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6

2017.02.22

커버스토리

예능 대선 - 벚꽃 대선은 ‘말랑한 예능정치’가 대세

딱딱한 토론 검증은 지겨워…TV 프로그램 통해 호감 이미지 구축에 전력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2-17 16:3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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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예능계 블루칩’ MC 양세형. 시위대 차림의 그가 인터뷰를 자처한 안희정 충남도지사에게 거칠게 달려든다.

    “어디 있어, 안희정!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혹시 댓글 작업한 거 아냐.”

    시작부터 비꼬는 듯한 말씨에 반말이다. 이에 여유 있는 미소로 화답하는 안 지사.

    “동생이 참아. (꼭 껴안는다) 내가 진짜 충남 엑소(팬)이야!”

    이어 젊고 잘생긴 안 지사의 얼굴이 모니터 화면에 가득 들어찬다. 큼지막하고 친절한 자막과 경쾌한 배경음은 기본이다. 잠시 뒤 MC도 ‘충남 EXO(엑소)’란 별명에 동의하는 눈빛을 내비치고야 만다.



    자신과 무관한 다른 지역 지방자치단체장의 성적표까지 꿰뚫는 사람은 흔치 않다. 하지만 요즘 잘나가는 아이돌 엑소를 알고, 인터넷에서 ‘양세형의 숏터뷰’를 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안 지사가 보수적인 충청도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제도권 언론에서는 낯간지러워 감히 먼저 묻거나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얘기다. 이른바 말랑말랑한 ‘예능의 힘’이다.



    겨울(촛불)과 봄(탄핵) 사이 ‘예능 전쟁’

    ‘벚꽃 대선’을 예상하고 레이스에 돌입한 여의도 정치가 TV 방송국, 그것도 예능프로그램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예능프로그램은 MBC ‘무한도전’, KBS ‘해피선데이-1박 2일’,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처럼 유명 방송인이 모여 온갖 신변잡기를 주제로 웃고 떠들거나 실력을 겨루는, 뚜렷한 형식이 없는 오락방송을 총칭한다. 1980년대 유행하던 가요대전, 토크쇼, 운동회 등 형식의 칸막이를 없앤 오늘날 예능프로그램은 TV산업의 중심에 섰고, 특히 젊은 시청자의 폭발적 호응은 자연스레 시청률은 물론, 문화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이미지까지 더하게 만들었다. 그 덕에 1등 예능인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나 케이블TV방송 tvN ‘삼시세끼’의 나영석 PD는 방송 영향력 1, 2위를 다툴 정도가 됐다.

    현재 야권의 주요 대통령선거(대선) 주자들이 출연했거나 출연을 고려하는 프로그램만 해도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국민면접), KBS ‘해피투게더3’, 종합편성채널 채널A ‘외부자들’, JTBC ‘썰전’과 ‘말하는대로’ 등 이다. 이 밖에도 각종 인터넷방송 토크쇼 등 추가될 예능프로그램까지 더하면 10여 개를 헤아린다. 그야말로 ‘예능TV정치’ 시대가 만개한 것이다. 5년 전 당시 벤처경영인 안철수를 국민스타로 만든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열풍의 재현이라는 평가에서부터 미디어정치의 자연스러운 진화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탄핵정국으로 정치 일정이 온통 뒤엉켜버린 탓이죠.”

    더불어민주당(민주당) 한 당직자는 유력 후보들이 예능프로그램으로 몰려가는 상황을 이 같은 정치공학으로 설명했다. 현재 정당 지지율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는 민주당은 ‘완전국민경선’을 위해 선거인단을 모집 중이다. 시작일은 2월 15일부터로 명확하지만 마감일은 ‘탄핵심판일 3일 전’으로 표기될 정도로 유동적이다. 즉 탄핵소추안이 인용되는 그날이 앞으로 모든 정치 일정의 중심축이 된다는 얘기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탄핵된 날로부터 60일 안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데, 법정 선거 기간은 23일에 불과하다. 야당은 대선 1년 전부터 경선을 준비하고 대선 6~8개월 전까지는 후보를 결정하는 게 관례였다. 그러니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없었다면 지금쯤 치열한 당내 경선 드라마가 쓰이고 있었을 거라는 얘기다.



