이 될 개연성이 높다. 자연스럽게 친김무성계가 되거나 친유승민계가 되는 방식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2017년 대통령선거(대선)에 임박한 시점에 친박계는 자동 소멸될지도 모른다. 환골탈태, 완벽한 탈박당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흘러가면 내년 대선은 비주류 중심으로 치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더 나아가 분위기를 반전하는 데 성공해 정권 재창출까지 이룬다면, 그것도 비주류 후보를 당선케 하는 데 성공한다면 비주류는 주류로 올라설 것이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2020년 총선에서는 잔여 친박계를 정리하는 인적 쇄신까지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간판뿐 아니라 메뉴까지 전면 개편한, 진정한 재창당이 완성되는 셈이다.

    그러나 친박계의 흔들기에 비대위가 버티지 못하고 중도에 파산한다면 어쩔 수 없는 당내 역학구도에 따라 친박계 후보가 경선을 통과하고, 그가 본선에서도 승리한다면 비주류는 오히려 2020년 총선에서 정리해고 대상으로 몰릴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폐족으로 몰린 친박계가 오늘날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을 장악하고 있는 친노(친노무현)계처럼 부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재창당이 물 건너가는 것이자,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받는 격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재창당의 길에는 여전히 숨겨진 돌부리가 많다.



    쪽박당

    친박 지도부 사퇴를 전제로 한 비대위 구성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비주류로서는 탈당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새누리당 내 문화를 고려할 때, 또한 보수 정당사에서 탈당 이후 신당 창당의 성공 사례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최우선 고려 대상은 아니다. 반면 친박계 패권 역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다 보니 이번에는 예외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다. 친박계가 ‘옥쇄’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박 대통령의 성격을 반영한 선택이다. 박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새누리당에 대한 영향력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최순실 게이트로 더욱더 그래야 할 필요성도 높아졌다. 여기서 밀리면 퇴임 후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오는 것은 물론, 형사처벌까지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해진 것이다. 그렇기에 야권과 협치 정신을 살려가며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스스로 죄가 위중하다는 판단이 든다면, 그래서 퇴임 후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든다면 배수진을 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위기 때마다 보인 선택의 패턴을 보더라도 우회보다 정면 돌파를 선호한다. 박 대통령이 배수진을 치고 나오면 친박계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박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할지, 아니면 혼자 살 길을 찾아나설지. 일부는 배신하고 떠날 것이다. 어쩌면 꽤 많은 수가 떠날 수도 있다. 그 결과 20~30명이 남았다고 전제할 때 그들이 백기투항을 할까. 어쩌면 그들은 스스로 새누리당을 박차고 나가 ‘친박연대 시즌2’를 선보이려 들지 모른다. 비주류가 탈당하건, 주류 친박계가 탈당하건 새누리당은 그 순간 쪽박당이 되는 셈이다.



    대박당

    최순실 게이트의 충격파는 생각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로 그 누구보다 보수 지지세력의 시름이 깊어진 까닭이다. 진보 지지세력이 박 대통령 비판에 열을 올리는 사이 그들은 박 대통령으로 말미암아 무너진 자존심을 추스를 방법을 찾고자 골몰할 것이다. 보수발(發) 정계개편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미 제3지대가 형성된 상황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제3지대는 한층 더 넓어졌다. 전통적인 새누리당 지지세력, 특히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형성하던 이들은 결코 야권 지지로 돌아설 수 없다. 당분간 새누리당에 기대를 걸어보겠지만, 스스로 해결 방도를 찾지 못하면 그들은 새로운 틀 만들기에 나설 개연성이 높다.

    그 틀은 물론 신당이다. 새누리당이 쪽박당으로 나아간다면 그들은 속도를 낼 것이 분명하다. 그 상징적 인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내세울 수 있겠지만, 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을 앞세울 가능성도 있다. 새누리당 내 누군가, 예를 들어 유승민 전 원내대표나 남경필 지사일 수도 있다. 또는 전혀 새로운 참신한 보수성향의 인물일 수도 있다. 당장 내년 대선을 포기하더라도 그 후를 내다보고 큰 그림을 그리려는 움직임이 보수 지지세력 내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움직임에는 새로운 경제세력이 동참할 공산도 크다. 대기업 오너라도 3세와 4세는 과거 세대와 차이가 크다. 그들은 부모세대가 택했던 것 같은 정경유착, 즉 최순실 게이트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과는 다른 형태의 정경협력체제를 원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후원하더라도 좀 더 공개적인 방식으로 하길 원할 테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개념의 보수 정당이 만들어진다면 힘을 보탤 개연성이 높다.

    참으로 역설적 상황이지만, 이번 최순실 게이트는 보수 지지세력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겼다. 보수언론이 보도에 공을 들이는 것도 한 증거다. 흔히 진보 정치세력은 의식은 충만하나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는다. 반면 보수 정치세력은 실력은 충만한 데 비해 의식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듣는다. 따라서 이제는 실력이 충만하고 개념도 탑재한 새로운 보수 정치세력이 대두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을 중심으로 새누리당을 넘어선 ‘보수너머’ 신당이 만들어진다면 대한민국 정치지형도 차원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친박 넘어 대박당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보수 지지세력은 바로 이 대박당의 출현을 가장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공력을 필요로 하는 것도 사실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동기는 만들어졌지만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다음으로 바람직한 대안은 탈박당이다. 현 친박계 지도부가 물러나고 외부 유력 인사 또는 비주류 중심으로 비대위를 구성한 다음, 당명 개정을 비롯한 재창당 작업을 하는 것이다. 경선도 중립적으로 관리해 혁신적인 인물이 뛰어들어 대선 흥행몰이를 해나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현실은 친박당이나 쪽박당으로 갈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쉽게 물러날 태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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