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이 남긴 이별의 고통
그리스 중견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매력은 알레고리에 있다. 그의 출세작 ‘송곳니’(2009)처럼 억압적인 가부장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실상은 억지를 부리는 현대 정치의 부조리를 성찰하는 식이다. 또 짝을 이루지 못하면, 곧 가족이…
영화평론가 2018년 07월 31일 -
감동을 주거나, 웃음을 주거나
움베르토 에코가 말하길, 영화에 상투성(클리셰)이 한두 개 등장하면 웃음만 나오게 하지만 수백 개의 상투성은 우리를 감동시킨다고 했다. 상투성도 수백 개에 이르면 하나의 역량이 되고, 그런 상투성 속에서 관객은 다른 작품들을 불러내…
영화평론가 2018년 07월 17일 -
버려진 떠돌이의 지독한 외로움에 대해
웨스 앤더슨은 ‘버림받은 소년’에 대한 오랜 연민을 절대 놓지 않을 것 같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은 대개 고아나 마찬가지인 아이들이다. ‘문라이즈 킹덤’(2012)의 소년처럼 부모가 숨져 다른 가정에 입양됐거나, 소녀처럼 가족이 …
영화평론가 2018년 07월 03일 -
폭력의 광기에 휘둘리는 사람들
캐스린 비글로의 이름 앞엔 늘 ‘여성 액션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의 영화를 본 뒤 감독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놀라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비글로의 영화는 거친 육체와 폭력이 강조된다. 초기작 ‘블루 스틸’(199…
영화평론가 2018년 06월 19일 -
‘벌거벗은 어린이’의 삶을 응원하며
박물관에 가면 ‘경이로운 신비’를 보고 놀라곤 한다. 이를테면 자연사박물관에 보관된 것들, 곧 수천 년 전 지구에 떨어진 유성의 조각, 박제된 거대한 나비들, 뼛조각들로 재현된 공룡의 모습에 넋을 잃는다.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는 …
영화평론가 2018년 06월 05일 -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청년의 열정에 부쳐
카를 마르크스 관련 전기영화를 만들려는 시도는 욕심은 나지만 어쩌면 엄두가 나지 않을 작업일 테다. 방대한 이론과 실천, 추방과 망명으로 점철된, 굴곡진 65년간(1818~1883) 삶을 한 편의 극영화에 담는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
영화평론가 2018년 05월 22일 -
“사랑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
클레르 드니는 프랑스 영화계의 대표적 여성감독이다. 독일 감독 빔 벤데르스의 조감독 시절, 일본 거장 오즈 야스지로를 기리는 다큐멘터리 ‘도쿄가’(1985)의 작업에 참여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래서인지 드니의 영화에는 벤데르스의…
영화평론가 2018년 05월 08일 -
주체적 삶을 위해 ‘집’ 떠나는 소녀들을 응원하며
고교 졸업반인 크리스틴(세어셔 로넌 분)은 자기 이름을 ‘레이디 버드’로 바꿨다. 부모가 준 이름으로는 더는 불리고 싶지 않아서다. 그만큼 자의식이 강하다. 졸업 후 고향 새크라멘토를 떠나 동부의 폼 나는 명문대에 진학하는 게 꿈이…
영화평론가 2018년 04월 24일 -
상실에 대한 음악적 에세이
루카 구아다니노(47) 감독은 이탈리아 멜로드라마의 계승자다. 루키노 비스콘티(1906~76)의 예술적으로 풍부한 화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78)의 성장기 방황이라는 테마는 구아다니노의 멜로드라마에 자주 소환되는 특징이다. 구아…
영화평론가 2018년 04월 10일 -
‘분노의 시대’가 낳은 희생자들
마틴 맥도나 감독은 블랙코미디 범죄물에 강점을 갖고 있다. 그를 세계 영화계에 알린 장편 데뷔작 ‘킬러들의 도시’(2008)는 동료 킬러 2명이 벨기에 중세도시 브뤼주에 피신 갔다 갑자기 서로 적이 돼 싸우는 한바탕의 블랙코미디다.…
영화평론가 2018년 03월 27일 -
