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8

2016.05.18

커버스토리 | 헛물켜는 서울시 청년사업

서울시의 만사靑통?

설익은 정책도 ‘청년’이면 무사통과…‘역세권 2030청년주택’ 후폭풍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05-18 08: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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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세권 2030청년주택 권역별 설명회 연기 알림.’

    5월 3일 서울시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이러한 제목의 짤막한 공지가 떴다. 내용은 해당 사업이 ‘현재 입법예고(의견 청취) 등을 거쳐 조례 제정을 준비 중’이라는 것과 ‘조례 확정 후 설명회 개최 예정’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당초 4일부터 진행하기로 했던 설명회가 언제로, 왜 연기됐는지에 대한 구체적 안내는 없었다.

    ‘역세권 2030청년주택’ 사업은 4월 말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나서 설명회를 열고 “우리 세대를 지탱하는 기반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희망인 청년들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민관이 함께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강조한 프로젝트다. 현재 2·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묶인 역세권지역 토지 용적률을 준주거지역, 상업지역 등 수준으로 상향해 고밀도 개발을 허용한 뒤, 새로 건설된 공간 일부를 청년을 위한 임대주택으로 제공한다는 게 골자다.

    서울시는 이 사업의 성공을 위해 심의 및 허가 절차 간소화, 전담 부서 설치 등 각종 ‘당근’을 제시했다. 충정로역(서울지하철 2·5호선)과 봉화산역(6호선) 역세권을 시범사업지로 정하고 내년 말 입주를 목표로 각종 절차를 시작한다고도 밝혔다. 이번에 연기된 설명회는 이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리겠다는 취지로 5월 초부터 권역별(동남권, 서남권, 도심·서북권, 동북권)로 실시하려던 것이다.





    서울시의회 “절차 지켜라” 발끈

    그러나 서울시의 야심찬 계획은 발표와 동시에 제동이 걸렸다. 가장 발끈한 곳은 서울시의회(시의회)다. 전체 의원 106명 가운데 74명이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 소속인 시의회는 서울시의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을 문제 삼았다. 더민주당 소속 김미경 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장은 “서울시가 이 사업 추진의 전제조건으로 삼은 토지 용도 변경과 건축 규제 완화 등은 극히 예외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사안이다. 역세권 개발의 경우 민간사업자에게 과도한 특혜를 줄 여지가 있어 더욱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서울시는 이 사업이 조례 개정만으로 추진 가능하다고 밝히며 시의회와 충분한 협의 없이 진행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관 상임위원회에조차 제대로 내용을 설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이 참석하는 시민 대상 설명회를 열고, 추가 설명회 개최 계획도 발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4월 26일 설명회에서 박 시장은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나섰다. 원룸형(50㎡ 이하) 건물의 주차장 설치 기준을 가구당 0.3대로 낮추고 기계식 주차를 허용하겠다고 밝히는 등 규제 완화의 구체적 내용까지 제시했다. 이 자리에서 ‘역세권 2030청년주택’ 사업은 “역세권을 더 역동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청년난민을 해결할 꿩 먹고 알 먹는 사업”이라며 “서울시장을 믿고 개발하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시의회 측은 ‘입법과정에서 변경될 수 있는 계획안을 시장이 확정적인 양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가 일방적 홍보와 사업설명회를 지속할 경우 서울시의 말만 믿고 사업 시행을 준비하는 시민들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취지의 항의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설명회는 일정 공지도 없이 연기됐다.

    ‘역세권 2030청년주택’ 사업의 추진 절차뿐 아니라 내용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는 역세권지역의 규제를 풀어 고밀도 개발을 허용하는 대신, 민간사업자가 주거면적 100%에 임대주택을 짓도록 했다. 이 주택은 8년간 준공공임대주택으로 운영되며, 서울시는 이 가운데 10~25%만 공공임대주택으로 확보해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등에게 주변 시세의 60~80%에 제공할 계획이다. 민간이 직접 관리하는 나머지 임대주택 임대료는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공급량이 늘면 자연스레 임대료가 내려가지 않겠나”라는 의견이지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생각은 다르다. 이런 방식의 개발이 부동산 거품과 불로소득을 키워, 청년세대의 주거불평등을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실련이 성명을 통해 “역세권 용도 변경, 용적률 상향 등 (역세권 2030청년주택) 사업 추진을 위한 특혜 정책은 투기 세력과 건설업체를 위한 고가 뉴스테이 확대 정책에 불과하다. 청년층은 주거비를 부담할 수 없는, 고가의 월세주택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 이유가 여기 있다.

    최승섭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 부장은 “사실 이번 정책은 이름만 다르지 뉴스테이와 거의 동일하다”며 “특히 서울지하철 2개 노선이 지나는 교차 역세권 등에 청년주택을 공급하기 때문에 준공공임대주택의 경우 주변 주거지역은 물론, 서울 도심 뉴스테이보다 비싸게 공급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해당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 청년만 임대주택정책의 수혜자가 된다.



