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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닐슨의 글로벌 경제 읽기

국민연금 CIO의 조건

자금 운용 실력 못지않게 남을 설득하는 능력이 관건

국민연금 CIO의 조건

고령화 추세로 평균수명이 크게 늘면서 연금 수령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조영철 기자]

고령화 추세로 평균수명이 크게 늘면서 연금 수령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조영철 기자]

부모라면 한 번쯤 자식이 어떤 사람이 되길 바란다거나, 어떤 커리어를 쌓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봤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정반대 생각을 해봤다. 어떤 직업이든 다 좋은데, 내 자식이 ‘연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한국 국민은 국민연금이 언제 고갈될지, 연금 수령액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를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 국민연금만 곤란한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나라의 공적 연기금이 안고 있는 공통된 고민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연금 지출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연기금 CIO다. 나는 솔직히 내 자녀가 이런 골치 아픈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연기금 CIO는 치열한 세계 금융전쟁 속에서 기금을 늘려야 한다. 그만큼 전문성은 물론, 엄청난 책임감도 요구되는 자리다. 그런데 국민연금 CIO 자리가 1년 가까이 비어 있다. 이유는 셋 중 하나일 터. 첫째, 충분한 전문성과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없다. 둘째, 책임이 너무 커 하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다. 셋째, 첫 번째 조건은 만족하나 여러 가지 다른 문제가 있다. 물론 절대 나쁜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CIO 공석이 장기화한 이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1년 가까이 공석으로 남아 있다. 사진은 전주 혁신도시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사옥. [동아DB]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1년 가까이 공석으로 남아 있다. 사진은 전주 혁신도시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사옥. [동아DB]

세계 굴지의 국부펀드, 연금, 외화보유액을 운용하는 공적펀드의 CIO는 어떤 사람들일까. 세계의 큰 공적펀드들은 지난 20년간 일관된 트렌드를 보여왔다. 여러 분야의 투자를 경험한 제너럴리스트에서 벗어나 거의 한 우물만 판 자산별 스페셜리스트로 바뀌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최고경영자(CEO) 밑에 여러 명의 전문가 CIO를 두는 체제가 흔해졌다. 즉 CEO가 있고 주식 CIO, 채권 CIO 등등이 있는 구조다. CEO 역시 20~30년 경력을 가진 투자 전문가다. 

국부펀드인 노르웨이은행투자운영회(NBIM)나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가 그렇다. 윙베 슬륑스타드 NBIM CEO는 1998년 NBIM에 입사했고, 2008년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최고경영자 자리에 앉아 있다. 마크 마신 CPPIB CEO는 2012년부터 CPPIB에서 일했으며, 2016년 CEO 자리에 올랐다. 그 전에는 골드만삭스에서 20년간 일한 경력이 있다. 국제금융계의 큰손 중 하나는 싱가포르투자청(GIC)이다. GIC는 위의 두 펀드와 달리 전체 CIO가 있는데, 제프리 야엔숩하키 CIO는 1998년 이후 GIC에서 일해왔다. 

NBIM, CPPIB, GIC 등 3개 펀드는 국제 금융사회에서 최고 전문가들을 열심히 뽑는 펀드로도 유명하다. 월가에서 꽤 잘나가던 전문가를 주로 고용한다. 그럼에도 CIO나 펀드를 책임지는 최고책임자를 곧바로 외부에서 영입해오지는 않는다. 이렇게 큰 공적펀드의 수장이나 최고투자책임자가 되면 투자를 지휘하는 일을 해야 하지만, 다른 일들도 능숙하게 처리할 줄 알아야 한다. 바로 정부나 국회에 가서 의견을 말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적 상황들을 다뤄야 하니 아무래도 외부에서 새로 온 최고책임자보다 최소한 10년 넘게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이 훨씬 더 수월하게 일을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 펀드들에서 주목할 점은 임기 또한 한국 공적펀드의 최고책임자보다 훨씬 길다는 것이다. 

물론 곧바로 외부에서 영입하는 예도 있다. 주창훙 중국 국가외환관리국(SAFE) 전 CIO가 대표적이다. SAFE는 3조 달러(약 3370조5000억 원)라는 엄청난 자산을 가진 국제금융사회의 큰손이다. 주 전 CIO는 국제금융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invisible man)으로 유명했다. 당시 언론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도 그의 어렸을 때 사진만 확보할 수 있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CIO 관련 기사에 소년의 사진이 실린 것. 월가에서 십수 년 동안 일한 나도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신문에서 읽은 내용밖에 없다. 얼마 전 SAFE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주 전 CIO가 어떻게 지내는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같은 학교 학부모들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하는 정도의 이야기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마치 최고 한류스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中 SAFE의 구세주

주 전 CIO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양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채권트레이더가 됐다. SAFE CIO가 되기 전에는 핌코(PIMCO)에서 한때 채권의 왕으로 불리던 빌 그로스의 오른팔 구실을 했다. 사람들은 그가 캘리포니아의 집 두 채와 라스베이거스의 콘도를 뒤로하고 중국에서 SAFE CIO로 일한 것은 순전히 애국심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주 전 CIO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늘 “나는 SAFE 투자팀의 한 명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 정도로 겸손하고 자신을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2013년 그는 개인적인 이유라며 SAFE CIO에서 물러났다. 그 후 특별히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43세 나이에 은퇴한 것이다. 그가 SAFE를 나갔을 때 세계 언론은 ‘SAFE의 구세주’가 떠났다고 표현했다. 그가 CIO로 있는 동안 SAFE의 투자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CIO가 된 첫해인 2009년 SAFE의 자산 중 45%가 미국 채권에 투자돼 있었다. 2년 후 미국 채권투자는 35%로 현저히 줄었다. 그 대신 일본 주식, 유럽 채권, 미국 회사채와 주식 등에 투자했다. 투자 자체가 다양화되고, 더 많은 수익을 찾는 투자로 대체된 것이다. 

물론 투자를 다양화하고 여러 곳에 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큰 자산을 가지고 외자운용을 해야 하는 기관이 이런 큰 변화를 겪으려면 최고투자책임자가 얼마나 많은 정치인을 만나 변화의 필요성과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설득했다는 사실이다. 그 많은 자산을 적정한 시기에 움직인 것에 대한 결과는 SAFE의 현 자산이 말해주고 있다. SAFE 자산은 그의 임기 동안 약 60% 늘었다. 국민연금 CIO를 외부에서 영입해야 한다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CIO는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닐까.


국민연금 CIO의 조건

영주 닐슨
•전 헤지펀드 퀀타비움캐피탈 최고투자책임자
•전 Citi 뉴욕 본사 G10 시스템트레이딩헤드
•전 J.P.Morgan 뉴욕 본사 채권시스템트레이딩헤드
•전 Barclays Global Investors 채권 리서치 오피서
•전 Allianz Dresdner Asset Management 헤지펀드 리서치헤드




주간동아 2018.07.18 1147호 (p46~47)

  • |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Ynielsen@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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