    꼬인 정치 일정 “선거판은 오리무중”

    충분한 검증과 홍보 기간을 가져야 선거에서 이길 확률도 높아지는 법. 도널드 트럼프를 선택한 미국 공화당 역시 14명이 넘는 후보가 1년 남짓 치열한 예비경선을 치렀다. 오늘날 정국은 선거법으로도 규정이 불가능할 만큼 묘한 ‘무법지대’가 되면서 유력 대선후보들이 가장 화끈한 홍보 수단인 ‘예능’을 파트너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번 설 연휴를 기점으로 대선정국이 본격화됐다. 전통적인 순서라면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 보도국이 중심이 돼 일종의 ‘싸움의 법칙’을 짜주는 것이 정석이다. 각 방송사 정치부를 축으로 후보들의 선거캠프와 일정을 조율하고 질문지를 확정한 뒤 전문가 패널을 섭외해 ‘검증 토론회’를 열거나, ‘후보 간 토론회’를 갖는 방식이다. 실제 이 같은 준비도 당연히 이뤄졌다. KBS와 MBC는 ‘후보 검증’을 앞세운 TV토론회를 1월 중순 무렵 제안한 것. 그러나 KBS는 황교익 음식평론가의 교양프로그램 출연 금지 논란으로 지지율 1위인 문 전 대표가 토론회 불참을 선언하면서 맥이 빠졌다. MBC는 철 지난 ‘검증’을 내세운 낡은 토론 형식으로 시청자의 관심에서 비켜난 형국.

    이와 함께 이번 대선은 1987년 개헌 이후 언론의 ‘검증 프레임’이 힘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일 것이란 전망도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권은 그 이유가 상당 부분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는 데 뜻을 함께한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 탓에 야당 후보의 호감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주장이다. 이와 동시에 언론 장악 논란으로 신뢰성에 위기를 맞은 지상파 방송사들이 대선후보를 검증한다는 것도 국민이 납득하기 힘들 것이란 시각도 있다. 2007년 대선에서 BBK 실소유주 논란처럼 후보 개인과 관련된 민감한 이슈도 박 대통령 탄핵에 묻혀 찾기 쉽지 않은 상황. 특히 야당 후보만큼은 상대적으로 ‘자질’ 평가보다 ‘취향’ 검증의 흐름이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야당의 주요 후보에 대해서는 국민이 이번 선거를 통해 충분히 검증이 이뤄졌다고 느끼는 분위기”라면서 “자질이나 공약 검증이 아니라면 전통적 방식의 TV토론보다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진정성’에 유권자들이 목말라 한다”고 분석했다.



    캐릭터 전쟁 “참신한 스토리 내세워라”

    “제 특기라면 아재개그 만들기입니다.”(안철수)

    “저는 취업 재수생입니다. 그만큼 절박합니다.”(문재인)

    “실제로 싸우지 않고 어떻게 세상이 바뀌겠습니까.”(이재명)

    ‘예능정치’의 인기는 시청률로도 쉽게 확인된다. 전문가 패널이 나와 검증을 부르짖은 KBS와 MBC 토론회는 5% 이하의 저조한 시청률을 보였다. 반면 이보다 훨씬 심야시간에 진행된 SBS ‘국민면접’은 상대적으로 높은 7~8%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다.

    소재의 다양성이나 인물의 성향을 설명하는 측면에서 전통적 TV토론은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데 예능프로그램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TV토론이 ‘북핵 문제’ ‘일자리 창출’ ‘최순실 예산 방지’ 등 주로 딱딱한 정책적 이슈에 집중하는 반면, 예능프로그램은 개인의 일상적 삶을 통해 정치관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SBS ‘국민면접’은 대선을 일반인이 알기 쉽게 ‘청와대 취업’이란 형식으로 풀어냈다. 자연스레 대선후보는 ‘지원자’로 분하고 패널들은 ‘면접관’이 된다. 시청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추가 질문을 할 수 있게 구성돼 누구라도 쉽게 다가설 수 있었다. 채널A ‘외부자들’은 ‘보이스피싱’이란 코너를 통해 문 전 대표, 안 지사와 전화통화로 정치현안을 들었다. JTBC ‘썰전’은 시사평론가들이 시사이슈를 만담으로 푸는 형식에 대선주자들이 자연스럽게 숟가락만 얹은 형식을 취했다. 말 그대로 ‘시사예능’이 된 것이다.

