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9

2016.05.25

커버스토리 | 국민 살릴 法들이 죽어간다!

지를 때만 떠들썩한 법안들 “죽은 法은 말이 없고…”

19대 국회 종료 코앞, 법안 1만49건 사라질 판…롯데법, 삼성생명법 등 대기업 관련법 폐기 수순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박세준 기자 sejoonkr@naver.com

    입력2016-05-23 10: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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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헌법 제51조는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기타의 의안은 회기 중에 의결되지 못한 이유로 폐기되지 아니한다. 다만,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19대 국회의원의 임기 종료를 열흘 앞둔 5월 19일 현재, 국회에는 1만49건의 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29일까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1만 건 넘는 법안들은 헌법 제51조 규정에 따라 19대 국회의원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다. 상임위원회(상임위)별로는 안전행정위원회에 가장 많은 1495건이 계류돼 있고, 보건복지위원회 1136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1127건 순이다.

    1만 건 넘는 법안들이 국회 상임위에 계류된 채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다는 것은 19대 국회가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운영됐는지를 잘 보여준다. 19대 국회는 법안 발의 건수로는 역대 최고 수준이지만 법안 가결률은 역대 최저란 비판에 직면해 있다.

    국회의원 임기 종료로 자동 폐기될 법안 가운데는 ‘롯데법’ ‘삼성생명법’ 등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대기업 관련 법안이 적잖다. 국민적 관심이 높을 때 의원들이 앞다퉈 법안을 발의해놓고 여론이 잠잠해지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결과다.

    국회 한 관계자는 “법안 발의는 관련법 논의의 시작을 의미할 뿐”이라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비로소 법안으로서 생명력을 갖게 되고 국민 삶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새누리당 간사를 맡고 있던 김용태 의원은 대기업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 현황 자료를 거짓으로 제출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제출을 거부하면 대기업 총수에게 2년 이하 징역이나 1억5000만 원 이하 벌금을 선고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 또한 김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에는 대기업의 해외 계열사 소유 지분 현황 등을 의무적으로 공시토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총수일가 경영권 분쟁 속에서 태어난 ‘롯데법’

    그에 앞서 지난해 8월에도 관련법 개정안 2건이 국회에 제출됐다. 하나는 국민의당 신학용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으로, 대기업이 외국법인인 계열회사의 주식을 취득 또는 소유한 경우 그 현황을 공정위원회에 신고하게 함으로써 해외 계열사를 통한 편법 상호출자를 규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른 하나는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 이언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으로, 대기업의 해외 계열사 지분 의무 공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각 법안에는 조금씩 다른 내용도 들어 있지만, 대기업의 해외 계열사 지분 현황 공시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같은 법안이 제출된 배경에는 신동주-동빈 롯데그룹 총수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법안을 일명 ‘롯데법’이라 불렀다.

    롯데그룹 형제간 경영권 분쟁 당시 해외 계열사 지분 현황에 대한 공시 의무가 없어 광윤사와 롯데홀딩스, L투자회사 등 사실상 국내 롯데그룹 계열사를 지배하는 일본 기업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을 개선하고자 관련 법안이 제출됐던 것. 당시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개정안 제출을 검토했지만 의원 입법으로 법안이 이미 국회에 넘어가 있던 터라 추가 법안 제출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당시 롯데법은 국민적 관심이 높고 여야 의원 모두 관련 법안을 제출한 데다, 특히 여당 간사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는 점에서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롯데법은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서 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해외 계열사 지분을 의무적으로 공시토록 한 ‘공정위법’과는 별도로 롯데와 관련한 또 하나의 법안이 지난해 8월 국회에 제출됐다. 더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제출한 ‘관세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2014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면세점시장 규모는 74억 달러(약 8조8000억 원)로 롯데호텔과 호텔신라가 각각 경영하는 롯데면세점, 신라면세점이 전체 매출의 50.75%와 30.54%로 사실상 양분하고 있다. 특히 국내 면세점사업 1위 기업인 롯데면세점이 속한 롯데호텔의 지분 대부분이 일본 롯데홀딩스를 포함한 일본계 기업으로 알려지면서 국부 유출 논란이 제기됐다. 서 의원은 면세사업자에게 재무제표를 별도로 작성해 공시토록 함으로써 면세점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관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동안 면세점사업과 관련해 롯데호텔은 각 사업연도 보고서의 주석으로 면세점사업 분야의 매출 및 매입총액을 공시하고, 호텔신라는 면세유통 분야의 매출, 영업이익 및 자산총액을 공시하는 등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관세법 개정으로 면세점사업에 대한 별도 재무제표 작성이 의무화되면 면세점사업의 매출과 영업이익 등을 일목요연하게 비교·분석하는 게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법안 역시 국회 상임위에 계류된 채 더는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더민주당 오제세 의원은 지난해 8월 대기업이 국가로부터 조세 감면을 받은 현황을 공시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대기업이 공시할 내용에 조세 감면 명세 등 정부로부터 제공받은 혜택을 포함하고, 공정거래위원장이 공시 사항 확인을 위해 관계 행정기관 장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게 했다. 조세 감면 현황을 알 수 없어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적절히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 법안 발의의 주된 이유였다. 만약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해 대기업들이 어떤 명목으로 얼마만큼의 조세를 감면받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면 대기업들의 실제 조세 부담률도 파악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9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민주당 김기준 의원은 국세청 자료를 근거로 “박근혜 정부 들어 10대 대기업에 대한 조세 감면 쏠림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이 당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대 기업은 전체 법인세 35조4440억 원의 14%인 5조1092억 원을 납부했지만, 조세 감면으로 전체 법인세 감면액 8조7400억 원의 41%인 3조6023억 원(2014년 기준) 혜택을 봤다는 것. 김 의원은 “법인세의 14%를 부담하는 10대 기업이 조세 감면은 3배 가까운 41%를 받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라며 “연간 4조 원에 달하는 재벌 특혜성 조세 감면 제도를 대폭 정비하고, 근본적으로 법인세 최고세율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세 감면액 등을 공시토록 규정한 오제세 의원의 대표 발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실제 기업들이 부담한 세율을 쉽게 확인할 수 있어 법인세 인상 여론이 탄력을 받으리란 기대가 많았다. 그러나 이 법안은 국회 상임위 차원에서 논의되지 않아 본회의 상정조차 못 해보고 자동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안 하나, 못하나 삼성생명법 논의

    2014년 11월 더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보험사가 자산운용비율을 산정할 때 보험사가 보유한 채권과 주식 등을 취득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토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은행, 저축은행 등 다른 금융회사가 보유한 주식은 관련 법령에 따라 모두 시가 등을 기준으로 자산운용비율을 산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험사 또한 자산운용비율 산정 때 시가를 적용해야 자산운용 규제가 왜곡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이 법안이 적용되는 보험사는 유일하게 삼성생명이라는 점에서 ‘삼성생명법’이라고 불렀다.

    더민주당 김기식 의원은 5월 18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취득 원가와 시가(공정가치)의 차이가 큰 경우 보험사에 대한 규제(대주주 등과의 거래 규제, 자산운용 규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며 “보험업법을 자산운용 규제 목적에 부합하도록 시가 기준으로 개정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 법을 대표 발의한 이종걸 의원은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원내 제2당인 더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냈지만 이 법은 국회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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