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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 백승호에 특명, “출전 기회 잡아라”

선택의 기로에 선 어린 국가대표 선수들

  • 홍의택 축구칼럼니스트

    releasehong@naver.com

    입력2019-07-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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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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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유럽축구가 슬슬 기지개를 켠다. 5월 중하순 휴식기에 접어든 이들은 이달부터 팀별 일정에 돌입한다. 한국 국적의 유럽파도 하나둘 출국하는 추세다. 앞으로 몇 주간 단내 나는 체력 훈련과 연습 경기로 새로운 시즌을 준비할 전망. 

    이번 여름은 꽤 바쁜 편이었다. 제대로 못 쉬고 이미 현지로 떠난 이도 여럿이다. 특히 독일 분데스리가가 그랬다. 권창훈(25)과 정우영(20)은 SC 프라이부르크라는 낯선 팀에서 한솥밥을 먹게 됐다. 복잡한 협상 끝에 마침내 서명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이제 눈길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향한다.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골든볼을 따내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강인(18), 6월 FIFA A매치에서 이란을 상대로 환상적인 데뷔전을 치른 백승호(22)도 결정의 순간이 왔다. 기존 팀에 계속 머물지, 아니면 새로운 팀을 찾아나설지가 앞으로 몇 주 안에 판가름 난다.

    이강인도 모르는 자신의 거취

    6월 18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 참석한 FIFA U-20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

    6월 18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 참석한 FIFA U-20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

    이강인의 거취는 뜨거운 관심사였다. 그간 FIFA 주관 대회에서 이토록 강렬했던 한국 선수가 없었던 게 사실.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한국 나이 고3으로 아직 어리지만 “한국 축구의 미래” 운운하는 팬이 적잖다. 미디어도 이에 맞춰 춤췄다. U-20 월드컵 후 귀국한 그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이강인은 개인 인터뷰나 방송 출연 등을 대부분 고사했으나, 공식 행사에서만큼은 입을 열어야 했다. 

    반응은 줄곧 ‘모르쇠’. 이강인은 7월 1일 U-20 대표팀의 마지막 일정인 격려금 전달식에서도 확실히 선을 그었다. 취재진의 물음에 “할 말 없다. 어느 팀에서든 최선을 다하겠다”며 한 발 뺐다. 또 “언제 결정될지 나도 모른다. 지금 여기서 팀 이적, 잔류에 관해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고 의연하게 대처했다. 실제 사석에서도 “제가 스페인으로 들어가봐야 모든 게 풀릴 거 같다”고 털어놨다. 



    고민은 ‘선수라면 뛰어야 한다’는 격언에서 시작된다. 축구뿐 아니라 모든 종목을 통틀어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말. 신체를 움직여 수행하는 스포츠에는 일종의 리듬이란 것이 존재한다. 흔히 일컫는 ‘실전 감각’과 같은 맥락이다. 입지 경쟁을 힘겨워하는 이들이 낮은 팀, 낮은 리그로 이적을 강행하는 이유도 제대로 뛰지 못해 사라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특히 이강인 같은 10대 후반 선수에게는 더더욱 중요하다. 

    아직은 더 커야 할 나이다. 전문가들은 바르셀로나 3인방 백승호, 이승우(21), 장결희(21)의 성장세가 기대보다 더뎠던 결정적 원인을 FIFA 징계에서 찾곤 한다. 이들은 3년 동안이나 소속팀 공식전을 뛰지 못했다. 소위 ‘프로 물’을 어느 정도 먹어야 생기는 자신만의 요령이 있을 리 없었다. U-20 대표팀을 우려하는 것도 이 대목에서다. 세계 2위를 차지했다 해도 소속팀에서 뛰지 못한다면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할 개연성이 농후하다. ‘원 팀’으로 이룬 성과와 별개로, 개개인이 발전하지 못한다면 금세 실종되는 게 이 바닥이다. 

    김학범 U-23 대표팀 감독의 한마디에도 뼈가 있었다. “20세와 23세는 완전히 다르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금메달이라는 쾌거에 이어 내년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는 김 감독은 이번 U-20 월드컵 선전에 조금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발전 속도가 떨어진다면 완전체의 결과물이 나와야 할 성인 단계에서 비교 우위에 서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강인도 향후 1~2년이 무척 중요하다. 역대 U-20 월드컵 골든볼 수상자인 리오넬 메시, 폴 포그바, 세르히오 아궤로 등은 세계적인 스타가 됐지만, 이만큼 빛을 보지 못한 현역 선수도 숱하다.