    전례 없는 판이 벌어진 만큼 이에 참전하는 대선후보들의 전략과 전술도 좋은 비교 대상이 된다. 특히 각 후보는 예능프로그램에서 다루기 좋은 신선하고 말랑한 이야깃거리를 발굴하고 포장하기에 전력을 기울인다. 특히 SNS 등을 통해 누리꾼의 반응을 사전에 확인해 예능에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예능프로그램의 주재료는 ‘일상적으로 부닥치는 쉬운 대화거리’다. 기왕이면 남들이 몰랐던 인생 역정이나 그 뒷얘기가 후보의 진정성을 나타내는 일화라면 더욱 좋다.

    문 전 대표는 ‘구치소 복역 중 사법고시 합격’ 혹은 ‘특전사 복무’ 경험이 가장 ‘먹히는’ 소재라고 여기고 있다. 일각에서 주장한 ‘금괴 200t 보유설’도 가벼운 농담거리로 쓴다. ‘썰전’에서는 경희대 법대 3년 선후배 사이인 전원책 변호사와의 관계가 화제를 모았다. 과거 TV토론에서라면 패널과 출연자의 ‘학연(學緣)’ 언급은 금기 가운데도 최상급에 속했다. 그런데 시청자의 시선을 끈 대목은 3년 선배가 상대적으로 젊어 보이는 문 전 대표였다는 것. 문 전 대표가 전 변호사를 향해 “제 선배인 줄 알았다”고 먼저 농담을 던지자 전 변호사는 “자꾸 그러면 잘근잘근 씹겠다”고 코믹하게 답했다. 예능정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안희정 지사는 보통 ‘충남 엑소’로 운을 띄우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혁명’을 노래했던 청춘시절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사적인 추억을 언급한다.

    ‘사이다’란 애칭으로 인기를 끄는 이재명 성남시장은 노동자로 살았던 젊은 시절을 극복하고 극적으로 사법고시를 거쳐 성남시장으로 변신한 이야기를 꺼낸다.

    또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과거 벤처기업인 시절 건강보험료도 내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던 시절을,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복잡한 당내 상황을 피하려다 보니 ‘연예인을 닮은 예쁜 딸’을 화제로 거론한다. 예를 들어 “내 사위는 상향식 공천으로 뽑을 예정”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식이다.



    친절한 예능, 편향된 예능 “예능은 편집”

    고충도 있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되는 토크쇼에 매번 비슷한 소재를 들고 나올 수는 없는 일. 선거캠프와 지지자들은 기왕이면 더 흥미로운 소재를 직접 발굴해 온라인에 경쟁적으로 유포하고, 다시 그 인기를 활용해 예능프로그램의 캐릭터 소재로 쓰는 대선 필승 방정식을 찾고 있다.

    전문가들은 TV토론과 예능프로그램의 결정적 차이는 소재의 무게도 있지만, 오히려 대중의 호기심을 끌기 위한 세밀한 편집과 ‘생방송 여부’라고 입을 모은다. 즉 예능프로그램은 PD와 작가가 한 번 더 가공한 콘텐츠이기 때문에 후보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창은 결코 아니라는 경고다.

    채널A ‘외부자들’이나 JTBC ‘썰전’ 같은 시사예능은 녹화한 뒤 방송을 내보내기까지 사나흘의 시간이 걸린다. 기왕이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자 편집과 자막 작업, 그리고 각종 이해를 위한 컴퓨터그래픽(CG)과 배경음 삽입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편집의 힘은 이재명 시장이 등장한 SBS ‘국민면접’(2월 14일)에서도 여러 차례 확인됐다. 그의 별명인 ‘사이다’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사이다, 사이다!’를 외치는 랩음악이 튀어나오고, 그가 스마트폰으로 맹렬히 SNS를 활용하는 장면에서는 ‘불타오르네, 파이어~’라는 유명 아이돌의 노래 한 대목을 들려주면서 뜨겁게 불타는 CG를 입혔다. 그가 열성적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반면 생방송 TV토론은 후보들에게 불리하다. 지난해 11월 28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문 전 대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조기 대선 이슈를 놓고 앵커 손석희와 문 전 대표 간 질문과 답변이 반복되면서 문 전 대표의 약점만 도드라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편집이 가능한 예능프로그램에서라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예능프로그램은 자막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1시간 남짓 방송 분량에 자막이 200개 이상 들어간다. 단순히 후보의 발언을 요약한 것이 아닌, 작가와 PD가 그 상황을 적절하게 요약해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 이른바 ‘예능형 자막’이다. 이는 생방송 TV토론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영역으로, 예능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으로도 꼽힌다. 현재까지 거의 모든 예능프로그램은 자막을 통해 각 후보의 장점을 도드라지게 했다. 일부 학자는 “예능이 지나칠 정도로 후보자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꼬집기도 한다.



