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4

2016.02.03

국제

경제제재 해제, 들뜬 테헤란을 가다

“몰려오는 글로벌 기업, 한국에겐 기회이자 위기”

  • 전승훈 동아일보 특파원 raphy@donga.com

    입력2016-02-02 10: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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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은 ‘사막과 낙타’의 나라다?

    1월 21일 수도 테헤란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이런 편견은 여지없이 깨졌다. 서울 남산이나 북한산처럼 테헤란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해발 3800m의 엘부르즈 산에는 흰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6월까지 만년설이 녹지 않는 이곳 스키장에서는 여성들도 히잡을 벗고 스키복만 입은 채 스키를 즐긴다.
    엄격한 이슬람 보수주의인 ‘와하비즘’을 표방한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와 달리 시아파인 이란에서는 승용차를 운전하는 여성이 남성 택시운전사와 거친 말싸움을 할 정도로 여성이 소극적이지 않았다. 또한 이란에서는 외국인들에게 교회, 성당, 사찰에서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다. 주말(금요일)에 교포들을 만나고자 찾아간 테헤란 한인교회의 역사는 42년이나 됐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테러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점. 정규 군인이나 경찰 외에도 이슬람 정권의 친위부대인 혁명수비대(12만 명), 직장과 학교 등에 배치된 바시지 민병대(150만 명) 등 다양한 종류의 비밀요원들이 사복을 입고 곳곳에서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이 때문에 중동국가로서는 드물게 자살폭탄 테러나 총기 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다. 완벽한 치안과 통제는 이란 젊은이들을 숨 쉴 수 없게 만들지만, 서방 경제제재 해제로 몰려드는 외국 기업인이나 관광객들에겐 가장 큰 매력이다.
    1월 23일 오전 테헤란 북부에 있는 국제상설전시회장. 요즘 이란에서 가장 많은 글로벌 비즈니스맨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날 총 5개 전시장에서 가구 및 인테리어 박람회가 열렸다. 독일 산업용 플라스틱(PVC) 제조업체 레놀리트의 마크 맥도나그 중동담당 세일즈디렉터는 “오랜 제재를 겪었던 이란에서 요즘 최고의 붐은 주택 리모델링”이라고 말했다.



    “특A급 아니면 경쟁 안 된다”

    인구 8000만 명의 이란은 소비품의 5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위해서는 연간 240억 달러(약 29조 원) 이상의 원료와 완제품 등을 수입해야 한다. 도로엔 기아자동차 프라이드와 비슷한 차량이 자주 보였다. 기아자동차는 이란에서 프라이드 조립공장을 운영하다 2005년 현지 기업에 시설을 넘기고 철수했다. 이후 현지 기업이 프라이드를 ‘사바’라는 모델명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란 자동차의 40%가 사바다.   
    경제제재로 서구 기업이 들어올 수 없던 이란엔 유명 브랜드를 모방한 ‘짝퉁’ 영업점이 많다. 테헤란 최대 쇼핑몰인 ‘하이퍼스타’는 6년 전 프랑스 할인점 까르푸가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인력과 시설을 이란으로 그대로 옮겨와 지은 쇼핑몰이다. LG전자, 삼성전자 등 한국산 가전제품뿐 아니라 뷔페식으로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식품코너 등은 한국식 할인매장 형태 그대로다. 경제제재 해제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주말 밤에는 사람들이 밀려다닐 정도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미국 KFC를 모방한 듯한 치킨 전문 패스트푸드점 ‘SFC’ 영업점에도 젊은 연인이나 가족단위 손님이 가득했다. 이곳에서 만난 마쉬(24·여·디지털광고 디자인 회사) 씨는 “앞으로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한국에서 많은 투자가 들어오면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도 더 많아질 것”이라며 “맥도날드, KFC, 스타벅스 등 서구의 ‘오리지널’ 브랜드도 직접 들어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은 2007년 이후 달러화 결제가 막혔지만 유로화에 이어 원화 결제 시스템을 활용해 교역을 계속해왔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제품은 이란 가전시장의 70%를 차지한다. 이란의 수입 상대국 가운데 한국은 중국과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3위다. 그러나 2011년 이란 경제제재가 강화되면서 이란과 거래하던 한국 기업도 약 3000개에서 현재 2200여 개로 줄었다.
    KOTRA(대한무역진흥공사)가 문을 연 테헤란 코리아 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난 한국 기업인들은 “이란 경제제재 해제는 기회이지만, 위기이기도 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란 경제제재가 강화되면서 서방 기업들이 철수한 기간 한국은 가전과 자동차 등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렸으나, 이제는 글로벌 기업인들과 무한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경제제재 후 수혜를 입을 국가로 중국, 독일, 프랑스를 꼽았다. 한국의 경우 높은 기술력이라는 좋은 이미지가 있지만 대규모 자금 동원 능력에 의문이 있다는 평가였다. 이란 산업용 포장기계 생산업체인 자린 파르스의 모흐센 알리모하마디 부회장은 “이란 소비자들은 그간 어쩔 수 없이 값싼 물건을 샀지만, 이제는 새로 들어오는 유럽의 질 좋은 제품에 열광하고 있다”며 “한국산이나 중국산 제품은 특A급 품질이 아니면 경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테헤란국립대에서 만난 포아드 이자디 교수(국제관계학)는 “이란은 그 자체로도 8000만 명의 인구대국이지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인접국에 살고 있는 3억 명 소비시장의 물류 중심지이기도 하다”며 “한국이 기술합작 투자를 통해 이란을 중동 생산과 유통 전진기지로 만드는 장기적 프로젝트에 나서줬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한류 바람, 도움 될까

    중국은 경제제재 기간에도 테헤란 지하철 공사를 진행했고, 2014년에도 원유 수입과 교역 규모가 520억 달러(약 62조3480억 원)에 달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1월 23일 이란을 방문해 에너지, 사회간접자본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약속했다. 그러나 중국의 이 같은 행보에 이란 기업인들의 눈길이 곱기만 한 것은 아니다. 중국이 자국 자재와 노동력, 값싼 물건을 통째로 들여와 이란 자체 제조업시장과 청년 일자리 기반을 붕괴시켰기 때문. 테헤란공대 1학년인 후세인(19) 씨는 “경제제재 해제로 서방 기업들의 상품들이 몰려와 이란 기업이 모두 죽는다면 청년 일자리는 오히려 나빠질 것”며 “한국 등 글로벌 기업이 합작투자로 이란 제조업과 함께 ‘윈윈(win-win)’하는 전략을 펴달라”고 말했다.
    이란과의 경제교류 재개에는 최근 이곳에서 불고 있는 한류 바람이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09년 이란 국영TV를 통해 소개됐던 송일국 주연의 ‘주몽’과 이영애가 나온 ‘대장금’은 시청률이 85〜90%가 넘는 등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후 줄줄이 이어진 인기는 현재 방영 중인 공효진, 이선균 주연의 ‘파스타’까지 연결되고 있다.
    이번 경제제재 해제를 필두로 향후 5년 내 무기금수 제재, 8년 내 탄도미사일 제재가 끝나는 등 향후 10년 안에 이란에 대한 모든 국제제재는 풀린다. 김승호 주이란대사는 “이란에 대한 리스크가 모두 사라지길 기다린다면 너무 늦을 것”이라며 “한국인들의 관심과 관광 교류 확대를 위해 먼저 나영석 CJ E&M 프로듀서에게 전화를 걸어 ‘꽃보다 청춘’이나 ‘꽃보다 할배’ 팀을 유치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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