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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합의 결렬은 미국의 준비된 ‘빅픽처’였나

북한과 김정은의 내공, 남북관계를 알아보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

하노이 합의 결렬은 미국의 준비된 ‘빅픽처’였나

2월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 마지막 회담 자리에 나타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맨 왼쪽). 그의 깜짝 등장이 있은 뒤 미국은 하노이 합의 결렬을 선언했다. [뉴시스]

2월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 마지막 회담 자리에 나타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맨 왼쪽). 그의 깜짝 등장이 있은 뒤 미국은 하노이 합의 결렬을 선언했다. [뉴시스]

‘하노이 노딜’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대장 K씨는 “그래도 하늘이 대한민국을 버리지 않았다”고 평가했지만, 다른 시각을 가진 이들도 적잖다. ‘노딜’의 충격을 솔직하게 표현한 이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일 것이다. 

하노이 회담이 있기 전 그는 C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이 회담을 “짜고 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조야의 반대를 의식해 갈등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상 북한과 이미 합의했고, 문재인 대통령과도 이견이 없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듯 보였다. 그런데 합의 결렬 뒤 열린 국회 민주평화국민연대의 전문가 초청 간담회에서 정 전 장관은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매우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볼턴이 회담을 깨는 악역을 담당했다”고 비판했다.


갑작스러운 볼턴의 등장과 노란 봉투

볼턴 보좌관은 정상회담 둘째 날 마지막 회담 자리에 노란 봉투를 들고 처음 등장했다. 이 회담 후 미국은 합의 결렬을 발표했다. 그사이 트럼프 대통령의 비스트는 공항으로 달려갔고, 트럼프 대통령을 태운 미 공군 1호기는 베트남을 떠나버렸다. 비행 중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중재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볼턴 보좌관의 등장에서부터 미 공군 1호기 이륙까지 ‘놀라운 일’들이 물 흐르듯 매끄럽게 펼쳐진 것이다. 이어 한미 국방부 장관이 한미연합훈련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사실 하노이 회담이 ‘짜고 치는 것’이라는 기대는 적잖았다. 이러한 기대는 회담 첫날인 2월 27일 미국 인터넷방송 복스가 하노이 회담 잠정 합의문을 입수했다고 보도하면서 한국에서 특히 증폭됐다. 잠정 합의문의 내용은 북한과 미국이 영변 핵시설 폐쇄와 대북제재 완화에 합의했다, 북·미는 평화협상을 하면서 연락사무소 설치를 논의한다, 미국은 한국이 주도할 남북경협을 위해 대북제재 완화를 추진하고, 북한은 미군 유해를 송환한다는 것이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해온 협상 과정을 보면 이러한 합의는 당연한 것 같았다. 이 때문에 공신력이 적은 인터넷방송의 보도임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볼턴이 나타난 후 결렬이 공표됐으니, 합의를 원했던 쪽은 볼턴을 공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달랐다. 평생 해외공작을 해온 전직 국가정보원 직원은 합의 결렬 직후 이런 의견을 밝혀왔다. 



“‘빅픽처’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빅픽처는 상대의 전략과 의도를 분쇄하는 것으로, 대상은 적뿐 아니라 같은 편일 수도 있다. 복스 뉴스가 잠정 합의문을 입수했다는 것이 특히 그렇다. 하노이 회담이 있기 전 북핵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빅딜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하면 공(功)이 곧 잊히니 트럼프는 탄핵 위기를 벗어나 재선하는 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따라서 시간을 갖고 스몰딜을 거듭하며 계속 해결해가는 모습을 보여야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는 잠정 합의문대로 합의가 되기를 바란 세력들이 만든 장밋빛 환상이었다.” 

복스 뉴스의 보도가 있은 후 미국에서는 이 합의를 비난하는 여론이 높았다. 탄핵을 피하고 재선에 도전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 반발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급한 쪽은 북한이니 그는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볼턴 보좌관이 그러한 설명을 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폼페이오 장관도 반대할 이유가 없으니 합의 결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북한 비핵화에 부정적 판단 내놓은 정보기관장들

하노이 회담 잠정 합의문을 최초로 보도했던 미국 인터넷방송 
복스 홈페이지. [vox.com 화면 캡처]

하노이 회담 잠정 합의문을 최초로 보도했던 미국 인터넷방송 복스 홈페이지. [vox.com 화면 캡처]

그동안 미국 정보기관장들은 한결같이 북핵에 대해 비관적인 의견을 밝혀왔다. 하노이 회담이 결정된 직후인 1월 29일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WMD(대량살상무기) 역량을 유지하려 하고 핵무기 및 생산 능력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고자 부분적 비핵화 조치에 대한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애슐리 미 국방부 국방정보국(DIA) 국장은 “1년 전 존재했던 (북핵) 역량과 위협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고 증언했고,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다. 모두 하노이 회담에서 나올 수 있는 합의에 반대 의견을 밝혀놓은 것이다. 

