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1

2016.11.02

커버스토리 | 대통령의 그림자 권력

최순실 쓰나미, 대선판도 흔든다

청와대 방패 여당도 등 돌려…박 대통령 지지기반 붕괴, 이탈층 잡는 쪽이 대선 승리

  • 유창선 정치평론가 yucs1@hanmail.net

    입력2016-10-28 16: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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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최씨가 버리고 간 개인용 컴퓨터는 판도라의 상자였다. 거기에 담긴 파일에는 독일 드레스덴 연설을 비롯한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은 물론, 대통령과 주요 인사의 면담 내용, 남북 비밀접촉 사항, 대외비 외교문서 등 개인에게 넘어가서는 안 될 내용들이 망라돼 있었다. 검찰이 한동안 눈치 보며 소극적으로 수사해왔음에도 각 언론이 그 기능을 대신해 매일같이 의혹을 쏟아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우병우 의혹에 따른 수세 국면을 반전시키려고 꺼낸 개헌 제안이라는 회심의 카드조차 최순실 앞에서는 일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도대체 어디까지 갈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최순실 게이트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쓰나미가 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특별한 파괴력

    사실 정권마다 측근 비리가 불거진 것이 한두 번은 아니다. 그때마다 문제를 일으킨 측근은 사법처리돼 감옥에 갔고,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과하고 레임덕이 본격화되곤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사태는 일정 선에서 매듭지어졌다. 하지만 이번 최순실 파문은 끝을 알기 어렵다. 그 파괴력이 유난히도 큰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먼저 최순실은 국민에게 심한 모욕감을 안긴 인물이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에서 측근 비리는 대통령의 아들이나 형제에 의해 이뤄졌다. 비난하면서도 그런가 보다 하는 정서도 있었다. 하지만 최순실은 다르다. 박 대통령과 40년 인연이라는 것 말고는 도대체 누구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국민이 아는 최순실은 자기 딸의 출석을 관리하는 교사와 교수에게 쳐들어가 모욕을 주는 무례한 사람, 대통령을 배경 삼아 이곳저곳에서 호가호위하는 나쁜 사람일 뿐이다.

    그렇게 기본조차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과 ‘절친’이라는 이유로 연설문을 미리 받아 첨삭하고, 청와대와 정부기관 인사에 개입하며, 사람들을 모아 국정 전반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는 그래도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고 믿는 국민으로 하여금 ‘내가 사는 나라가 과연 어떤 나라인가’ 묻게 하는 광경이다. 그런 점에서 최순실 파문은 국민 정서를 대단히 민감하게 자극하고 있다.



    또 이 사건은 대통령 자신이 주인공이기에 이전 다른 측근 비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최씨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주도하는 과정에 청와대와 정부가 개입한 정황이 수없이 드러났고, 결국 그 뒤에 박 대통령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냐는 판단은 상식적이다. 특히 각종 자료가 사전에 최씨에게 건네진 것은 박 대통령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할 장본인은 대통령 자신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라는 지적이 말해주듯이, 이 파문은 박 대통령의 기반을 사실상 붕괴시키는 사건이 되고 있다.

    최씨의 개인용 컴퓨터에서 발견된 파일이 공개된 것은 박 대통령에게는 회복 불능의 치명타다. 그동안 청와대는 최순실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터무니없다며 일축했다. 이원종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은 연설문이 최씨에게 사전 유출됐다는 의혹에 대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펄쩍 뛰었다. 박 대통령 자신도 비선(秘線) 실세 의혹에 대해 “사회 혼란을 가중하는 근거 없는 폭로성 발언”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그러한 대답들이 거짓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남에 따라 박근혜 청와대의 도덕성은 송두리째 무너지게 됐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 법과 제도를 무시한 채 일개 사인(私人)에게 기밀자료들을 넘겨주고 일종의 첨삭지도까지 받은 사실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장면이 되고 말았다.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대해 어떠한 마인드를 갖고 있었는지, 혹 권력을 사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국정운영을 너무도 쉽고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닌지 국민으로서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은 임기 1년 3개월, 식물 대통령 되나

    일국의 대통령이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그것도 지속적으로 해온 것이 확인된 상태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이 유지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순실 같은 사람을 국정 파트너로 삼았던 대통령이 이제 어디 가서 대한민국 미래에 대해 말하고, 위기 극복을 당당히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런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 하에서 공무원들이 과연 믿음을 갖고 따르겠는가. 박 대통령은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에 빠졌다. 남은 임기 1년 3개월 동안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이전처럼 국정 쇄신 요구를 거부하고 이런 상황에서도 마이웨이를 고집한다면 수렁의 가장 밑바닥까지 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은 자업자득의 결과다. 대통령 자신이 상식에 맞는 국정운영을 했다면, 주변에 직언할 수 있는 참모들을 뒀다면 이런 해괴한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대통령이 하는 일이 아무리 이상해도 감히 다른 소리를 내지 못하는 ‘예스맨’만 가득했다. 지금을 왕조시대로 착각한 듯한 대통령, 그리고 제왕의 명을 거역할 줄 모르는 신하들이 빚은 수치스러운 비극이다.

