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3

2017.06.21

스페셜

노동생산성 낮은 것이 근로자 탓?

한국 최하위권 기록 이유는 제값 못 받고 혁신 없는 서비스업 탓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6-16 17:04:58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현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 친화적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한국 노동생산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안 그래도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임금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같은 정책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은 노동자 탓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근로자는 노동생산성에 맞게 대우?

    특히 서비스직의 경우 노동자가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낮은 노동생산성의 원인이다. 선진국에 비해 서비스 요금이 너무 낮아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노동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5년 한국 취업자 1명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1.8달러로 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인 28위를 기록했다. 한국 노동자는 한 시간 일하면 평균적으로 3만5000원가량을 버는 것이다. 1위는 81.5달러를 기록한 룩셈부르크이고 뒤를 이어 노르웨이(78.7달러), 아일랜드(77.9달러) 순이다. 미국과 독일은 62.9달러와 59달러다. 

    노동생산성의 증가세 역시 둔화하고 있다. 한국생산성본부의 2015년 정기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07년에는 노동생산성이 연평균 3.3% 증가했으나 2010~2013년에는 절반 수준인 1.8%로 줄어들었다.



    이에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생산성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섰다. 6월 7일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노동생산성 제고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해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빨리 통과되도록 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해당 법 개정안은 지난해 5월 정부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발의하고 올해 3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5당이 큰 틀에 합의했으나, 초과근무 허용을 놓고 이견을 보여 통과가 계속 미뤄졌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고자 근무시간을 줄인다는 것은 일견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효과가 있으리라 본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간을 줄여야 노동생산성도 올라간다. 같은 일을 해도 일터에 오래 있어야 한다면 태업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영계는 노동생산성이 낮은 상황에서 근로시간까지 줄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맞서고 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논평을 통해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면 기업이 인건비 12조 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특히 필수 숙련공의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노동생산성은 더욱 하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낮은 노동생산성은 새 정부의 노동정책 핵심 공약인 최저임금 1만 원을 막는 원인으로 작용할 개연성도 있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노동생산성이기 때문. 최저임금법 제4조에는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낮은 노동생산성 원인은 낮은 서비스 가격

    한국 노동생산성이 OECD 회원국에 비해 낮은 이유는 서비스업의 부진 때문이다. 한국 서비스업의 인당 노동생산성은 2013년 기준 약 4만7000달러(약 5277만6300원). 비교 가능한 OECD 26개 회원국 가운데 21위로 꼴찌에 가깝다. 

    서비스업은 국내 고용량의 대부분을 소화하고 있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5월 기준 전체 근로자의 약 70%가 서비스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가장 많은 인력이 종사하는 산업의 노동생산성이 낮으니 제조업 등 다른 산업의 노동생산성이 아무리 높아도 한국 노동생산성은 낮게 집계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같은 해 국내 제조업 노동자 1인의 노동생산성은 11만 달러(약 1억2000만 원)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아일랜드와 미국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한국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이 높은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해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에 발표한 ‘노동생산성 변화의 원인과 결과’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은 2001년 일본을 추월하고 2007년 미국의 86% 수준에 도달했다. 2009년부터는 독일보다 높은 노동생산성을 기록했다. 반면 한국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약 30%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국내 서비스업 종사자가 제조 및 생산업 종사자에 비해 게으르거나 능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단순 서비스업의 대명사인 운송업계만 봐도 근로자의 근무 강도는 높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해 집계한 ‘화물자동차 운송시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택배기사는 하루 평균 12~13시간 일하며, 150~200개 화물을 배송한다. 단순 계산해보면 4~6분마다 택배 한 건을 처리하는 셈이다. 국내 서비스업 노동자는 점심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해 5월 직장인 6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점심시간을 제대로 챙길 수 없을 만큼 바쁘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의 25.2%였다. 이 가운데 서비스업 종사자가 38.1%로 가장 많았다(사무직 21.1%, 영업직 14.3%, 기타 26.5%).

    노동생산성은 국내에서 생산된 부가가치의 총합인 국내총생산(GDP)을 전체 고용자 수로 나눠 산출한다. 단순화하면 노동자 한 명이 얼마를 버느냐를 확인하는 척도다. 이 때문에 노동자의 능력과 관계없이 해당 노동에 대한 대가가 낮게 책정돼 있다면 노동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서비스업이 낮은 노동생산성을 기록하는 이유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 국내 서비스 요금이 턱없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택배업체가 받는 건당 배송 수수료는 2500원 선. 이에 반해 2013년 OECD 기준 서비스업 노동생산성 2위를 기록한 미국의 택배 건당 배송 수수료는 1만 원 선, 일본은 7000원 선이다.

    비교적 노동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전문기술 관련 용역도 제값을 못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자산 규모 80조 원인 포스코(POSCO)는 회계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에 감사 보수로 20억 원을 지급했다. 반면 2012년 자산 규모 46조 원인 신일본제철은 당시 감사 보수로 54억 원을 지불했다.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전반적으로 서비스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세계적 금융그룹 UBS가 미국 뉴욕 물가를 기준으로 세계 주요 71개 도시의 생활물가를 비교한 ‘2015 물가와 소득’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미용, 요식, 운송 등의 서비스 물가는 미국 뉴욕의 55.3% 수준으로 71개 도시 중 46위였다. 반면 서울의 평균 물가는 71개국 가운데 11위를 기록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체질 개선

    그렇다면 한국 서비스업계의 노동생산성 증대는 불가능한 일일까. 전문가들은 서비스업계의 노동생산성 정상화를 위해서는 각 서비스업체와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태기 교수는 서비스업의 특성상 노동자의 노력보다 서비스업의 체질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종업원이 더 친절하다고 맛없는 음식점을 찾는 손님은 드물다. 서비스업계에서 각 노동자의 업무 능력과 성실도가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작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업체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다. 따라서 노동생산성을 높이려면 각 업체가 정보통신기술(ICT) 등 새로운 시장 진입을 위한 투자 및 개발을 통해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내 서비스업체의 연구개발(R&D) 실적은 저조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이 3월 발표한 ‘서비스업 R&D의 국제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서비스업의 연구원 인당 R&D 투자액은 10만1000달러(약 1억1000만 원)로 프랑스의 49.7%, 이탈리아의 36.5% 수준에 불과했다. 한국과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진 일본도 서비스업의 연구원 인당 R&D 투자액이 23만1000달러에 이른다.

    국내 서비스업체가 적극적으로 새 먹을거리 창출에 나서지 않았으니 성과가 부진할 수밖에 없다. 제조업체의 신제품 출시율은 2009~2011년 6.6%에서 2011~2013년 7.9%로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서비스업체의 신서비스 출시율은 4%에서 2.5%로 감소했다. 안중기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서비스업의 R&D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세제 지원 등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월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부터 2021년까지 4조6547억 원 예산을 들여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연구개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서비스업계의 반응은 차갑다. 업계 관계자는 “정작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곳은 서비스 관련 중소기업이다. 대기업이 주로 진출한 도소매, 통신 같은 분야는 지금도 제조업에 버금가는 (노동)생산성을 자랑한다. ICT와 서비스업의 융합은 환영하지만, 소규모 서비스업체의 ICT 진출 컨설팅 등 중소기업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