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키 크는 주사’ 양방 주춤, 한방 약진

여아는 초경 늦추는 호르몬제 투여…정상아에겐 양·한방 모두 효과 불투명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07-25 16: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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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주부 A씨는 최근 아이가 생리를 시작해 깜짝 놀랐다. 키 146cm, 체중 34kg으로 또래보다 몸집이 작은 아이가 벌써 초경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A씨는 “여자아이의 경우 생리를 하면 머지않아 성장이 멈춘다고 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성장 전문 한의원을 찾았더니 경혈점에 주사로 한약 성분을 넣는 ‘약침시술’을 권하더라”고 밝혔다. 한의사는 약침을 맞으면 약재가 흡수되면서 경혈을 지속적으로 자극해 성장호르몬 분비량이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또 별도로 한약 복용도 권했다. 치료비는 한 달 60만 원 수준이었다. 키 158cm로 또래 평균보다 약간 작은 A씨는 “아이가 나중에 ‘엄마 때문에 키가 안 컸다’고 원망할까 봐 치료를 받게 해주고 싶긴 한데 과연 안전할지, 효과가 있을지 몰라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A씨처럼 특별한 계기가 없더라도 여름방학을 앞두고 자녀의 키 성장을 위해 병원을 찾는 이가 늘고 있다. 특히 성장치료를 전문 분야로 내세운 한의원이 많아지면서 한방치료를 고려하는 이가 늘어나는 추세다. 의약품 시장조사 전문기관 IMS 자료에 따르면 국내 성장호르몬제 시장 규모는 지난해 상반기 약 360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7% 정도 하락했다. 성장호르몬제는 일반적으로 양방 병원에서 저성장 어린이를 대상으로 치료 목적으로 사용한다.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한동안 팽창을 거듭하던 성장호르몬제 시장이 최근 정체 또는 축소되는 분위기”라고 말한다.



    한방주사가 양방보다 안전?

    이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한방 성장클리닉의 성장’이다. 한 양방 성장클리닉 원장은 “큰 키를 선호하는 사회적 인식이 여전하고 성장치료에 대한 관심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성장호르몬제 시장 성장률이 둔화된 건 최근 몇 년간 호르몬 치료의 부작용 등이 알려지면서 불안감을 느낀 부모들이 한의원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0년 프랑스에서는 성장기에 특정 성장호르몬 주사를 투여한 이의 사망률이 일반인보다 30% 이상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치료를 전문으로 한다는 일부 한의원은 ‘동의보감 용법’ ‘식물성분’ 등을 내세워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아이의 키를 키울 수 있다고 홍보한다. 서울에서 성장클리닉을 운영하는 한 한의사는 “동양의학의 성장치료는 우리 몸이 본래 가진 성장 잠재력을 북돋우는 데 주력한다. 혈액순환이나 기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체질을 바꿔 자연스럽게 키가 자라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성장 약침시술에 대해서도 “체내에 뭔가를 주입한다는 점에서 성장호르몬제 주사와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된 한약 성분을 소량 주사해 성장호르몬 분비를 돕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한약과 침술을 결합한 한방치료”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개별 한의원이 조제한 약물을 내복약이 아니라 주사제 형태로 사용하는 데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태다. 특히 양방 쪽에서 약침의 효능과 부작용 등이 검증되지 않았고, 제조 및 유통 등에 대한 관리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현행 약사법 제31조 1항에 따르면 의약품을 ‘제조(製造)’할 때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반면 약사법 부칙 제8조는 한의사의 경우 자신이 치료용으로 사용하는 한약 및 한약제제를 직접 ‘조제(調劑)’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약침은 식약처 허가 없이 제조, 사용되고 있다.

    한방 성장치료의 효능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성장클리닉을 표방하는 한 한의원 원장은 “아이에게 불면증이 있거나, 음식을 잘 안 먹거나, 체력이 약해 운동을 충분히 못하면 키가 안 큰다. 비만이나 축농증 등도 성장을 방해한다. 우리 병원에서는 이런 각각의 증세를 치료하고 체질에 맞는 운동법을 지도해 키를 키워준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러한 치료가 일반적인 한의원 치료와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성장치료제’라는 이름이 붙으면 약값이 보통 보약의 2~3배로 뛴다. 이에 대해 한 한의사는 “일부 의사가 아이의 키를 더 크게 해주고 싶은 부모 욕심을 이용해 부당이익을 취하기 때문”이라며 “아이가 잘 먹고 잘 자고 적절하게 운동하면 잘 큰다는 건 상식이다. 성장클리닉이라고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닌 만큼 병원 이름이나 광고에 현혹되지 말고 실력 있는 의사를 찾아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서울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소아과 전문의도 “지금 제약업계는 주사 형태의 성장호르몬제를 대체할 약을 개발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만약 한의학계에서 복용만으로 성장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물질을 알고 있다면 특허를 내고 그것을 제약사에 팔아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성장촉진 한약’이라는 게 실체가 없기 때문 아니겠나”라는 것이다. 이 소아과 전문의는 “양방에서 사용하는 성장호르몬제 역시 성장호르몬결핍증, 터너증후군, 만성신부전증 등 특정 질환으로 인한 성장장애에만 제한적으로 효능을 발휘한다. 일반 어린이에게 추가로 투여한다고 키가 더 자라는 약은 아니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식약처가 발행한 ‘성장호르몬 제제 안전하게 투약하기’ 안내서에도 ‘성장호르몬 제제는 정상인을 위한 키 크는 주사가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성장전문’ 클리닉 믿을 수 있나

    문제는 일부 성장클리닉이 ‘성장치료’라는 이름으로 ‘정상적인 키’가 아니라 ‘큰 키’를 바라는 어린이·청소년과 부모를 현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각종 의학적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소아과 전문의는 “최근 ‘여아는 생리를 하면 키가 안 큰다’며 임의로 호르몬제를 투여해 초경을 늦추는 처치를 하는 병원이 늘고 있는데, 이런 치료는 만 10세 이전에 초경을 하는 등의 경우에만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임의로 인체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건 장기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는 초경 후에도 1~2년 더 키가 크므로 그때 균형 있는 식사와 운동, 숙면 등을 통해 아이가 자연스럽게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밝혀둘 것은 취재에 응한 전문가 대부분이 실명을 밝히기를 꺼렸다는 점이다. 성장클리닉 산업이 급성장한 현실에서 ‘동종업계 관계자’들과 충돌하기를 원치 않는 듯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지난해 실시한 ‘제7차 한국인 인체지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20~24세 남성의 평균 키는 174.2cm, 여성은 160.9cm이다. 첫 조사를 실시한 1979년(남 167.7cm, 여 155.5cm) 결과와 비교하면 각각 6.5cm, 5.4cm 커졌지만, 4차 조사 때인 97년(남 171.3cm, 여 160.2cm) 수치와는 차이가 크지 않다. 심지어 20~24세 남성 평균 키는 5차 조사 때인 2003년(173.7cm)에 비해 6차 조사가 진행된 2010년(173.5cm) 다소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남성 174cm 안팎, 여성 161cm 안팎이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자랄 수 있는 평균 키의 최대치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이를 기초로 자녀의 성장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소아과 전문의는 “아이의 키가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되는 건 맞다. 하지만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환경의 영향이 지나치게 과장돼 알려지고 있다”며 “성장치료를 받으면 키가 약간 더 자랄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몇 cm를 키우려고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의료적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아이가 골고루 먹고 적당히 운동하면서 자신의 키에 만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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