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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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트럼프는 닉슨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코미 전 FBI 국장 해임 사태 일파만파…뮬러 전 FBI 국장 특검 임명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7-05-22 16: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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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해임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자칫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처럼 탄핵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번 사태는 ‘러시아 스캔들’에서 비롯됐다. 러시아 스캔들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를 당선시키고자 러시아 정부가 해커들을 동원해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와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선거캠프 인사들의 e메일 등을 해킹하고 가짜뉴스를 퍼트린 것 등을 말한다.

    러시아 스캔들이 더욱 문제가 된 것은 트럼프 선거캠프 주요 인사들이 러시아 정부의 이런 행위를 알았을 뿐 아니라,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 대사 등을 접촉해왔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내통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폴 매너포트 전 선거본부장 등이 내통 의혹에 연루돼 있다. 실제로 대선 당시 외교·안보 담당 참모였던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키슬랴크 대사와 만난 사실을 감추려고 거짓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취임 24일 만에 사임했다.  



    FBI=검찰+국정원 국내 정보 파트

    트럼프 대통령은 FBI가 러시아 스캔들을 더는 수사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코미는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트럼프 선거캠프 주요 인사를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수사를 벌이도록 지시했다. 코미는 또 로드 로즌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에게 수사 확대를 위한 예산과 인력 보강을 요청했다. 특히 코미는 5월 3일 상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수사 대상이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과 7일 뉴저지 주 베드민스터 트럼프내셔널골프클럽에서 골프를 치며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코미의 의회 증언이 “이상하다”고 불평했다.

    그는 8일 백악관에 복귀한 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 등을 소집해 코미에 대해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세션스 법무장관과 로즌스타인 부장관을 불러 코미의 해임을 건의하는 문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9일 코미를 해임하기로 결정했다.



    FBI는 우리나라로 치면 검찰과 국가정보원(국정원)의 국내 정보 파트를 합쳐놓은 막강한 조직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은 FBI 국장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또 백악관과 FBI는 긴장 및 갈등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FBI는 연방법 위반 사건을 주로 다룬다. 미국 본토가 주요 활동 범위지만 조직 범죄와 사이버 범죄, 대테러 업무 등 수사 영역은 방대하다.

    또 도·감청 등 사찰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법무부 산하 기관이지만 직원 3만6000명을 두고 81억 달러(약 9조696억 원) 예산을 집행하는 방대한 조직이다. FBI는 1935년 설립됐으며, 역대 국장은 총 7명이다. 특히 48년간 FBI 국장을 지낸 존 에드거 후버는 대통령 8명을 보좌했다. 대통령들은 후버를 싫어했지만 해임하지는 못했다. 후버가 비밀리에 보관해온 대통령 ‘X파일’ 때문이었다. 실제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혼외정사 문제로 후버에게 약점을 잡히기도 했다.

    후버가 사망한 후 FBI 국장 임기는 10년으로 정해졌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임기를 연장할 수 있게 했다. 임기를 10년으로 규정한 것은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물론 대통령은 언제든 FBI 국장을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3년 관용기를 이용해 부부 동반 여행을 하고, 애완견 산책에 FBI 요원을 동원하는 등 물의를 일으킨 윌리엄 세션스 국장을 해임한 바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3년 임명한 코미의 임기는 2023년까지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 해임 사유를 “일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혀 사태가 더욱 악화됐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부대변인은 “코미 전 국장은 FBI 직원들의 신뢰를 잃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거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앤드루 매케이브 FBI 국장대행은 5월 11일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코미 전 국장은 FBI 직원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으며 업무도 잘해왔다”면서 트럼프와 백악관의 해임 사유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수사 대상인지 세 차례 물어봤지만 코미는 아니라고 답했다”며 1월 만찬에서 코미와 나눈 대화 내용을 담은 녹음이 있는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사태를 ‘토요일 밤의 대학살(Saturday Night Massacre)’을 재연한 충격적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토요일 밤의 대학살’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1973년 10월 20일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수사하던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한 일을 말한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72년 6월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참모들의 지시로 전직 정보요원들이 워터게이트빌딩에 있는 민주당 선거사무실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고 침입했다 체포된 사건이다.

    당시 ‘워싱턴포스트’의 추적 보도로 파문이 확산되자 닉슨 대통령은 핵심 보좌관을 해임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해임된 보좌관은 상원 조사위원회에서 백악관 집무실 대화 내용이 녹음돼 있다고 폭로했고, 콕스 특검은 녹음테이프 제출을 요구했다. 닉슨 대통령은 이를 거부한 채 오히려 법무장관에게 특검 해임을 명령했다. 법무장관은 명령을 거부하며 사임했고, 다시 명령을 받은 부장관마저 물러났다. 결국 닉슨 대통령은 차관을 직무대행으로 임명해 해임을 강행했다. 이후 하원 법사위원회가 닉슨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했고, 탄핵안이 상원을 통과할 것이 확실해지자 닉슨 대통령은 74년 8월 8일 자진해서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미국에서 임기 도중 대통령이 사임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화요일 밤의 대학살

    미국 언론들은 이번 사태를 ‘화요일 밤의 대학살’이라고 표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FBI의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를 막고자 코미를 해임했다고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 대통령이 수사를 지휘하는 책임자를 해임한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트럼프는 법 위에 군림하려 한다”면서 “자신에 대한 모든 수사를 차단하고자 코미를 해임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공화당 중진인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은 “스캔들이 워터게이트급이 됐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2월 14일 코미에게 러시아와 내통 의혹에 대한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는 내용의 메모가 있다고 특종 보도했다. 하원 정부감독위원회는 FBI 측에 트럼프와 코미가 나눈 대화와 관련한 모든 메모 및 기록물, 요약본, 녹취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수사외압’ 논란의 진위 여부를 판명하기 위한 조치다. 민주당은 탄핵 등을 거론하면서 총공세에 나섰다.

    그러자 법무부는 로버트 뮬러 전 FBI 국장을 특검으로 임명하고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게 했다. 뮬러 전 국장은 공정한 수사를 하기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이번 사태는 앞으로 메모 내용과 의회의 입장, 특검의 수사 및 코미의 증언, 내부 고발 등 돌발 변수에 좌우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악의 경우 ‘사법방해(Obstruction of Justice)’를 이유로 탄핵될 수도 있다. 닉슨 전 대통령은 자기 뜻대로 특검을 해임했지만, 수사 중단이라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도리어 탄핵론에 불을 지펴 1년 뒤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트럼프가 닉슨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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