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4

2016.06.29

커버스토리 | 대학을 훔치다

학생부는 복불복, 수시는 깜깜이

교사가 좌지우지, 상위권 스펙 몰아주기…대학, 합격 기준 명확히 밝혀야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06-27 14: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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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일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난이도를 가늠할 수 있는 6월 전국연합학력평가(모의평가)가 시행됐다. 이번 모의평가는 고3 수험생은 물론, 재수생까지 참여해 수험생이 자기 위치를 전국 단위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또한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사이에서 대학 입학 전략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점이 되는 만큼 이때부터 본격적인 대입 준비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수시가 아니면 대학 가기 힘들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정시보다 수시, 그중에서도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주력하는 학생이 많아졌다. 실제로 2017학년도 입시에서는 전체 인원의 69.9%에 해당하는 35만5745명을 수시로 선발한다. 하지만 학종 비중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불신도 덩달아 높아지는 분위기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학생의 현재 실력이 아닌 미래 가능성을 보고 평가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학업성적’이 아닌 ‘학업역량’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제도이다 보니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것. 특히 봉사활동, 수상 경력 같은 비교과활동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되는 교사의 기록, 추천서, 자기소개서 등이 얼마나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 교사 재량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담임·과목 교사의 열정에 따라 학생 간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큰 상태다.



    중위권 학생도 아울러야

    현재 고3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학생 실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교사를 만나는지도 입시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학생에 대한 애정이 느껴질 정도로 정성껏 학생부를 기록해주는 교사가 있는 반면, 누가 봐도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의 없게 쓰는 교사도 분명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반고 2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 군은 “정규 수업은 어쩔 수 없지만 방과후수업은 학생부를 잘 써주는 교사를 찾아서 들으려 한다. 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교사가 학생부를 잘 써주는지 소문이 나 있다”고 했다.

    입시전문가들에 따르면 학생부 내용 가운데 영향력이 가장 큰 항목은 ‘과목별특기사항’이다. 김용근 ‘김용근 입시전략연구소’ 소장은 “서울대가 밝힌 서류 평가기준을 보면 ‘입학사정관은 학교생활기록부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의 기록을 통해 교실에서 어떤 수업이 이루어졌는지를 파악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특징적인 소양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요약해 기록해달라’고 돼 있다. 하지만 일부 교사는 학습역량이 뛰어나지 않은 학생에 대해서는 코멘트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한 경우라면 어떤 프로그램을 도입해 보충수업을 진행했고, 이후 학생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써주면 되지만 그것이 잘 이뤄지지 않다 보니 학부모들의 원성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위권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종 도입 이후 학교가 일부 최상위권 학생에게만 신경 쓴다’는 피해의식이 감지되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 소재 일반고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현재 많은 학교가 상위권 학생을 따로 모아 심화반·영재반 같은 우열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내대회 내지 체험활동에서도 상위권 학생에게 우선권을 주는 경향이 있다. 중위권 아이들 중에는 학종에 지원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경우가 꽤 많다”고 귀띔했다.

    학종이 중위권 학생을 홀대한다는 비판은 교사들 사이에서도 이미 일고 있다. 이성권 한국교육정책연대 대표(서울 대진고 교사)는 “학종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중위권 학생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상위권 학생과 비교할 때 교내활동 성취도나 참여도가 물론 다를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중위권 학생들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열정과 잠재력을 보일 수 있도록 ‘틀’을 만들어줘야 한다. 상위권 학생이 갈 수 있는 서울 소재 대학은 수시의 절반 가까이를 학종으로 뽑는 반면, 나머지 대학은 학종 자체가 없거나 선발 비중이 적어 중위권 학생은 학종에 지원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위권 학생도 학종에 지원할 수 있도록 정부 정책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중위권 대학이 학종을 시행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예산 부족으로, 학종을 시행하려면 입학사정관을 고용해야 하고, 그럼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4년부터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 방안에 따라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 사업’을 선정해 보조금을 지원하는데, 현재 학종을 위한 전임 입학사정관을 둔 100여 개 대학 가운데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으로 선정돼 입학사정관 인건비 등을 지원받는 대학은 60곳에 불과하다. 더욱이 올해 10억 원 이상 지원받는 8개 대학 가운데 5곳이 서울 지역 대학이라 정부 지원이 수도권 대학 위주로 몰리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사업 예산도 시행 첫해인 2014년 610억 원에서 2015년 500억 원, 올해 419억 원으로 줄었다. 이 대표는 “재정적인 이유 때문에 학종을 포기한 대학의 경우 할 일을 잃은 입학사정관들이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역량 있는 입학사정관 확보해야