    관건은 뛰면서 성장할 기회

    발렌시아 CF에서 뛰는 이강인. 계약이 끝날 때까지는 이적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동아DB]

    발렌시아 CF에서 뛰는 이강인. 계약이 끝날 때까지는 이적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동아DB]

    실제 이강인도 ‘뛰어야 산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강인은 지난겨울 1군 선수가 됐다. 지난해 여름 프로 계약을 맺을 때 2군(3부 리그 소속)으로 등록해 실전을 소화하고, 한 시즌 뒤 1군(1부 리그 소속)으로 올라가는 조항을 삽입한 바 있다. 승격 시 바이아웃 금액(구단이 선수의 이적을 막을 수 없는 금액)이 2000만 유로(약 263억 원)에서 8000만 유로(약 1053억 원)로 뛰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강인의 광폭 행보에 발렌시아 CF 측은 급해졌고, 합의 하에 이 시기를 반년 앞당겼다. 적은 금액으로 탐내는 구단들의 관심을 원천 봉쇄하기 위함이었다. 제도상 1군 등록 선수는 2군 경기를 뛸 수 없다. 1군에서도 잠재력을 보인 이강인이지만, 부상자들의 복귀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이강인이 1군 신분으로 나선 실전은 석 달 동안 총 3경기 48분에 불과했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서 몸 상태도 많이 떨어졌다. 4월 말 발렌시아에서 나와 U-20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풀타임을 온전히 소화할 정도도 안 됐다는 전언이 있었다. 그만큼 지속적인 출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본인도 이미 마음속으로 준비해왔다. 10대의 어린 선수가 1부 리그에서 꾸준히 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다른 나라 1, 2부 리그행도 염두에 둔 바 있다. 최근에는 같은 지역 연고팀 레반테 UD와 자주 엮인다. 이강인의 현지 자택과도 얼마 안 떨어져 적응이 수월하리라는 장점이 있다. 

    팀 고민은 백승호도 마찬가지다. 백승호는 FIFA 징계의 후유증을 딛고 서서히 감을 찾아가고 있다. 바르셀로나 유스팀에서 7년간 생존한 퀄리티를 서서히 구현해내고 있는 것. 지로나 FC로 이적한 뒤 본격적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렸고,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서 네 번째 경기 만에 첫 출격 명령을 받았다.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다. 성인 단계에 내디딘 첫발은 더할 나위 없었다. 청소년 대표보다 중압감이 큰 위치에서 증명해 보인 실력은 선수 개인에게도 굉장한 동기 부여가 됐을 테다. 다만, 한 차례 반짝하고 말 것인지, 9월부터 시작될 2022 카타르월드컵 예선에서도 계속 뛸 수 있을지는 소속팀에서의 활약 여부에 달렸다.

    고생 끝에 낙이 온 백승호

    지로나FC의 백승호. [동아DB]

    지로나FC의 백승호. [동아DB]

    는 시즌은 2부 리그에 참가한다. 그 자체로는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다. 1부 리그에서 어정쩡하게 뛰느니 내실을 찾는 편도 괜찮다. 이청용(31), 이재성(27) 등이 독일 2부 리그를 누비는 것처럼 말이다. 더욱이 과거 바르셀로나 수석코치로 백승호에 대해 잘 아는 후안 카를로스 운수에가 얼마 전 지로나 지휘봉을 잡은 것도 플러스 요소다. 

    다만 맨체스터 시티 FC(맨시티) 등을 소유한 시티풋볼그룹이 지로나 구단의 지분을 절반가량 확보했다는 사실이 중대 변수다. 지난해 여름처럼 갑질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지로나는 맨시티 소속 더글라스 루이스를 어쩔 수 없이 임대로 받아야 했고, 제한된 비유럽 쿼터 속 백승호가 희생양이 됐다. 팀 동료의 부상이 없었다면 백승호는 꼼짝도 못 한 채 2군으로 3부 리그만 전전할 뻔했다. 

    선택 폭은 조금 넓은 편이다. 백승호 역시 지난겨울 1군 승격의 기회가 있었다. 구단 측에서 1군 등록 조건으로 처우 개선이 포함된 장기 재계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선수 소유 기간이 늘어날 경우 주도권은 구단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에 대비해 밀고 당기며 시기를 늦췄고 계약이 1년밖에 남지 않은 현재, 시간은 선수 편이다. 

    프로세계라는 게 정말 어렵다. 단순히 공만 잘 차 될 일도 아니다. 복잡하게 얽힌 모든 조건을 따져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 판단 하나가 예기치 않게 선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더욱이 축구 선진지에서 변방 출신 아시아 선수로 살아남기가 이토록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스페인에서도 좋은 소식이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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