    예능으로 득 본 후보, 손해 본 후보는?

    예능프로그램의 재치 있는 설정도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다. 한 인터넷방송은 안희정 지사를 초청해 소주를 대접했는데, 소주가 ‘진보데이’와 ‘참보수’라는 브랜드였다. 안 지사는 잠시 고민하다 “저는 진보니까 당연히 진보데이를 마십니다”라고 답했다. 시청자는 한눈에 그를 ‘정책은 중도를 지향하더라도 본바탕은 진보인 후보’라고 인식할 수 있었다.

    대다수 정치 전문가는 PD와 작가의 손길이 많이 타는 예능정치 흐름에 비판적이다. 날것 그대로의 후보가 주인공이 아닌 방송 재료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없지 않다. 드라마평론가로 활약하는 박상완 충남대 교수는 “과거에도 유권자들이 정책 비교보다 이미지나 이름값 위주로 뽑았던 것을 떠올리면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오히려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다”면서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버리고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은 평가할 만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다수 전문가는 앞으로 펼쳐질 예능정치 정국에서 가장 유리할 후보로 이재명 시장과 안희정 지사를 꼽았다. 이제 50대 초반 나이로, 여타 후보에 비해 젊고 신선하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특히 이 시장은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잘못된 점을 인정하는 모습이 예능프로그램에 최적화된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공희준 대중문화평론가는 “형제간 갈등 같은 민감한 질문도 깔끔하게 해명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말했고, 온라인 대중문화매거진 ‘ㅍㅍㅅㅅ’의 임예인 편집위원은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을 노동부 장관에 앉히겠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라며 “쟁점을 만들면서도 자신의 선명성을 드러내는 재주”를 특히 높게 평가했다.



    예능정치의 딜레마 “이미지 혹은 감성 정치”

    안 지사는 최근 출연한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내놓은 재치 있는 답변이 SNS를 중심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다는 평. 상대적으로 신선한 인물이라는 점만으로도 예능정치 정국에서 선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반면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쪽은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등 상대적으로 낡은 후보들이었다. 두 사람 모두 평소 ‘눈치’나 ‘말재주’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 박상완 교수는 “안 전 대표는 우유부단한 이미지가, 문 전 대표는 개성이 없다는 점이 예능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직은 우리 방송이 지나치게 착한 것 같아요. 더 세게 비꼬고 놀려도 된다고 봐요.”

    지난 미국 대선을 집중 연구했던 박상현 메디아티 이사는 여전히 국내 예능프로그램이 후보의 긍정적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그칠 뿐이라고 지적한다. 막상 ‘검증’을 핑계로 무거운 질문은 던지지만 집요함이 사라진 점은 아쉽다는 평가도 있다.  

    영국, 미국에서는 선거판에 뛰어든 후보만큼은 치열한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된다는 것. 미국 NBC 방송의 코미디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가 대표적 사례다. 지난 대선에선 버니 샌더스와 힐러리 클린턴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트럼프는 자신으로 분한 배우 앨릭 볼드윈에게 크게 화를 내 망신을 사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정치풍자’는 사실상 금지되고 탄압받았다는 것이 이번 특검 수사의 결론이다. 올해 대선을 기점으로 다시금 ‘예능정치’가 복원된 것인지, 아니면 언론의 검증 공세를 피하려는 꼼수인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다. 다만 확실한 것은 ‘박근혜의 불통정치’에 지친 국민은 딱딱한 정책 비교보다 정치인의 ‘인간적 냄새’를 더 갈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세형의 숏터뷰’ 쇼크

