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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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걸치고 표현해도 괜찮아

액세서리

  • 남훈 The Alan Company 대표 alann1971@gmail.com

    입력2013-12-09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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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멋대로 걸치고 표현해도 괜찮아
    중고차를 사본 사람은 잘 안다. 맘에 들지 않는 한 군데를 고치고 나면, 그전까지는 존재감이 없던 다른 부분이 자기도 고쳐달라고 스윽 등장하는 불편한 진실. 비즈니스를 하는 남자의 고민도 그렇다. 큰 맘 먹고 좋은 슈트나 재킷을 갖추면 자연스럽게 그 옷에 부합하는 가방을 생각하게 되고, 다시 구두와 벨트, 그러다 안경, 마지막엔 시계 등으로 신경이 옮겨간다.

    우리 옷차림에 액세서리가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무엇을 먼저 갖춰야 하는지 그 순서를 아는 건 쉽지 않다. 의상의 경우 난해한 단어가 가득한 패션잡지를 탐독하지 않아도, 홈쇼핑 채널에 등장하는 전문가의 스타일링 클래스를 듣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접근하면 순서를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일단 겉옷으로서의 기능이 확실한 슈트와 재킷을 마련하고, 함께 입을 셔츠와 타이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준에서 여러 개 갖추면 된다.

    액세서리는 여전히 개인 영역

    그런데 액세서리는 좀 다르다. 아니, 어쩌면 순서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가방부터 시작하고, 다른 누구는 안경에서, 시계에서 실마리를 잡아가면 뭐 어떤가. 시작하는 지점은 달라도 만나는 곳은 결국 산의 정상이듯, 관심이나 재미가 더 중요하다.

    액세서리 종류나 의미에 대해서는 너무 어렵게 생각지 않아도 된다. 가방과 장갑은 가죽이란 귀한 소재로 표현하는 섬세한 품위와 같고, 벨트와 안경은 실용이란 목적 위에 얹은 표표한 개성이며, 가슴 주머니의 포켓스퀘어나 팔찌는 점잖은 남자가 모른 척 표현하는 유머러스한 일탈과도 같다.



    슈트나 재킷은 누구와 만나는지, 장소가 어딘지를 생각하며 입어야 하지만, 액세서리는 여전히 개인 영역으로 남아 있다. 숨 막히는 법칙이 중요하지 않고, 유니폼 같은 일관성이 요구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같은 제품을 매번 다르게 매치하는 것도 자연스럽고, 어떤 제품은 죽어도 못 하겠다고 해도 괜찮다. 이를테면 나는 개인적으로 금목걸이나 그것과 유사한 번쩍거리는 액세서리에는 과거에도, 현재도 마음이 가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남자에게 허락되는 현대적인 보석은 프렌치 커프스 셔츠 위에 존재하는 커프링크스(cuff links), 서명을 위한 만년필이나 넥타이 매듭을 풍성하게 해주는 타이 바 정도일까. 커프링크스는 특히 한글 명칭을 분명히 하고 싶다. 너무 많은 미디어에서 오기하는데, 한글로 지칭하면 커프스링크가 아니라 커프링크스가 맞다. 소맷단, 즉 커프를 링크한다는 의미니까.

    커프링크스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는 사실 전래동화 같은 법칙도 없고 뚜렷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브랜드나 물건보다 사람이 돋보이는 게 핵심인 남성복의 철학을 생각한다면, 소매 끝에서 뭔가 지나치게 독야청청 번쩍이는 것은 조금 부담스럽다. 그래서 커프링크스는 광택이 없는 실버 제품을 고르면 실패가 없다. 이건 타이 바 경우도 마찬가지다.

