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이혼 결정했다면 자녀부터 안심시켜라”

“갑작스러운 통보는 부모 죽음과도 같은 큰 충격…‘부모-자식’ 관계는 영원”

“이혼 결정했다면 자녀부터 안심시켜라”

[shutterstock]

[shutterstock]

2월 27일 정부는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가사소송법 전면개정안을 의결했다. 주된 내용은 앞으로 친권이나 양육권을 둘러싼 소송의 경우 연령을 불문하고 자녀의 의견을 꼭 들어야 하고, 양육비를 부담해야 하는 쪽에서 30일 이상 주지 않으면 법원이 감치(구치소나 유치장 등에 일정 기간 구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는 13세 이상인 미성년 자녀의 의견만 듣고, 3개월 동안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감치할 수 있게 돼 있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관점에서 볼 때 아동의 권리를 강화하고, 이혼 과정에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부부는 이혼하기 전 오랜 기간 싸움 등 갈등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대부분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 부부싸움 시작 단계에는 아이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몰래 싸우거나 아이에게 엄마 또는 아빠의 잘못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부의 갈등이 깊어지고 이혼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하면 아이 보호 명분은 사라진다. 아이 앞에서도 크게 싸우고, 폭언과 폭력이 오가며, 누구 편에 설 것인지를 강요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생긴다. 부부는 이혼하면 그 순간부터 남이지만, 아이와 부모의 관계는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함께 살지 여부만 남을 뿐 아이와 부모 관계는 영원히 지속된다. 

따라서 이혼에 대해 아이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누구와 함께 살고 싶은지를 결정하게 하며, 아이를 누가 더 잘 키울 수 있는지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누가 더 잘 키울지는 결코 물질적 측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정신적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만일 이혼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으면 아이는 부모의 이혼을 자기 탓으로 돌릴 수도 있으므로 부모가 헤어지는 이유와 함께 부모-자식 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이혼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

[동아DB]

[동아DB]

이혼 가족의 자녀는 이혼 과정을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불안, 슬픔, 분노, 죄책감 등 정서적 어려움을 겪기도 하며,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거나 대처하는 기술이 부족할 수도 있다. 자신의 역할과 능력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아존중감이 낮아지기 쉽다. 부모의 이혼 과정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는 대부분 부모가 이혼한 후 상당 시간이 지나서야 병원을 방문한다. 아이에게 심각한 정신과적 증상이 발병한 다음에야 비로소 병원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는 이혼을 결심한 순간 아이에게도 설명할 준비를 해야 한다. 부모의 상황을 감지한 아이는 그 나름대로 느끼고 판단할 시간이 있는 데 반해, 어느 날 갑자기 통보를 받은 아이는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부모의 죽음과도 같은 충격으로 전달된다. 따라서 아이가 어리다고 “아빠(혹은 엄마)가 외국에 돈 벌려고 나갔어”라는 식의 설명은 좋지 않다. 이혼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지속되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환상이 아이의 사회 적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다 큰 아이가 갑자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면서 퇴행 현상을 보이는 것도 한 증세다. 초등학생 이하인 아이는 부모의 이혼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갖는다. 따라서 아빠와 엄마는 이런저런 이유로 떨어져 살지만 너는 여전히 아빠 엄마의 아들이고 딸이라는 식으로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엄마나 아빠에게 적대감을 갖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를 ‘내 편’으로 만들려는 언행은 아이로 하여금 한쪽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혼자서 양쪽 부모의 역할을 다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친척이나 이웃 등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고, 그 과정을 함께하다 보면 아이는 의외로 적응을 잘해나간다. 비(非)양육 부모와 만남을 정례화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기약 없는 만남에 아이는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부가 이혼하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심리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징벌(punishment)’이다. 징벌이란 말 그대로 옳지 않은 일을 하거나 죄를 지은 데 대해 벌을 주는 것으로, 배우자의 부정 또는 외도를 경험했을 때 주로 나타난다. 감히 나를 두고 다른 여성(또는 남성)과 바람을 피우다니 용서할 수 없다는 심리다. 

둘째, ‘취소(undoing)’다. 그동안의 결혼 생활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의미가 크다. 이러한 결정은 대개 짧은 결혼 생활 끝에 이뤄진다. 신혼여행을 갔더니 연애 시절과는 전혀 다른 말과 행동을 보였다고 하소연한다. 신혼여행지에서 서로 심하게 다투고 상대방 집안까지 비난한 다음 영락없이 이혼 도장을 찍는다. 또한 결혼 후 몇 년을 지내보니 결혼 전 꿈꾸고 기대하던 남편(또는 아내)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전혀 다른 모습의 배우자만 있다며 불평한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이혼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종말’에 이르는 이유

셋째, ‘탈출(escape)’이다. 흔히 악몽 같았다, 지옥 같았다고 표현되는 결혼 생활 끝에 나타난다. 많은 경우 학대하는 배우자가 뒤에 있다. 또는 의처증(혹은 의부증)이 심하거나 사사건건 간섭, 구속, 잔소리를 해대는 배우자에게 질린 나머지 이혼을 선택한다. 어떤 여성은 필자와 상담 도중 “저는 부부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맞습니다. 폭언도 듣고요. 처음에는 모멸감과 수치심이 들었는데, 이제는 생명에 위협을 느낍니다. 남편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삶의 목표입니다”라고 했다. 마침내 이혼에 성공(?)해도 기쁨은 잠시다. 허탈감과 지나간 세월에 대한 탄식으로 상당히 오랜 기간 후유증에 시달린다. 이 경우 배우자에 대한 생각 자체를 회피한다. 상담 도중 과거 얘기가 나오면 갑자기 불안 반응을 보이면서 몸서리를 치거나 눈물을 흘린다. 

넷째, ‘혐오(disgust)’다. 흔히 성격이 서로 안 맞아서, 또는 생각과 가치관이 너무 달라서 등의 이유로 이혼하는 경우다. 서로 사랑할 때는 상대방의 행동이 다 곱게 보인다. 그러나 사랑이 식으면서 배우자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가령 옷을 옷장에 넣지 않고 침대에 걸쳐 놓는 등의 사소한 습관을 지적한다. 배우자는 그 지적을 비난이나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이제는 이쪽 차례다. 상대방이 샤워를 하고 나오면 늘 욕실 바닥이 흥건하다고 비난한다. 이쯤 되면 서로 못마땅한 생활습관뿐 아니라 말투와 행동, 지출 명세 등으로까지 갈등 전선이 확대된다. 

서로 사랑해 결혼했기에 이혼은 ‘사랑의 종말’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의 종말은 누가 선언하든 서로에게 깊은 상처와 후유증을 안긴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체인 자녀들이 고통받고 상처를 입는다. 그러니 부모들이여! 이혼하려거든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이혼을 결정했다면 반드시 아이들을 그 과정에 참여시켜라. 아이들을 안심시켜가면서 이혼해야 한다.


“이혼 결정했다면 자녀부터 안심시켜라”


주간동아 2018.03.07 1128호 (p68~69)

  •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의학박사 psysohn@chol.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168

제 1168호

2018.12.14

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