    올해 본격화된 ‘예능정치’ 정국의 첫걸음으로는 ‘양세형의 숏터뷰’(숏터뷰)가 꼽힌다. 대세 개그맨이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를 만나 짧게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지난해 6월 시작해 누적 조회 수 3500만 건을 돌파했다.
    ‘숏터뷰’의 매력은 황당한 설정과 짓궂은 질문이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숏터뷰’에 출연한 이재명 성남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재치 넘치는 질문에 처음엔 적응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양세형이 이 시장에게 “나도 청년이니까 수당을 달라”며 떼를 쓴 것이 대표적이다. 고심 끝에 이 시장은 “성남으로 이사 오면 생각해보겠다”고 받아쳤다. 안 지사 편에서는 양세형이 안 지사 품에 안겨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인터넷방송이지만 반향이 제법 컸다. 안 지사의 경우 2편 중 1편의 조회 수가 270만 건을 넘어섰다. 이 시장 편은 공개 일주일 만에 조회 수 240만 건을 넘겼다. ‘숏터뷰’ 최고 조회 영상인 힙합가수 ‘일리네어’ 편(370만 건)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치다.

    인터뷰 |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의 최태환 CP◆ “딱딱한 이슈보다 알기 쉬운 면접에 집중”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은 박근혜 대통령이 실패한 이유가 ‘검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카피를 전면에 내세웠다. 패널로는 독설로 유명한  방송인이 총출동했다. 재미와 검증 둘 다 잡겠다는 야심 찬 기획이다. SBS 교양국의 ‘대선주자 국민면접’은 실제 입사면접처럼 각 지원자를 둘러싼 논란과 개인사를 모두 다뤄 시청률과 화제를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

    하지만 후보 검증을 해야 할 언론사가 단순 홍보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도 적잖다. 편집에 대한 불만도 속출했다. 특히 1회 ‘문재인’ 편에 불만이 집중됐다. 이 밖에도 ‘면접관’이라 불리는 패널(진중권 동양대 교수, 허지웅 작가, 김진명 작가,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 철학자 강신주)이 과연 국민을 대표해 대선후보를 면접할 자격이 있느냐는 논란도 일었다.

    이에 대해 최태환 교양국 CP는 “각 후보를 둘러싼 핵심 논란을 짚어주는 동시에 이들의 인생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예능프로그램과 검증의 중간 단계”라면서 “딱딱하게 보일 수 있는 정치 이슈보다 예능프로그램을 보듯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검증은 다른 언론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다는 얘기다.

    면접관들의 자격 논란에 대해서는 “패널들은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사람에 불과하다”면서 “면접관의 역할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기왕이면 정치 전문가보다 시청자에게 익숙한 인물을 섭외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프로그램의 구성과 진행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거셌지만 시청자는 일단 흥미롭다는 반응이다. 특히 첫 회(문재인 편) 시청률이 7.3%로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광장 유세의 시대→TV토론의 시대→예능의 시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치른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대선)의 화두는 광장에 모인 ‘군중의 수’였다. 여론조사가 본격화되지 않은 시절이라 후보의 지지율을 가늠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여당 노태우 후보와 김영삼(YS), 김대중(DJ) 후보 캠프는 사활을 걸고 여의도 광장에 지지자들을 총결집시켰고, 각각 100만 명 넘는 인파가 모였다고 주장했다.   

    이후 선거는 군중 동원 대신 미디어로 중심축을 옮겼다. 1992년 시범 도입된 TV토론은 97년 DJ와 이회창이 맞붙었던 15대 대선 때 제도화됐다. 생방송 TV토론의 첫 수혜자는 DJ였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외환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그는 구체적 경제수치를 토론에 활용해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했다. 당시 방송사에서 중계한 각종 후보 초청 토론회만 30여 회에 달할 정도로 TV토론이 범람했다.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격돌한 2002년 16대 대선은 극대화된 TV토론의 영향력에 더해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청문회 스타 출신 노무현 후보와 월드컵 히어로 정몽준 후보 간 두 번에 걸친 단일화 TV토론은 최대 하이라이트였다.

    2007년(이명박 당선)과 2012년(박근혜 당선) 대선에서는 TV토론의 영향력이 오히려 크게 줄었다. 지지율이 앞선 후보들이 TV토론을 기피했던 탓이다. 그 대신 방송국의 예능프로그램과 토크쇼가 새로운 통로로 떠올랐다.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로 안철수 후보가 떴고 SBS ‘힐링캠프’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를 불러 이미지 메이킹에 나서 10%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를 계기로 유력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예능프로그램과 토크쇼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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