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3

2017.11.15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미생물과 자폐증 치료, 요구르트가 답하다

사람 건강에 큰 영향 미치는 장내 세균… 유익균의 질병 치료 효과 속속 증명

  • 입력2017-11-14 10: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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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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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쓰는 필자 옆에는 요구르트 한 병이 놓여 있다. 유산균이 1억 마리 이상 들어 있다고 홍보하는 요구르트다. 이런 유산균을 포함한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 시장은 확장을 거듭해 세계적으로 연간 수십억 달러(수조 원) 규모에 이른다. ‘프로바이오틱’은 ‘생명을 위하여(for life)’라는 뜻이다. 그리고 실제로 건강을 위해 유산균 음료나 정제를 먹어야 하는지 묻는 이가 많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 왜 갑자기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이 떴는지부터 살펴보자.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유명한 러시아 과학자 일리야 메치니코프가 있다. 그는 70대에 죽을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젖산을 만드는 세균을 섭취하고자 신 우유를 마셨다. 불가리아 농민이 장수하는 이유가 발효유 덕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중에 메치니코프의 접근법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장수 세균은 대부분 위산 탓에 장에 도달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메치니코프의 유산은 과학사에 또렷이 남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수많은 실험실에서 과학자들이 세균으로 인간 질병을 예측하고 치료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39조 마리 몸속 세균의 신비

    먼저 ‘세균’ 하면 결핵, 콜레라, 페스트, 식중독 같은 전염병을 유발하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편견부터 깰 필요가 있다. 우리 몸속에는 약 30조 개의 인간세포가 있다. 체내 세균은 그보다 많은 39조 마리에 달한다(흔히 세포 대 세균 비율을 1 대 10으로 여긴다. 여기서 ‘10% 인간’이라는 말까지 만들어졌지만 상당히 과장된 것이다). 

    세포 수보다 많은 몸속 세균은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주로 체내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종류의 세균이 존재한다. 또 사람마다 전혀 다른 세균을 갖고 있기도 하다. 평소 육식을 즐기는 사람의 장에 서식하는 세균은 채식을 즐기는 사람의 그것과 다르다. 



    이렇게 몸속에 잔뜩 존재하는 세균의 기능은 뭘까. 최근 과학자들이 밝힌 사실은 충격적이다. 예를 들어 몸속에 세균이 없는 무균 생쥐는 겉모습은 일반 생쥐와 별반 차이가 없지만 실상은 엉망진창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가 대장염 같은 소화관의 염증 질환이다. 

    2002년 사르키스 매즈매니언을 비롯한 몇몇 과학자는 흔한 장내 세균인 ‘B-프라그(박테로이데스 프라길리스)’를 무균 생쥐에게 먹여 소화관 염증을 치료했다. 이 연구는 몸속 세균 다수가 ‘이방인’이 아니라 면역체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공생자’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뿐 아니다. 과학자 폴 패터슨은 임신한 생쥐에게 바이러스를 감염시켰고, 태어난 새끼의 행동에서 흥미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새끼는 불안, 반복 행동, 사회성 결핍을 보였다. 그렇다. 자폐증이나 조현병을 앓는 인간과 비슷한 특징을 보인 것이다. 실제로 임신부가 인플루엔자나 홍역 등 바이러스 질환을 앓으면 자폐증이나 조현병을 가진 자녀가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


    장내 세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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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은 여기부터다. 패터슨은 뒤늦게 매즈매니언이 발견한 장내 미생물(B-프라그)의 항염증 효과가 갖는 중요한 의미를 깨닫는다. 자폐증이나 조현병을 앓는 새끼 생쥐는 자폐증에 걸린 어린이처럼 소화관 문제도 겪었다. 좀 더 살펴보니 양쪽(새끼 생쥐와 어린이) 모두 소화관의 장내 미생물 구성이 비정상적이었다. 

    패터슨은 문제의 새끼 생쥐에게 B-프라그를 먹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자폐증, 조현병 증상을 보이던 새끼 생쥐가 더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해하지 않았고, 반복 행동이 줄었으며, 다른 생쥐와 접촉도 늘었다. 이 실험 결과를 패터슨과 매즈매니언은 이렇게 해석한다. 

    “임신 중인 어미에게 주입한 바이러스 때문에 새끼의 소화관에 문제가 생겼다. 일반적인 경우와 다른 장내 미생물 환경이 조성됐고, 독성 물질이 혈관에 침투하는 것을 막는 소화관 투과성까지 약해졌다. 이 비정상적인 장내 미생물이 생성한 화학물질은 소화관을 뚫은 뒤 혈액을 타고 뇌까지 이동해 자폐증, 조현병 같은 이상 증세를 일으켰다.” 

    최근 재미 한국인 과학자 부부(허준렬, 글로리아 최)가 발표한 연구도 흥미롭다. 이들은 임신한 어미의 장내 세균이 자폐 행동을 보이는 새끼 생쥐 출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임신한 어미 몸속의 특정 장내 세균(나쁜 세균)이 만들어낸 면역 세포 단백질이 새끼 뇌에 영향을 미쳐 자폐 증상을 유발한 것이다. 

    이렇게 여러 과학자의 후속 연구로 (어미나 새끼의) 장내 세균이 흔히 뇌의 문제로 알려진 자폐증 같은 이상 증세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확증되고 있다. 그럼 장내 세균을 조정한다면 자폐 증상을 개선하거나 예방할 수 있을까. 매즈매니언 등 과학자들은 계속해서 B-프라그 같은 미생물로 자폐 증상을 개선할 방법을 찾고 있다. 

    이런 연구 결과를 접한 자폐아를 둔 부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장내 세균 조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프로바이오틱스를 열심히 아이에게 먹이고 있다. 또 실제로 증상이 개선된 사례도 많다. 아직까지는 가능성일 뿐이지만, 장내 세균이 정말 자폐증 치료의 돌파구를 열지도 모른다. 

    소개하고 싶은 연구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오늘은 여기서 멈춰야 할 것 같다. 하나만 첨언하면 환자의 질병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치료하는 ‘정밀 의학’ 전문가 마이클 스나이더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뜻밖에도 한 개인의 질병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방법으로 유전체(유전자의 집합) 정보뿐 아니라 몸속 미생물 구성 변화를 꼽았다. 미생물을 잘 들여다보면 건강 상태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건강을 위해 요구르트를 먹어야 할까. 사실 1억 마리 유산균을 들이켠다 해도, 이미 소화관에 엄청나게 많은 수로 자리 잡은 미생물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더구나 요구르트 속 미생물은 대부분 인간 소화관에 자리 잡기엔 이질적이다. 과학자 상당수가 프로바이오틱스 열풍에 회의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과학적 효과를 좀 더 따진 다양한 형태의 프로바이오틱스가 나올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옆에 있던 요구르트를 단숨에 들이켰다. 간에 기별도 안 갈 정도면 어떤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마시는 커피나 술보다 요구르트 한 병을 들이켜는 게 건강에 더 나은 게 확실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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