    민간사업자 배만 불리는 로또 되나

    이미 서울시와 SH공사가 진행하는 장기전세주택 사업에 대해서도 비슷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SH공사가 5월 16일부터 접수를 시작해 7월 29일 당첨자를 발표하는 장기전세주택 공급 물량에는 한강 인근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서울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반포’ 전용면적 59㎡의 전세금은 6억7600만 원, 잠원동 ‘래미안신반포팰리스’ 같은 전용면적의 전세금은 6억2480만 원이다. 주변 전세 시세의 80% 수준이라고 하지만, 해당 아파트에 지원하기 위한 자격 조건인 ‘3인 이하 가구 월소득 약 481만 원 이하, 5인 이상 가구 월소득 약 547만 원 이하’ 무주택 가구주가 감당하기에 적절한 금액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한 시민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정책인지 모르겠지만, 변변한 직장이 없는 ‘금수저 자녀용’ 정책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결국 역세권 2030청년주택 사업으로 이익을 보는 건 토지주와 부동산개발업자뿐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권순형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는 “서울시의 새로운 청년임대주택정책은 용적률 상향 등을 통해 토지 소유자에게 돌아가는 개발 이익을 확대하고, 이를 유인책 삼아 청년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을 촉진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계획이 현실에서는 그다지 유효하지 않은 방안”이라며 “용적률 상향 정책은 실시간으로 토지 가격 상승을 가져오고, 높은 가격으로 토지를 매입한 개발업자는 더 높은 분양가와 더 높은 임대료를 책정해 사업 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권 이사에 따르면 개발업자는 높아진 토지 가격을 분양 가격과 임대료에 반영해 충분한 사업성이 검증됐을 때 사업에 착수한다. 그런데 서울시는 개발사업 촉진을 위해 사업 시행자에게 취득세와 재산세 감면 등 추가 지원도 약속한 상태다. 이에 대해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역세권 용지는 도심에서도 특히 가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을 청년을 위한 주택 용지로만 쓰고 사업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게 적당한지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미경 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장도 “주거난을 겪는 청년에게 배려가 필요하다는 서울시 측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노인 등 다른 사회적 약자가 같은 배려를 바랄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관련 업계는 이미 서울시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시범사업지로 정해진 충정로역 인근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경우 2008년 장기전세주택인 ‘역세권 시프트’를 추진하며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높여주겠다고 했다. 이번에 박 시장은 이를 최고 680%까지 상향하겠다는 계획이라, 과연 발표대로 추진될지에 관심을 갖는 땅주인이 꽤 된다”고 전했다. 현재 서울 역세권에는 사업성 등의 문제로 사실상 방치된 노후 저층 건물이 적잖다. 이번 서울시 정책에 따르면 건물주가 8년간 일정 면적을 주거 목적으로 운용할 경우 나머지 공간은 상업시설에 임대하는 주상복합형 고층건물 건축이 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서울시가 본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재건축 붐이 일 경우 영세 임차상인과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건물이 철거되면 임차인은 권리금 등을 보장받지 못한 채 자리를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청년 주거난 해결이라는 대의가 옳다고 서툰 일처리까지 모두 용인되는 건 아니다.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조화롭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의 다양한 측면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면서 차근차근 추진해도 될 일을 서울시가 왜 이리 성급하게 처리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진짜 청년을 위하는 길

    박 시장은 취임 후 줄곧 ‘청년 집중’ 정책을 펴왔고, 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도 많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했던 ‘반값 등록금’을 실질적으로 구현한 것도 박 시장이다. 그는 2012년 취임하면서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절반으로 깎았다. 인문계열 기준 1년에 478만 원이던 등록금이 그해에 239만 원으로 줄었다. 박 시장은 2월 22일 서울시립대 졸업식에 참석해 “서울시장으로 당선하고 처음 한 일이 반값 등록금이다. 내 임기와 함께 시작한 ‘박원순 학번’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인사했다. 또 ‘주 40시간 일하는 사람이 가난해서는 안 된다’는 버니 샌더스 미국 대통령선거 후보의 말을 인용하며 “4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출까지 받아 교육받은 사람이 일자리가 없어서는 안 된다. 서울시는 청년들에게 사회참여활동비를 지급하고, 주거 및 활동 공간을 지원할 것”이라고도 했다. 서울시의 ‘청년수당’과 ‘역세권 2030청년주택’ 사업 등은 이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는 방편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시의회 관계자는 “박 시장이 청년수당을 추진할 때 각계의 비판이 거셌지만 시의회는 예산안을 참석 의원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그런데 ‘역세권 2030청년주택’ 등 일부 사업은 서울시가 설익은 상태에서 서둘러 발표했다는 의심이 든다. 그 배경에 잠재적 대권주자인 박 시장의 ‘성과 세우기’ 욕심이 있다는 의심까지 생기면 정책 추진이 힘을 얻기 어렵다”며 “진정 청년을 위한다면 더 많은 사람과 협의하고 실현 가능성까지 따져 정책을 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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