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5

2019.09.06

명품의 주인공

다이애나비의 매력을 더 돋보이게 만든 보석

가을을 상징하는 9월의 탄생석, 사파이어

  • 민은미 주얼리칼럼니스트

    mia.min1230@gmail.com

    입력2019-09-09 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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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빈의 약혼 시절 모습(왼쪽)과시어머니인 고(故) 다이애나비의 
약혼반지를 낀 캐서린 미들턴 왕세손빈. [shutterstock, GettyImages]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빈의 약혼 시절 모습(왼쪽)과시어머니인 고(故) 다이애나비의 약혼반지를 낀 캐서린 미들턴 왕세손빈. [shutterstock, GettyImages]

    Humanitarian, fashion icon, hands-on mother, and rule-breaker. 

    이는 웨일스 공작부인인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빈(1961~97)을 수식하는 말이다. 그는 생전 빼어난 미모뿐 아니라 아프리카 빈민촌 구호, 적십자의 지뢰 제거 운동 같은 활발한 봉사와 자선 활동으로 세계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런 그가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36세에 생을 마감해 세계인을 슬픔에 빠지게 했다. 1981년 찰스(71) 왕세자와 결혼해 두 왕자를 낳았지만 남편의 외도로 결혼생활은 불행했고 사망 1년 전인 1996년에 이혼한 상태였다. 하지만 인기는 사후에도 계속됐다. 사망한 지 5년이 지난 2002년 영국 공영방송 BBC가 주최한 ‘위대한 영국인’ 투표에서 다이애나는 3위에 올랐다. 

    8월 31일은 다이애나가 사망한 지 22년째 되는 날이었다. 만약 살아 있다면 올해로 58세다.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생전 다이애나는 주목할 만한 주얼리 스타일링과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세기의 스타일 아이콘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이애나의 22주기를 맞아 아름다움을 더 돋보이게 했던 그의 주얼리 컬렉션을 재조명한다.

    다이애나의 약혼반지

    ‘The Garrard 1735 Sapphire’ 반지. [가라드 홈페이지]

    ‘The Garrard 1735 Sapphire’ 반지. [가라드 홈페이지]

    그는 영국 왕실의 일원 및 개인으로서 보석 컬렉션을 소유했다. 주얼리 컬렉션이 수백 개가 넘는다고 한다. 주얼리는 대부분 19세기와 20세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영국 대중매체는 이를 ‘가격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주얼리’라고 평가한다. 그의 주얼리는 값비싼 보석이 세팅된 것과 커스텀 주얼리(새로운 감각의 주얼리로, 저렴한 모조 보석과 금속을 주요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가 섞여 있다. 이 보석들은 시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빌린 것, 결혼 선물로 받은 것, 친정인 스펜서 가문 소유의 가보, 그리고 다이애나 자신이 구입한 것이다. 여기에 외국 왕족의 선물도 상당해 다양한 컬렉션을 가능하게 했다. 

    다이애나는 연회를 비롯한 공식석상에서 다양한 주얼리를 선보였다. 그중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주얼리가 있다. 바로 9월 탄생석인 사파이어가 세팅된 약혼반지로, 1981년 찰스 왕세자와 약혼할 때 그가 직접 고른 것이었다. 



    다이애나의 약혼반지는 타원형의 블루 사파이어가 메인 스톤으로 세팅됐다. 사파이어는 12캐럿으로, 그 주위를 14개의 작은 다이아몬드가 둘러싸고 있다. 반지의 소재는 18K 화이트 골드. 영국 주얼리 브랜드 ‘가라드(Garrard)’ 제품으로, 당시 가격은 2만8000파운드(약 4000만 원)였다. 

    사파이어 반지를 고른 다이애나의 선택은 이례적이었다. 가라드가 영국 왕실의 공식 주얼러(jeweller)이긴 하지만 이 제품은 맞춤형 제작이 아닐뿐더러 독창적이지도 않은 기성품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가라드 주얼리 컬렉션에 나온 반지 중 하나였다. 다이애나가 이 반지를 고른 이유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으나 친정어머니의 약혼반지와 흡사한 디자인이라서 선택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후에도 이 반지를 계속 착용했다. 

    세기의 결혼식을 앞두고 다이애나가 약혼반지로 사파이어를 골랐으니 큰 화제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파이어는 보통 루비보다 가치가 낮다. 그러나 알고 보면 사파이어는 세기의 약혼반지에 등장할 만한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십계명을 새겼다는 사파이어

    다양한 색상의 ‘팬시 사파이어’와 
최고 품질의 블루 사파이어(가운데). [shutterstock]

    다양한 색상의 ‘팬시 사파이어’와 최고 품질의 블루 사파이어(가운데). [shutterstock]

    사파이어는 푸른색을 띠는 강옥(커런덤· Corundum)의 일종으로 청옥(靑玉)이라고도 부른다. 커런덤 중 붉은색을 띠는 것은 루비, 이를 제외한 나머지가 사파이어다. 사파이어 하면 흔히 블루 사파이어를 떠올리지만 실제론 다양한 색상이 존재한다. 보라색, 녹색, 노란색, 주황색, 분홍색 사파이어는 물론이고 회색, 검은색, 갈색 사파이어도 있다. 블루 사파이어를 제외한 나머지를 ‘팬시 사파이어’라고 한다. 

    사파이어의 주요 산출지는 스리랑카,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등이다. 그중 미얀마와 캐쉬미르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벨벳같이 깊은 청색을 가진 사파이어를 최고 품질로 친다. 루비보다 산출량이 많아 가치는 더 낮다. 