    이제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고 온갖 재앙이 세상으로 나와버렸다. 의혹의 진상들을 덮는 것은 더는 불가능해 보인다. 더구나 최순실 게이트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나오고 정권 추락이 확연해지자 곳곳에서 입을 여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지난 4년의 비리를 고발하는 증언은 늘어날 테고, 곳곳에서 쌓여왔던 문제들이 세상에 공개될 것이다. 둑이 터진 것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이전처럼 진상 규명을 막으려고 비호하다가는 그 성난 물살에 함께 휩쓸려갈지도 모른다. 그렇게도 박 대통령과 최순실을 막아주던 새누리당이 최순실 특검 실시 당론을 결정한 것도, 그러지 않고서는 같이 죽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여당도 청와대를 막아주던 방패를 던져버리고 진상 규명의 흐름에 동참할 수밖에 없으며, 박 대통령 자신도 이를 거부할 수 없게 됐다. 물론 특검 추진 과정에서 진통은 따를 것이다. 야당은 대통령이 특별검사를 최종 임명하는 상설특검이 아닌 별도 특검을 요구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상설특검을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통령을 수사 대상에 포함해야 하는가를 두고도 갈등을 빚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 사건은 현 정부 임기 내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 해도, 박 대통령 퇴임 후 재수사와 퇴임 대통령에 대한 기소도 가능하기에 결국 진상 규명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문제가 세상에 드러날지,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법처리될지 지금으로서는 짐작조차 어렵다.



    대선판까지 뒤흔들 최순실 게이트

    다만 핵심 인물인 최씨와 차은택 씨 등이 해외에서 잠적한 상태라 이들이 귀국하지 않으면 특검도 진척되기 어렵다. 이 점을 의식한 듯 야당들은 최씨를 책임지고 귀국시키라며 박 대통령을 압박했고, 이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도 “반드시 국내로 송환해 국민이 보는 앞에서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겠다”고 공언했다. 물론 최씨가 귀국해 어떤 얘기를 하느냐에 따라 정권에게는 폭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최씨의 잠적이 장기화되는 것은 박 대통령에게도 부담이다. 일부러 도피시킨 것 아니냐는 시선을 계속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씨의 귀국과 조사 없이는 사태 해결이 불가능한 만큼 정부로서도 어떻게든 최씨를 귀국시킬 것으로 보인다. 특검이 진행되면 내년 대통령선거(대선) 정국을 코앞에 둔 시점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정부만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 내년 대선 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크다. 이미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집권 이후 최저치로 추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여권 세력에게 심각한 것은 그 바닥이 어디일지 아직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순실과 관계가 드러난 박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이야 당연하다 해도, 오직 청와대를 지키는 데만 매달렸던 새누리당도 치명상을 입었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새누리당으로는 내년 대선 못 치른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 최순실 파문이 여당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아마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자신이 이렇게 인기 없는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나서야 하나를 놓고 고민할 것이다. 새누리당, 그것도 친박(친박근혜)계 후보로 낙인찍히는 것을 피하고자 일단은 독자세력화하고 새누리당을 흡수해 신장개업형 정당의 후보로 나서는 방법도 있겠지만, 문제는 반 총장의 정치적 능력이 그만한 용량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어떻든 최순실 게이트는 새누리당이 마련해주는 꽃가마를 타려던 반 총장에게는 탄력을 떨어뜨리는 악재임에 분명하다.

    반 총장 지지율이 이전 같지 못할 때 그 이탈층이 어디로 갈 것인지도 내년 대선에서 중요한 변수다. 지난 4·13 총선 때처럼 새누리당 이탈층이 국민의당으로 향할 경우 대선정국은 3자 구도의 완전한 복원 속에서 전개될 개연성이 높다. 그때 정권 교체 여론이 우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두 야당의 경쟁이 다시 뜨거워질 것이다. 최순실은 새누리당을 끌어내리고, 그럴수록 집권하려는 두 야당의 경쟁은 달아오르고, 그 사이 3자 구도에서 최종 승부의 불확실성은 높아지는 복잡한 상황. 최순실은 이미 2017년 12월까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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