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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문제 해결 열쇠는 부동산

아이 낳고 싶게 만들려면 주거 문제부터 해결해야

  • 입력2018-07-17 11: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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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측면에서 한국 사회에 가장 위협적 요소는 고령화보다 저출산이다. 지나치게 빠른 듯한 노령화 지수 상승 속도는 사실 저출산으로 청소년이 더 빠르게 줄어들어 나타나는 착시 현상이다. 따라서 저출산 문제가 해결돼 젊은 층 인구가 늘어나면 자연스레 고령화 속도도 늦춰진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에 2006년부터 지금까지 120조 원을 쏟아부었으나 출산율은 여전히 하향곡선을 그린다. 

    청년층은 미래가 보여야 출산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두 달 전 양가 부모에게 딩크(Double Income No Kids) 선언을 한 김모(34) 씨는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 출산은 곧 세상에 아이를 초대하는 일인데, 지금 내 삶보다 아이의 삶이 더 나으리라는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고 밝혔다. 

    저출산 문제는 부동산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풀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식주 가운데 의와 식은 해결했으나,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출산은커녕 가정을 꾸리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청년층이 많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것들은 불만만 많다고?

    한 병원 신생아실 모습. 지난해 한국은 출산율 최저기록을 경신했다. [동아DB]

    한 병원 신생아실 모습. 지난해 한국은 출산율 최저기록을 경신했다. [동아DB]

    지금 아이를 낳으면 20년은 지나야 이들이 다른 인구를 부양할 수 있다. 그런데 연금 등을 포함한 다른 여건을 감안할 때 한국은 아이들의 성장을 기다릴 여력이 있다. 국민연금공단과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40년까지 국민연금은 흑자 경영이 가능하다. 게다가 노년 인구의 취업률 및 재산 사정도 다른 나라에 비해 좋은 편이다. 즉 인구 문제를 해결하려면 출산율을 높이면 된다. 하지만 젊은 층은 한국에서 살기 힘들다며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 

    객관적 지표만 놓고 봤을 때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살기 좋은 나라다. 유엔 가입국의 생활 수준 및 환경을 평가한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지수(HDI) 조사에서 한국은 18위에 올랐다. 프랑스, 벨기에, 핀란드 등 유럽 복지국가는 각각 21, 22, 23위로 한국보다 아래 순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삶의 만족도가 낮은 편이다. 교육, 의료, 삶, 직업, 안전, 선택의 자유 등 6개 영역의 만족도를 조사한 HDI 만족지수는 10점 만점에 5.8점을 기록했다. 고도성장 국가인 상위 51개국 가운데 한국보다 낮은 점수를 기록한 나라는 그리스, 에스토니아, 아르헨티나, 슬로바키아 등 9개국이다. 한국이 가장 낮은 만족도 점수를 기록한 영역은 교육이다. 한국의 교육 수준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49점으로 칠레(41점)를 제외하고는 고도성장 국가 가운데 한국보다 낮은 점수를 기록한 나라는 없다. 

    불만에는 이유가 있었다. HDI에는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빠져 있다. 불평등 지수까지 추가해 다시 계산한 통계를 IHDI라 한다. 불평등 지수를 합산하면 한국의 순위는 크게 떨어진다. HDI를 IHDI로 전환했을 때 한국의 순위는 19단계 떨어진 37위. 고도성장 국가 가운데 하위에 속한다. 한국 순위가 이토록 떨어진 이유는 역시 교육 때문. 교육 불평등 지수(낮을수록 불평등)가 0.645로 51개국 중 최하위다. 