    사파이어라는 이름은 라틴어에서 푸른색을 뜻하는 ‘Sapphirus(사피루스)’에서 유래했다. 성경의 십계명(十誡命)을 사파이어에 새겼다는 전설이 내려올 만큼 사파이어는 역사가 오래된 보석이자 ‘신성한 보석’이다. 교회 성직자들은 사파이어를 ‘정직’과 ‘성실’을 상징하는 보석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바티칸의 엘리트들 사이에서 사파이어를 착용하는 전통이 12세기부터 전해 내려왔는데 사파이어가 순수함을 상징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파이어는 14세기까지는 루비보다 더 사랑받던 보석이었다. 

    왕족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맑고 진한 푸른 빛깔이 왕의 권위를 잘 나타낸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기가 큰 사파이어는 왕관을 장식하는 데 사용됐다. 일반인에게도 성스러운 보석이라는 느낌을 줬다. 바다와 하늘의 푸른 빛깔을 동시에 닮은 사파이어를 가지고 있으면 눈병에 걸리지 않고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었다고 한다. 계절로 보면 사파이어는 가을, 에메랄드는 봄, 루비는 여름, 다이아몬드는 겨울을 상징한다. 사피이어가 9월 탄생석인 것도 이를 반영한 듯하다.

    그라프의 사파이어 주얼리

    사파이어가 세팅된 그라프. [그라프]

    사파이어가 세팅된 그라프. [그라프]

    [그라프]

    [그라프]

    그런 사파이어 주얼리를 만드는 브랜드는 수없이 많다. 그중 ‘그라프(Graff)’가 최고로 꼽힌다. 앞서 소개한 가라드는 국내에 판매처가 없지만 그라프는 직접 착용해볼 수 있다. 

    그라프는 반지·귀걸이·목걸이·브로치는 물론이고 사파이어 시계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인다. 사파이어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귀한 ‘유색 보석’을 내는 것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업계에서 “그라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멋진 보석을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1960년 회사 설립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라프의 모든 보석은 런던 공방(工房)에서 디자인부터 세팅까지 모든 과정이 수공으로 이뤄진다. 고도로 숙련된 장인들이 한 개의 제품을 완성하기까지 보통 수백 시간이 걸린다. 그라프 주얼리에 사용되는 사파이어는 대부분 화이트 다이아몬드와 함께 세팅된다. 다이아몬드의 명암과 사파이어의 색상 대비를 통해 광채를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립자인 로렌스 그라프 회장은 대영제국 훈장 수훈자다. ‘다이아몬드의 왕’으로 불리는 그가 유색 보석과의 만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이 있다. 

    “루비와 에메랄드, 사파이어는 형용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매력을 품고 있다. 풍부하고 깊은 그 색감들 속에 이해할 수 없는 비밀이 숨겨져 있고, 스톤 하나하나의 고유한 특징으로 인해 이 보석들을 손에 들고 있으면 마법 같은 특별한 무언가를 경험하게 된다.” 


    그라프 신라호텔 살롱(왼쪽)과
그라프 갤러리아 살롱. [그라프]

    그라프 신라호텔 살롱(왼쪽)과 그라프 갤러리아 살롱. [그라프]

    그라프 주얼리 컬렉션의 특징은 모던하고, 클래식하며, 우아함과 여성미를 자랑한다는 점이다. 버터플라이(Butterfly), 카리사(Carissa), 피오니(Peony) 등 다양한 스타일이 있다. 그라프는 영국 런던, 미국 뉴욕, 홍콩, 일본, 스위스 제네바를 비롯해 전 세계에 50개 넘는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도 서울 중구 신라호텔 1층과 강남구 갤러리아백화점 EAST 1층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9월 20일부터 10월 3일까지 2주 동안 갤러리아백화점 EAST 1층에서 팝업 스토어를 진행할 예정이다. 국내 론칭 이후 가장 큰 규모라 사파이어의 세계를 경험할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이애나의 약혼반지, 그 후

    다시 다이애나 얘기로 돌아가보자. 그가 꼈던 세기의 약혼반지는 어떻게 됐을까. 다이애나가 사망한 뒤 윌리엄 왕자(37·영국의 왕위 계승 순위 2위)와 동생 해리 왕자(35·왕위 계승 순위 6위)는 어머니의 유품 중에서 기념품을 골랐다. 해리는 사파이어 반지를, 윌리엄은 까르띠에 옐로 골드 탱크 프랑세즈 시계를 선택했다. 

    그러나 먼저 결혼하는 사람이 어머니의 약혼반지를 갖기로 해 반지는 윌리엄 왕자에게 돌아갔다. 윌리엄은 2010년 가을 케냐에서 캐서린 미들턴에게 어머니의 사파이어 반지로 프러포즈를 했다. 윌리엄은 당시 한 인터뷰에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약혼식 때 꼈던 특별한 반지다. (어머니와) 가까이서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나만의 방식”이라고 밝혔다. 

    윌리엄이 어머니의 유품인 사파이어 반지로 프러포즈를 한 후 이 반지는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다이애나 사후 13년 만이었다. 그들이 약혼한 이후 한때 전 세계에서 최상급 블루 사파이어의 수요가 급증하기도 했다. 가라드 또한 회사 창립 연도를 의미하는 ‘The Garrard 1735 Sapphire’ 켈렉션을 통해 지금도 다이애나의 약혼반지를 연상케 하는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다이애나의 약혼반지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다. 

    사파이어의 경우 깊이 있는 푸른색은 ‘고귀함’ ‘진실’, 그리고 ‘로맨스’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또한 ‘연합’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 교환하는 보석으로 사용돼왔다. 서양에서 약혼반지로 많이 활용되고 있는 배경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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