트럼프 시대에 언론자유의 역사적 순간을 회고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언론 공격이 비정상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그는 미국 언론의 대표주자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를 자랑스러워하기는커녕 ‘가짜 뉴스’를 만드는 ‘믿을 수 없는’ 언론사라고 공격한다. 이…
영화평론가 2018년 03월 13일 -
히치콕의 ‘레베카’를 기억하며
폴 토머스 앤더슨은 웨스 앤더슨(‘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제임스 그레이(‘잃어버린 도시 Z ’)와 더불어 현대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40대 ‘작가’(자기 스타일이 뚜렷한 감독)다. 세 감독은 작품성은 물론, 대중성에서도 괄목할…
영화평론가 2018년 02월 27일 -
존 웨인이 영웅이었던 흑인 소년의 성장기
라울 펙 감독의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I Am Not Your Negro)’는 1960년대 미국 인권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 초대되며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6…
영화평론가 2018년 02월 06일 -
케이트 윈즐릿 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우디 앨런은 거의 매년 영화 한 편씩을 만드는 다작 감독이다. 주로 코미디이고, 간혹 심리적 멜로드라마도 만든다. 코미디 영화에는 여전히 직접 출연하며, 식지 않은 유머감각까지 발휘한다. 하지만 멜로드라마의 경우 자신의 코믹한 이미…
영화평론가 2018년 01월 23일 -
분열된 사랑, 분열된 자아의 기원을 찾다
프랑수아 오종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멜로드라마 감독이다. 가족이라는 제도에서 잉태된 뒤틀린 사랑과 상처가 그의 영화에선 긴장의 핵이다. 오종의 드라마에서 가족은 평화와 안전의 터전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통째로 허무는 외부의 힘이다.…
영화평론가 2018년 01월 09일 -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 市가 詩가 되다
짐 자무시는 미국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그의 독특한 미니멀리즘(표현을 최소화한 미학)은 마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는 듯 무심해 보인다. 대사가 별로 없고, 배우들의 얼굴은 무성영화의 전설 버스터 키턴처럼 무표정(dead…
영화평론가 2017년 12월 26일 -
도축장에서 꾼 사슴 꿈
헝가리 노장 감독 일디코 에네디의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맺어질 것 같지 않은 두 남녀가 몇 가지 걸림돌을 넘어 결국 결합에 이르는 내용이다. 할리우드 장르 영화와 약간 다른 점은 영화의 정서가 즐거움보…
영화평론가 2017년 12월 12일 -
무심한 듯, 뜨거운 감정
테런스 데이비스 감독은 영국의 숨어 있는 보석이다. 영국 영화의 두 거장, 곧 정치적 리얼리즘의 켄 로치, 가족 멜로드라마의 마이크 리와 비교하면 우리에겐 무명에 가깝다. 올해 72세인 이 노장은 43세 때 첫 장편 ‘먼 목소리, …
영화평론가 2017년 11월 28일 -
갑갑한 현대 정치의 알레고리
영화 ‘범죄도시’는 깡패를 때려잡는 형사 이야기다. 몸집이 ‘헐크’처럼 큰 강력계 형사 마석도(마동석 분)가 주인공이다. 그가 일반 형사와 다른 점은 수사 규칙, 절차 같은 ‘귀찮은’ 법칙은 쉽게 무시한다는 것이다. 악질 혐의자는 …
영화평론가 2017년 11월 14일 -
별이 된 고흐의 죽음
‘러빙 빈센트’는 애니메이션이다. 영화 속 그림 전부가 빈센트 반 고흐의 실제 작품에서 모티프를 따왔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를테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1889)을 모사한 화면이 등장한 뒤 그 그림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영화평론가 2017년 10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