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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에서 핫이슈로 떠오른 ‘캐러밴’의 역설

중동의 부유한 隊商에서 남미의 가난한 난민 행렬로

미국 정치에서 핫이슈로 떠오른 ‘캐러밴’의 역설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오른쪽)과 짐 아코스타 CNN 기자가 설전을 벌이고 있다. [유튜브 캡처]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오른쪽)과 짐 아코스타 CNN 기자가 설전을 벌이고 있다. [유튜브 캡처]

11월 6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중간선거 결과가 엉뚱한 데로 불똥이 튀었다. CNN의 백악관 수석 출입기자가 출입정지 징계를 받은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화당이 상원 수성에는 성공했지만 하원에선 야당인 민주당에게 완패했음이 뚜렷해진 7일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벌어진 ‘캐러밴 논쟁’ 때문이었다. 

캐러밴(caravan)은 원래 대상(隊商)을 뜻한다. 사막과 황야를 가로지르면서 여러 가지 위험에 대처하고자 길게 무리지어 이동하는 상인을 뜻하는 영어 단어다. 페르시아어 카르반(Ka‚rva‚n), 또는 카이라완(Qairawa‚n), 카이루완(Qairuwa‚n)에서 기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일대의 유목민 출신 상인 무리를 일컫는 용어였기 때문이다. 

문헌상으로는 히브리성경 창세기 편에 요셉의 형들이 이집트로 가는 대상에게 요셉을 파는 장면이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지중해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오가며 향신료와 비단, 보석 같은 고급 물품의 교역을 이끈 캐러밴이 유명했다. 그래서 캐러밴은 모험과 일확천금의 상징이기도 했다.


부유한 상인에서 가난한 난민으로

멕시코 국경지대에 몰려든 캐러밴. [AP=뉴시스]

멕시코 국경지대에 몰려든 캐러밴. [AP=뉴시스]

그런데 이 단어가 21세기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서는 반대 의미를 띠게 됐다. 과테말라나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에서 무리를 지어 도보나 차량으로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진입하려는 난민 행렬을 뜻하게 됐기 때문이다. 자국에 만연한 마약, 폭력, 살인 등의 범죄와 정치적 박해, 그리고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아메리칸드림을 찾아 무작정 미국행에 나선 가난한 사람들이다. 

2013년부터 시작된 캐러밴은 2018년 들어 급증했다. 특히 올해 10월 온두라스에서 출발한 캐러밴이 수천 명으로 불어나 미국으로 향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9년 군부 쿠데타 이후 발생한 극심한 빈곤과 범죄가 이들의 등을 떠민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온두라스에서 하루 2150원 이하로 생활하는 빈곤층의 비율은 2016년 60.9%에 이르며, 살인율도 2017년 10만 명당 43.6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들 캐러밴을 미국에 대한 침공(invasion)으로 규정했다. 10월 1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를 통해 “멕시코가 이 같은 맹공격을 중단시킬 수 없다면 미군을 소집하고 남쪽 국경을 폐쇄할 것”이라고 했다. 22일엔 캐러밴 행렬에 “범죄자들과 알 수 없는 중동인들이 섞여 있다”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캐러밴의 어원을 낳은 사람들이 남미 캐러밴 이야기에 갑자기 끼어든 것이다. 급기야 29일에는 “이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이고 우리 군대가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지난 대선에서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반(反)이민 정서에 기댄 표몰이 발언이라는 비판이 대두됐고 실제 선거에서 거센 역풍을 맞았다. 

선거 다음 날인 11월 7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짐 아코스타 CNN 기자는 “선거에서 이기려고 이민자들을 의도적으로 악마화한 것 아니냐”며 그 점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처음엔 “당신과 나는 의견이 다르다”고 대응하던 트럼프 대통령도 흥분해 “국가운영은 나에게 맡기고 당신은 CNN이나 운영하라. 운영을 잘하면 시청률이 올라갈 것”이라는, 논점 이탈의 비난 발언을 했다. 그리고 다른 질문을 받으려는데 아코스타 기자가 러시아와 트럼프의 연계설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삿대질까지 해가며 “당신은 무례하고 끔찍한 사람”이라는 인격 모독성 발언을 퍼부었다. 

백악관 측은 기자회견 직후 마이크를 뺏으려 하던 여성 진행요원과 승강이를 벌이다 무리한 신체 접촉이 있었다며 아코스타 기자의 백악관 출입을 정지시켰다. 하지만 아코스타 기자는 “거짓말”이라며 즉각 반발했고, CNN은 11월 13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 위반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등을 상대로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4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뿐 아니라 보수성향의 폭스뉴스 등 13개 주요 언론사가 CNN 지지를 발표했지만 백악관은 맞고소에 나서며 언론과 전면전을 선포했다. 

사실 중남미 캐러밴은 미국 사회에 직접적 위협으로 다가서지는 않고 있다. 아코스타 기자의 말처럼 그들은 미국 국경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럼에도 최고권력기관과 주요 언론사 간 건곤일척의 기 싸움으로 비화하고 있다.


영화 ‘위플래쉬’의 엔딩곡 ‘캐러밴’

영화 ‘위플래쉬’의 한 장면. [사진 제공 · 쇼박스]

영화 ‘위플래쉬’의 한 장면. [사진 제공 · 쇼박스]

그날 당일 상황만 보면 아코스타 기자가 다소 무례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역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가짜뉴스’나 생산하는 엉터리 언론사 기자라며 집요한 시달림을 겪고 있었다. 아코스타 기자는 기자의 유일한 무기인 질문을 통해 최고권력자에게 도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논점 이탈과 조롱, 인격 모독으로 스스로 게임 규칙을 무너뜨렸다. 그러고선 아코스타 기자에게 레드카드까지 내밀었다. 

이를 보면서 영화 ‘위플래쉬’(2014)가 떠올랐다. 최고 드러머를 꿈꾸던 음대 신입생 앤드루(마일스 텔러 분)는 음대생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폭군 플랫처 교수(J. K. 시먼스 분)의 눈에 들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지만 실컷 농락만 당하다 토사구팽된다. 자퇴한 앤드루에게 그 일 이후 학교를 떠난 플랫처가 다가와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준다. 그 미끼를 문 앤드루는 연주회장에서 그것이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플랫처의 또 다른 ‘갑질’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앤드루는 물러서지 않고 자신이 연습했던 이국적인 선율의 곡을 미친 듯이 연주해 동료 연주가와 관객은 물론, 지휘자인 플랫처까지 감복하게 만든다. 그때 앤드루가 연주한 곡이 바로 1936년 후안 티졸과 듀크 엘링턴이 함께 작곡한 스탠더드 재즈곡 ‘캐러밴’이다. 

영화에서 위플래쉬는 중의적 뜻을 지닌다. 플랫처로 상징되는 ‘채찍질’이란 뜻과 앤드루가 마지막에 보여준 ‘신들린 듯 빠른 드럼채질’이란 뜻이다. 백악관발(發) ‘캐러밴’ 연주에선 누가 전자고, 누가 후자일까.




주간동아 2018.11.16 1164호 (p6~7)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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