    HDI에서 한국의 교육 점수는 높은 편이다. 고등교육 진학률은 95%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외에도 ‘정부의 교육 관련 지출’ ‘교사 1명당 맡은 학생 비율’ 등에서도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이처럼 높은 교육 성과에도 교육 불평등 지수가 높게 조사된 이유는 교육에 쏟은 비용에 따라 교육 성취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즉 교육에 많은 비용을 투입할 수 있어야 좋은 직업 등 높은 성취가 담보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녀 세대의 학벌은 아버지 세대의 경제적 지원과 비례했다. 2011년 한국교육개발원이 교사, 교수, 연구원 등 교육 전문가 49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가정의 경제적 수준과 무관하게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다’는 문항에 응답자의 68%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대기업 직장인 박모(31) 씨는 “내가 지금 19세로 돌아가 대입을 치른다면 내가 졸업한 대학은커녕 서울 안에 있는 4년제 대학에도 못 갔을 것이다. 그만큼 해마다 사교육 수준에 따라 학벌과 미래가 결정되는데, 내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줄 자신이 없다”고 밝혔다.

    낳을 아이에게 부끄러운 세상

    청년층은 자신의 삶은 물론, 미래세대의 삶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동아DB]

    청년층은 자신의 삶은 물론, 미래세대의 삶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동아DB]

    소득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회지만 IHDI에서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높은 편이 아니다. 2015년 한국의 소득 불평등 지수는 0.720으로 중간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는 재산에 따른 소득 등이 반영되지 않은 것. 실제로 2015년 IHDI에는 한국의 5분위 배율(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비교 지표), 팔마 비율(소득 상위 10%와 하위 40%의 소득 비교), 지니계수 등 소득·자산 불평등을 제대로 비교할 수 있는 수치 칸이 비어 있다. 

    하지만 다른 통계를 보면 한국의 소득·자산 불평등 정도를 쉽게 알 수 있었다. 2016년 국회입법조사처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2년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44.9%를 기록했다.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얼마나 비중이 큰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IMF 주요국 중에서는 미국(47.8%)에 이어 2위였다. 아시아에서는 가장 높은 수치였다. 

    자산 상황도 마찬가지.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우리나라 가계 소득 및 자산 분포의 특징’ 보고서는 가계 가처분소득과 순자산의 지니계수를 분석했다. 지니계수는 경제적 불평등을 가늠하는 지표로,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정도가 심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가계의 순자산 지니계수는 0.6041로 가처분소득 지니계수인 0.4259에 비해 크게 높았다. 

    날로 불평등이 심화되니 젊은 세대가 보는 미래는 밝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저출산-고령화 사회 동상이몽과 공감’ 보고서를 보면 무자녀 20, 30대에게 ‘한국 아이들이 행복할까’라고 질문한 결과 응답자의 65.9%가 불행하다고 답했다. 

    미래세대가 지금 세대보다 행복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자 출산율은 빠르게 떨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은 1.05명으로 역대 최저기록을 세웠다. 2016년 1.17명에 비해 10%가량 감소한 것. 합계출산율이 1.1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5년 이후 12년 만이다. 정부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올해 정부는 저출산 문제 해결에만 30조 원 이상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2006년부터 관련 사업에 투입한 예산만 120조 원이 넘는다. 5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는 “올해 저출산 대책 사업비가 중앙부처 예산 26조3189억 원과 지방자치단체 예산 4조2813억 원 등 총 30조6002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7월 5일에는 올해 첫 저출산 대책이 발표됐다. 아이를 낳은 부모의 근로시간 단축과 출산지원금 증대가 골자였다. 부모 모두 출산휴가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하고, 정부 지원 및 유급 휴가의 비중을 늘리겠다는 것. 하지만 정작 젊은 층의 반응은 마뜩잖다. 직장인 오모(28) 씨는 “당장 돈이 없어 결혼도 못 하는데, 아이를 낳아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저출산 대책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고 밝혔다. 실제로 혼인율도 2016년 기준 1000명당 5.5건으로 2011년(6.6건) 이후 줄곧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불평등을 해결하고 청년층의 결혼, 출산을 유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설문조사 결과 대다수는 부동산 문제 해결을 짚었다. 실제로 젊은 세대가 결혼 등 가정을 꾸릴 때 가장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주거비용이다. 웨딩컨설팅업체 듀오웨드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신혼부부의 평균 결혼 비용 2억7400만 원에서 1억9174만 원이 주거비로 쓰였다. 