    학종을 실시하는 대학이라도 역량 있는 입학사정관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면 제대로 된 정성평가가 이뤄지기 어렵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따르면 현재 각 대학에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전임 입학사정관은 740명가량으로, 대교협을 통해 120시간 교육을 받으면 입학사정관으로 근무할 수 있다. 대학 처지에선 입학사정관이 상시 필요인력이 아니다 보니 대부분 정규직보다 계약직으로 채용한다. 그마저도 어려운 경우에는 기존 교수진이 30시간 교육을 이수한 뒤 입학사정관으로 위촉되기도 하고, 교직원이 일정 교육을 받고 입학사정관 업무를 처리하기도 한다.

    학종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신뢰를 얻으려면 대학이 학생 역량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결국 6월 15일 전국대학교 입학관련처장협의회는 한양대 서울캠퍼스에서 ‘학생부종합전형 발전을 위한 고교-대학 연계 포럼’을 개최해 고교와 대학이 느끼는 괴리감을 해소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한 교사는 “제출 서류가 똑같아도 대학별로 합격·불합격 차이가 나고, 평가자의 주관적 요소가 강하다 보니 공정성과 신뢰성에 의문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는 곧 학생과 학부모가 느끼는 불안감이기도 하다. 올해 학종에 도전할 계획이라는 한 학생의 학부모는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학종으로 대학에 붙어놓고도 자신이 어떻게 합격했는지, 반대로 왜 떨어졌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 뭐가 중요하고, 뭐가 덜 중요한지를 알 수 없으니 ‘학종에 필요한 스펙이다’ 하면 무조건 채워놓고 보자는 식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서울 소재 대학의 입학사정관으로 참여했던 한 교사는 “정성평가라지만 결국 정해진 인원을 선발하려면 우선순위와 배점 비율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사례 위주로 뭉뚱그려 발표하는 건 의미가 없다. 어떤 경우에 점수를 많이 주고 적게 주는지 충분히 밝힐 수 있다. 자기주도성은 5점, 경험 다양성은 4점, 탐색과 확장이 부족했다면 마이너스 3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떤 부분에 점수를 높게 줄지는 대학별로 고민하면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진학교사와 진로교사 온도차 커

    대학의 ‘깜깜이’ 선발과정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여전히 고교등급제가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일고 있다. 한 입시 상담 전문가는 “각 대학도 정확히 ‘있다 없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고교등급제는 없을지 몰라도 해당 학생에게 부여되는 플러스알파는 어떤 형식으로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합격자들 가운데 같은 고교 출신의 입학 성적을 평균 내 등급을 매긴다든지, 방법은 다양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학종으로 학업 수준이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수업 내용이 지나치게 비교과활동으로 쏠릴 경우 상대적으로 수능 준비에 소홀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는 것. 이 같은 걱정은 진학을 담당하는 교사들 사이에서도 조심스럽게 일고 있다. 특히 학종은 재학생에게 유리한 제도인 만큼 부득이하게 재수를 하게 됐을 경우 입시 준비를 새로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상위권 학생이 많이 몰린 학교의 경우 학종과 적당히 거리 두기를 하기도 한다. 서울 대치동 한 고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는 “학종의 효용성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학교 특성상 수능을 중점적으로 준비하는 학생이 여전히 많다. 더욱이 수시에 지원하더라도 상위권 대학일수록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능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6월 모의평가가 어렵게 출제되면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수시 인원이 정시로 이월될 가능성도 점쳐지는 상황이다. 상당수 대학이 높은 수준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요구하고 있어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지원자가 속출할 수도 있는 것. 지난해에도 일부 대학은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데 따른 부족 인원을 정시로 이월해 선발했다.

    학종을 둘러싸고 여러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일선 교사들은 “공교육의 활성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반긴다. 특히 동아리 등 비교과활동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진로 담당 교사들 사이에서 학종의 긍정적 효과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과거 학교 밖에서 배움을 얻으려 하던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와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교사와 친밀감 쌓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종이 교육 패러다임을 바꾼 만큼 학교 현장도 달라져야 한다는 교사들의 자성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이성권 대표는 “학종이 입시를 위한 입시에 그치지 않으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럼에도 학종이 지닌 긍정적 효과는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국가와 교사, 학부모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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