    네 멋대로 걸치고 표현해도 괜찮아
    상반신에서 조금 내려오는, 벨트와 서스펜더는 어느 정도 긴장 관계에 있다. 둘을 함께할 수는 없고, 반드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한다. 사실 벨트가 간편한 반면, 서스펜더는 좀 더 신경 쓰이는 물건이긴 하지만, 벨트가 내 몸을 양분한다는 느낌은 언제나 찜찜하다. 사람 시선이 그러하듯, 우리가 바라보는 남자의 복장은 얼굴부터 재킷과 바지, 다시 구두까지 물 흐르듯 내려오는 게 자연스러운데, 이것을 벨트가 휙 가로지르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벨트는 바지를 고정하는 훌륭한 장치이자, 좋은 가죽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이 분명 있다. 다만 청바지나 면바지가 아닌 울바지라면 확실히 서스펜더가 어울리는 맛이 있다. 지금이야 바지를 고정하는 데 벨트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슈트의 바지도 예전에는 버튼과 서스펜더로 고정하도록 고안돼 있었다.

    몸과 밀착하는 보석류나 서스펜더는 아니지만, 우산과 장갑에 대한 남자의 애정도 남다르다. 특히 좋은 우산이나 장갑에 대한 집착은 우리가 아끼던 혹은 그냥 소지하던 그것을 수십 번도 넘게 잃어버렸다는 자괴감에 대한 일종의 적극적인 반항이다. 1756년 영국 런던에서 등장한 현대적 의미의 우산은 마차를 갖지 못한 신사들의 가난함을 드러내는 증거일 따름이었다. 우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것이 가까운 장소라도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임을 표현하는 오늘날과 어쩜 그리 닮았을까. 하지만 우산을 가진 모든 남자가 마침내 동등해졌듯, 현실적 필요에 의해 소박하면서도 실용적인 성격으로 태어났지만 결국 고결한 소품으로 자리 잡은 우산을 남자들은 사랑한다.

    중세시대 장갑은 결투 신청서

    단순하게 손을 감싸고 보호하는 기능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인간의 문화와 관례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장갑도 마찬가지다. 중세시대에는 사랑, 질투 등 감정을 표현하거나 상대를 유혹하는 도구로 쓰였다. 여성의 경우 그 안을 상상하게 만드는 에로틱함이 있으며, 남성의 경우 던지면 결투를 신청하는 의미였던 장갑은 수수한 외모에 비해 숨겨진 스토리가 무척 매력적이다. 이제는 과거처럼 모든 신사와 숙녀가 장갑을 지참하는 것이 에티켓인 시대도 아니고, 옷차림에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도 장갑까지 챙기지는 않는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장갑은 생활을 위해 필요한 공산품이라기보다 우리의 수준 높은 삶을 위해 존재하는 문화적 코드이며,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럭셔리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개인적 관점을 안경이나 시계에 투영할 수도 있다. 오래된 가죽 가방이어도 좋고, 가터벨트의 원조 격인 양말 서스펜더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의 문제일 뿐이니까. 다만 어떤 클래식 제품은 친절하지 않은 가격으로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게 사실이다. 귀중한 리미티드 에디션이어서 보석처럼 소심하게 다뤄야 하고 매일 쓰지도 못하는 고가 제품보다는 자신에게 필요한 소박한 가격의 제품을 찾으면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남성을 위한 제품은 귀로 사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특출나다, 어떤 브랜드를 사람들이 선호한다는 이야기에 의존해 물건을 사면 실패할 개연성이 높다. 자신에게 필요한 제품을 숙고해 하나씩 갖춰나가는 것, 그러면서 각각의 제품이 서로 어울릴 수 있게 연관성을 부여하는 것, 그렇게 무언가를 선별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습관이 물건을 보는 안목을 깊게 해준다.

    그렇게 눈이 높아지면 옷에서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물건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도 서서히 만들어진다. 쇼핑을 습관적으로 계속한다고 해서 절로 스타일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하나를 이해하지 않으면 질 좋은 것이 모이지 않으며, 각각의 제품을 믹스 매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액세서리는 개인의 스토리와 철학을 만들어가는 정말 매력적인 재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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