    주거비 부담이 과하다는 점은 굳이 젊은 층이 아니어도 잘 아는 문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저출산·고령화 시민인식조사’ 설문조사에서 ‘나와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주택가격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하락해야 한다’는 응답이 69.8%로 다수였다. ‘집값이 현행처럼 유지돼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2.5%, ‘상승해야 한다’는 응답은 7.7%로 적었다.

    결국 답은 주거비 해결에 있다

    서울 노원구 공공임대주택 115채는 신혼부부 및 노인 가구를 대상으로 추첨해 당첨자에게 분양한다.(왼쪽) 문재인 대통령이 7월 5일 서울 구로구 한 행복주택 아파트 광장 놀이터에서 열린 신혼부부 및 청년 주거대책 발표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동아DB]

    서울 노원구 공공임대주택 115채는 신혼부부 및 노인 가구를 대상으로 추첨해 당첨자에게 분양한다.(왼쪽) 문재인 대통령이 7월 5일 서울 구로구 한 행복주택 아파트 광장 놀이터에서 열린 신혼부부 및 청년 주거대책 발표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동아DB]

    부동산가격이 출산율과 반비례한다는 것은 한국만의 특수성은 아니다. 지난해 육아정책연구소가 발표한 ‘경기변동에 따른 주택가격 변동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1985년부터 2014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개 회원국을 분석한 결과 주택가격이 오를 때 출산율이 떨어지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논문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주택가격이 1%p 오를 때마다 출산율은 0.072명 감소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주택가격과 출산의 시기와 수준’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했다. 보고서는 ‘2009~2013년 국내 16개 시도 주택가격과 출산율을 분석한 결과 주택 매매가와 합계출산율의 상관계수는 -0.70, 전세가와 상관계수는 -0.68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반비례 상관도가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거에 들어가는 비용이 높아지면 출산율이 낮아지는 반비례 관계가 뚜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부에서도 청년층 주거 지원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6월 무주택 신혼부부에게 공공임대주택 3만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분양전환 공공임대주택 1만8000가구를 공급하고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 등으로 1만2000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동시에 입주 자격, 입주자 선정 기준, 기금 대출 방안도 구체화해 많은 신혼부부가 관련 혜택을 누리게 할 예정이다. 

    이처럼 저출산 기조 완화를 위해서라도 부동산가격을 점차 낮춰야겠지만, 이를 마뜩잖게 보는 세대도 있다. 50대 이상 장년층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3년 설문조사한 결과 50대 이상은 가장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할 경제정책으로 ‘부동산 활성화’(9.8%)를 꼽았다. 반면 청년층은 ‘복지 확대’(14.2%), ‘가계부채 연착륙’(6.9%) 등을 꼽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저출산·고령화 시민인식조사’에서도 집값의 현행 유지나 상승을 바라는 응답자는 전체의 30.2%에 불과했다. 하지만 60대 이상 노년층 응답자 중에서는 38.2%가 ‘집값 하락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 사회에서는 은퇴 후 자산으로 부동산을 보유한 경우가 많다. 노년층은 부동산가격이 떨어지면 그만큼 노후 대책이 불투명해질 수 있으니 부동산가격 하락에 보수적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문제를 주택연금 가입 활성화로 해결하자는 분석도 있었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연구원의 ‘자녀세대 경제력과 주택 상속 동기에 따른 주택연금 가입의향 분석’ 보고서는 ‘주택연금으로 고령가구 빈곤 및 소득양극화 완화 등 사회적 후생 증대가 가능하다. 주택연금 제도의 지속성 강화를 위한 운영 및 상품 확대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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