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4

2017.09.06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3D 프린팅’이 바꿀 세상

‘깨고 깎는’ 낭비 사라지지만 저작권 침해 우려도

  • 지식큐레이터 imtyio@gmail.com

    입력2017-09-05 11: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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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간 과학기술 분야의 열쇳말 가운데 하나는 ‘3D 프린팅’이다. 누군가 3D 프린팅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3D 프린터’를 질문할 때마다 나는 휴대전화로 3D 프린터를 이용해 찍어낸, 예술품을 방불케 하는 갖가지 디자인의 시제품을 보여준다. 반신반의하던 눈빛은 3D 프린터로 금속 부품 33개를 찍어 조립한 권총을 보여주면 놀라움으로 바뀐다. 마지막으로 3D 프린터로 피자를 요리하는 동영상까지 보여주면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온다. 그러고는 묻는다.

    “3D 프린팅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2000여 년 전 만들어진 고대 그리스 시대 작품 ‘밀로의 비너스’를 생각해보자. 아마 처음에는 예술가와 갖가지 공구를 든 노예들 앞에 커다란 대리석 덩어리가 있었을 것이다. 몇 날 며칠을 깨고, 깎고, 긁고, 새기는 과정을 거쳐 2m가 넘는 정교한 조각상이 세상에 등장했을 테다.

    대량생산 시대인 20세기 상황도 마찬가지다. 강철판 같은 금속을 깨고, 깎고, 긁고, 새겨 공작기계로 다양한 모양의 거푸집을 만든다. 그것에 금속이나 플라스틱을 녹여 똑같은 모양으로 찍어낸 제품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한다. 컵, 칫솔 같은 생활용품에서부터 자동차, 지하철 같은 교통수단까지.



    ‘깎는’ 시대에서 ‘쌓는’ 시대로

    3D 프린팅은 이런 ‘깎는’ 시대에 종언을 고한다. 3D 프린터는 깎는 대신 쌓고 더한다. 먼저 노즐이 2D 프린터처럼 앞뒤(X축), 좌우(Y축)로 움직이면서 만들고자 하는 물건 모양대로 한 층을 쌓는다. 맨 아래층을 그리고 나면 노즐은 위로(Z축) 살짝 움직여 바로 위층을 쌓는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다 보면, 나중에는 애초 원하던 물건의 형상이 드러난다.



    이론상으로는 물건 재료가 무엇이든 가능하다. 열을 가하면 금세 노즐로 짜낼 수 있는 액체 상태로 변하는 초콜릿이나 플라스틱은 말할 것도 없고, 알루미늄 같은 금속도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금속 권총이 이 사례다.

    이 대목에서 바로 레이저가 등장한다. 레이저를 맞으면 굳는 성질을 가진 금속 분말 표면에 프린트하고 싶은 모양대로 레이저를 쏘자. 레이저를 먼저 맞은 층이 원하는 모양대로 굳을 것이다. 한 층, 한 층 반복적으로 레이저를 쏘면 결국 원하는 물건의 형상이 드러난다. 제일 먼저 굳은 부분이 아랫면, 나중에 굳은 부분은 윗면이 된다.

    당연히 3D 프린터가 앞뒤, 좌우, 위아래로 움직여 물건을 만들 때 따르는 청사진도 있다. 여기서는 물건 형태를 3차원으로 디자인하는 ‘캐드(CAD)’ 프로그램이 동원된다.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3차원 디자인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기계어 ‘G코드’로 변환한다. 3D 프린터는 G코드를 읽어 형태를 쌓아간다.

    깎는 시대에서 쌓는 시대로 바뀌면 무슨 일이 생길까. 먼저 깎는 시대에 만연하던 낭비가 사라진다. ‘밀로의 비너스’를 만드느라 버려진 대리석을 생각해보라. 깎는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찌꺼기가 발생했다. 하지만 쌓는 시대에는 재료를 꼭 필요한 양만큼만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제조 현장에서 3D 프린팅 도입이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거푸집(금형) 퇴출이다. 지금은 칫솔 하나, 볼펜 하나, 고무 오리 하나를 찍어내려 해도 많은 돈을 들여 금형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3D 프린팅 시대에는 금형이 필요 없다. 갖고 싶은 물건의 G코드만 알면 1개든, 2개든 원하는 만큼 물건을 만들 수 있다.

    만약 고무 오리를 찍어낼 금형 비용이 약 1000만 원이고, 고무 오리 개당 비용이 2만 원이라면 어떨까. 지금은 고무 오리를 많이 찍을수록 제조 원가가 낮아진다. 100만 개를 만들 때쯤에는 원재료 비용만 들 것이다. 그러니 많이 생산할수록 유리하다.



    제조업 혁명 또는 재앙?

    3D 프린터를 도입하면 정반대 상황이 된다. 일단 금형을 제작하는 1000만 원을 아낄 수 있다. 그다음부터는 1개를 만들든, 100만 개를 만들든 낱개에 들어가는 원가가 똑같다. 그러니까 똑같은 고무 오리 100만 개를 찍을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서로 다른 모양의 고무 오리 수백 종을 수백 개씩 생산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이런 특성 때문에 3D 프린팅을 가장 먼저 도입한 분야가 있다. 치아 교정 분야다. 치아 모양은 개인마다 달라서 틀니, 인공 치아, 치아 교정기는 딱 하나만 있으면 된다. 3D 프린터로 이런 틀니, 인공 치아, 치아 교정기를 만들면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

    이뿐 아니다. 3D 프린터는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제작하고 폐기되는 시제품 생산에도 변화를 준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구두 디자이너가 새롭게 디자인한 제품 G코드를 e메일로 보내면, 서울에서 3D 프린터를 이용해 바로 시제품을 찍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3D 프린팅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제조업에 충격을 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다양한 물성의 재료를 더욱 정교하게 찍어낼 수 있는 3D 프린터가 값싸게 보급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어떤 이는 심각한 저작권 침해를 우려한다. 멋진 디자인의 물건을 스캔해 3차원 이미지로 변환한 다음 3D 프린터로 찍어내는 일이 가능해질 테니까.

    한편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가 막을 내릴 것이라는 과감한 전망도 나온다. 저마다 필요한 물건을 조금씩 찍어 쓰는 시대가 오리라는 것이다. 지금 전자레인지처럼 3D 프린터가 아침마다 즉석 식사를 준비하는 SF영화 같은 미래를 예고하는 사람도 있다. 조금 냉소적인 사람은 ‘섹스토이’ 같은 성 산업의 팽창 등 엉뚱한 결과를 낳으리라 예상하기도 하고.

    하긴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수십 년 후 인터넷에 기반을 둔 디지털 시대가 이런 모습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3D 프린팅은 또 어떻게 세상을 뒤집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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