그러자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향해 ‘학교로 다시 돌아가 배우고 오라’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최상이다’라는 트위트를 날렸다. 그리고 ‘(북한) 비핵화를 위한 상당히 괜찮은(Decent) 기회’라며 ‘북한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미국 정보기관장들을 비판하는 의견이 나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정보기관 당국자가 의회 청문회에서 주장하려면 휴민트(인적정보), 통신정보, 첩보위성 등에 근거해 판단해야 한다”며 “미 정보수장들이 드러낸 대북 불신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을 돌려놓고자 미국 정보기관들이 ‘빅픽처’를 그려 성공했다는 것이 전직 국가정보원 해외공작 책임자의 의견인 것이다. 그는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북한 내공은 물론이고, 남북한 관계까지도 한꺼번에 살펴보기 위해 직접 ‘큰 그림’에 참여했을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미국 정보기관장들의 청문회 증언이 있은 다음, 2월 15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하노이 회담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희한한 발언을 했다. 그는 갑자기 “아베 총리가 ‘삼가 일본을 대표해 당신에게 노벨평화상을 줄 것을 (스웨덴 쪽에) 추천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2월 1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자신을 추천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발언’은 사실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일본 언론들은 추가 취재를 통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후인 지난해 가을 미국 측이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으면 좋겠다는 의뢰가 있었다. 추천 마감이 2월이었기에 아베 총리는 추천을 했고, 5장 정도인 추천서 사본을 미·일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김 위원장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북·미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다는 건 사실 모순된 행동이다. 일본은 그러한 모순을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을 추천한 이유로 “교착된 한반도 비핵화와 일본인 피랍자 문제의 타개, 그리고 미·일 통상교섭에 탄력을 붙이고 싶다는 목적이 있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미·일 정상의 역할분담 합의?

일본 정부는 2월 1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추천한 것은 사실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뉴시스]

일본 정부는 2월 1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추천한 것은 사실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뉴시스]

하노이 회담이 시작된 2월 27일 아베 총리는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를 만나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일본인 피랍 문제가 어떻게 의견이 교환될 것인지를 주시하겠다” “일본은 이 회담 시작 전 ‘대북지원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했다”고 밝힌 것이다. 아베 총리의 대북지원 불참 태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노딜 직후 아베 총리와 전화통화에서 “김정은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일본인 피랍자 문제를 꺼냈더니 김정은이 당황해하더라”는 말을 전했다. 이러한 사실은 하노이 회담이 있기 전 미·일 정상이 역할 분담에 대한 모종의 합의가 있었다는 암시가 된다. 한 관계자는 “정보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상황에서는 눈치를 챘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특파원을 수차례 지낸 전직 언론인 J씨는 “CNN을 비롯한 반(反)트럼프 성향의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에 합참의장을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을 맹비난했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다. 따라서 세계 어디를 가든 위기가 발생하면 미군을 지휘해야 한다. 이에 대한 자문을 얻기 위해 대통령은 합참의장을 대동하고 다닌다.


“인도태평양사가 움직인다”

과거 한미연합훈련 때 동해에 전개된 미군 세력. 한미는 연대급 이상의 한미연합훈련 취소를 결정했는데, 이는 미국의 한반도 작전을 인도태평양사가 담당하게 됐다는 의미일 수 있다. [뉴시스]

과거 한미연합훈련 때 동해에 전개된 미군 세력. 한미는 연대급 이상의 한미연합훈련 취소를 결정했는데, 이는 미국의 한반도 작전을 인도태평양사가 담당하게 됐다는 의미일 수 있다. [뉴시스]

CNN 등은 북한 비핵화를 논의하는 하노이 회담에 트럼프 대통령이 합참의장도 대동하지 않았으니 엉터리라고 비난한 것이다. 여기서 J씨는 “거꾸로 보면 합참의장을 대동하지 않은 것은 김 위원장과 합의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는 방증이 아닐까”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미국은 대통령 마음대로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다. 의회의 견제와 협조를 받아야 하고, 정보기관의 정치 중립화도 보장된 나라다. 미국 정보기관장들이 ‘북한이 비핵화할 뜻이 없다’고 누차 밝혔는데도 왜 주미 한국대사관과 외교부는 무시했는가. 문 대통령이 원하는 정보만 제공하는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나 집단 사고(group think)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면 이는 한국 외교의 참패”라고 비판했다. 

한 예비역 장성은 합의 결렬 후 미국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밝힌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북한 침공을 격퇴한 후 반격하는 임무는 한미연합사의 몫이었기에 연합사 주도로 훈련을 해왔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한미연합훈련에 미온적이라 보고 이런 훈련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한반도 작전을 인도태평양사의 몫으로 돌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인도태평양사는 연습이나 작전계획을 한국군에 알릴 의무가 없다. 최근 중국이 동해에 함정과 항공기를 자주 출동시키는 것은 인도태평양사가 한국에 통보하지 않고 전력을 보내기 때문이다. 우리도 자체 탐지망으로 동해에 들어온 미국 전력을 알고 있겠지만, 모르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미국이 대북 압박을 위해 단독 작전을 준비하는 것이 득인지 실일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9.03.08 1179호 (p42~45)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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