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2

2016.08.24

정치

호남은 정권 재창출의 교두보

영남의 견고한 대통령 지지세+호남 출신 대표+충청 대선후보=필승?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08-19 16: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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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잘하고 새누리당이 호남을 배려하면서 호남을 위한 정책을 펼친다면 그 자체가 호남 사람들 마음의 문을 여는 비결이 될 것이고, 20% 이상은 능히 할 수 있다. (중략) 호남뿐 아니라 구미, 창원, 울산 등에 많이 나가 있는 출향 호남 사람들도 마음의 문이 크게 열릴 것이다. 내가 얼마나 호남 탕평인사, 탕평정책을 펼치느냐, 그런 걸 현 정부와 여당이 부응하느냐에 따라 대선 판도를 어마어마하게 가르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신임 대표는 8월 16일 YTN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대선) 경선 때부터 호남 출신인 자신이 새누리당 대표가 되는 것이 곧 정치 변혁의 시작이라며, 자신을 당대표로 선출하면 불모지인 호남에서 20% 득표가 가능하다고 강조해왔다. 그의 말은 현실이 될 것인가.

    지역구도는 당원 중심으로 선출된 당대표보다 국민이 선출할 대선후보에 의해 좌우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이 대표가 대선 과정에서 지역구도에 변화를 가져올 촉매제라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받으려면, 당의 변화와 대한민국의 변화에 대한 자기신념을 전국적으로 호소해야 한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은 “이 대표가 야권 기반인 전남지역에서 거푸 국회의원에 당선한 것은 대선처럼 유권자의 선택지가 하나가 아니라, 지역구와 비례대표 등 선택지가 더 많은 상황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이에 따라 호남 유권자들은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폭넓은 옵션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정현이 낙선하는 것보다 당선했을 때 이익이 더 크다고 호남 유권자들이 판단했다는 뜻이다. 새누리당 당원들이 이 대표를 선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호남 출신 당대표를 선출하는 것이 내년 대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더 유리할 것이라고 본 새누리당 당원이 많다는 의미다.





    ‘우리가 남이가’ 정서

    최 부소장은 “이 대표 체제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는 이 대표에게 부담감과 집중력 저하를 가져오고 상실감과 국민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며 “이 대표 체제는 지역구도 타파보다 당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도 “이 대표는 호남 출신이긴 하지만 지역색보다 ‘친박(친박근혜)’ ‘박 대통령 대변인’ ‘박근혜의 남자’라는 이미지가 훨씬 강하다”며 “이 때문에 새누리당 내 첫 호남 출신 대표라는 특별한 위치에도 스스로 지역색을 희석하려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대선 국면에서는 지역 및 이념 측면에서 극단적인 양상을 띠게 마련인데, 이런 환경에서는 이 대표의 얼굴에서 ‘호남’이라는 단어를 읽는 사람보다 ‘박근혜’라는 단어를 읽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며 “영남 출신 대표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의 지적처럼 ‘생물학적 호남’이 지역 정서에 어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호남 출신인 이 대표가 새누리당 대표에 올랐다고 호남에서 새누리당에 높은 지지를 보낼지는 미지수다. 이 대표가 호남의 정치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대 대선을 보면 지역연합체적 성격을 띤 정당이 선거에서 늘 승리했다.

    1992년 대선 막바지에 김영삼(YS) 후보의 우세를 굳힌 한마디는 ‘우리가 남이가’였다.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을 아우르는 이 한마디는 90년 ‘민정(민주정의당)+민주(통일민주당)+공화(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 3당 합당은 이념적으로는 보수가 결집한 것이지만, 지역적으로는 TK와 PK는 물론, 충청까지 아우른 지역연합체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지역연합체로서 3당 합당은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정권 성공까지는 보장하지 못했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 3년 차에 단행된 전두환, 노태우 구속 등 이른바 ‘YS의 역사 바로세우기’를 계기로 TK 기반의 민정계와 충청 기반의 공화계가 떨어져나갔다. YS와 등진 민정계와 공화계는 서로 손잡고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출범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것은 이 같은 정권 내부의 분열과 무관치 않다.

    1997년 대선은 역3당 합당에 비유할 만하다. 호남 출신인 김대중 후보를 중심으로 충청 출신 김종필, 여기에 TK 출신 박태준까지 가세했다. DJT에 맞선 상대는 TK 등 영남의 지지를 받는 충청 출신 이회창이었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에 대한 TK의 지지가 갈리고, YS의 주요 기반인 PK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인제 후보까지 대선에 나서면서 김대중 후보가 신승을 거뒀다. 1997년 대선은 ‘뭉치면 당선, 흩어지면 낙선’이란 선거 공식의 전형을 보여줬다.



    뭉치면 당선, 흩어지면 낙선

    2002년 대선은 변형된 지역구도로 치렀다. 이회창 후보는 ‘영남이 미는 충청 후보’라는 콘셉트를 유지한 반면, 노무현 후보는 ‘호남이 미는 영남 후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앞세워 대선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노 후보는 대선후보 당선 이후 치른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PK지역에서 단 한 명의 광역단체장도 배출하지 못하며 득표력에 한계를 드러냈다. 영남에서의 부족한 득표율을 만회할 회심의 카드가 행정수도 이전론이었다.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만들겠다는 행정수도 이전론은 충청 출신 이회창 후보의 견고한 충청 지지세를 흔들었고, 결국 노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2007년 대선은 호남 출신 정동영 후보가 영남 출신 이명박 후보에게 600만 표 가까운 큰 차로 패한 선거였다. 충청 출신 이회창 후보가 제3후보로 대선 막바지에 뛰어들었지만, 대세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영남의 견고한 지지를 등에 업은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정권이 무위로 돌리려던 세종시를 지켜낸 공로를 충청권에서 인정받아 낙승을 거뒀다. 충청 유권자들은 세종시를 만든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보다 자칫 과학도시로 격하될 뻔한 세종시를 지켜낸 박근혜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내년 대선은 어떨까. 지역 구도적 측면에서 보면 새누리당이 또다시 우위를 점한 모양새다. 박 대통령이 TK와 PK 등 영남권에서 여전히 견고한 지지세를 유지하고 있고, 호남 출신 당대표까지 배출했다. 여기에 충청 출신 대선후보까지 결합하면 전국을 아우르는 면모를 과시할 수 있게 된다. 그에 비해 야권은 어느 한 지역에서도 안정적인 지지세를 굳히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에서조차 불안정한 상태이고, 국민의당은 20대 총선 당시 호남에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전국정당’ ‘수권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PK 출신 문재인 전 대표나 안철수 의원이 PK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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